민족문제연구소, ‘조선인요시찰인약명부’ 분석
수년간 자료 발굴 정리 끝에 봄에 발간
일제강점기 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
독립운동가들의 감시에는 ‘밀정’이 뒤에 숨어 있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배에 저항하는 조선인은 철저히 감시당했다. 대표적인 것이 ‘감시카드’이다. 일제는 독립운동가, 사상범 등을 감시할 목적으로 사진을 찍고, 주요 정보를 기록했다.
감시카드만이 아니었다. 일제는 내규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요시찰제도’를 시행했다. 요시찰제도란, ‘배일사상을 품고 식민지배에 저항하거나 저항할 가능성이 있는 조선인’을 주기적으로 감시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위해 일제는 요시찰 인물들의 정보를 기록한 명부를 만들어 활용했다.
일본의 국립공문서관에는 일제가 해방 직전까지 감시한 조선인 789명에 대한 사찰보고서, 즉 ‘조선인요시찰인약명부’가 남아 있다. 이 보고서는 1945년 3월, 함경북도, 충청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에서 작성해 일본 경시청과 조선총독부 및 관계 기관에 제출한 것이다. ‘조선인요시찰인약명부’에 남아 있는 한 사람의 기록을 예로 보자.
– 생년월일 : 1913.3.28
– 주소 : 광주형무소
– 인상특징 : 키 5척 3촌, 보통 체격. 머리카락은 5푼 길이로 짧게 깎음. 얼굴은 둥글고 희며 이마가 넓다. 눈썹이 짙다. 수염은 조금 있다. 목소리가 형형하다. 오른쪽 눈 아래에서 윗입술까지 약 2촌 길이의 상흔이 있다.
– 시찰요점 : 무정부주의자. 1935년 상하이 조선인회 부회장 이용로 살해범인 엄순봉(이명 엄형순)의 공범. 치안유지법 및 살인죄, 징역 13년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일제로부터 감시를 당했나?
‘조선인요시찰인약명부’에 기록된 ‘시찰요점’ 부분을 보면 어떤 사람들이 감시당했는지 알 수 있다.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족주의자로서 열렬한 기독교 신자인데 신의 뜻이 있을 때는 어떤 일도 감행할 것이라고 말하는 자(충남 송기면, 농업)
△농후한 민족·공산주의자로서 김원봉 일파의 불령단에 투신하여 불령운동에 활약중인 자(충남 유해준)
△총독정치를 저주하고 공산주의 선전을 위해 노동조합 등에 관계하며 노동자에게 사상을 주입할 우려가 있음(전북 조용관)
△노동 소작쟁의에 관여하고 불온언동을 하여 타인을 선동할 우려가 있음, 1919년 문서위조 사기로 10월, 검속·구류 2회.(전남 조동승)
△민족사상이 농후하며 포교를 구실로 신도를 사주·선동하고 정치의 변혁을 기도할 우려가 있다.(경남 최범술, 승려)
이런 감시가 가능했던 것은 그 배후에 밀정(密偵)이 있기 때문이다. 반민족행위자들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반민족행위자가 밀정이다. “이마가 넓다, 눈썹이 짙다, 수염은 조금 있다” 등등의 정보는 밀정들이 파악해 일경에 보고한 내용이다.
밀정은 이런 신체적 특징뿐 만 아니라, 가장 비밀스러운 내부 독립운동 조직의 정보를 왜놈들에게 넘겨서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고문 등으로 죽게 만들었다.
2019년 8월 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KBS 1TV ‘시사기획 창’은 ‘밀정 2부작’을 방영했다. 여기서 현재까지 찾아서 확인된 반민족행위자였던 밀정들의 명단을 공개했다. 모두 895명이다. 선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으나, 아무튼 이 숫자는 그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이런 수많은 밀정들의 보고로 작성되었을 ‘조선인요시찰인약명부’에 기록된 사찰 대상은 모두 789명.
이 789명 가운데 오늘날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서훈된 인물은 168명이었다. 나머지 621명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민족문제연구소는 이 자료를 번역하고 분석하는 데 오랜 시간을 소요됐다. 이제 올해 봄, 회원들의 기부금으로 발간을 앞두고 있다.
아울러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상세한 789명의 명단도 보게 될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 ‘조선인요시찰인약명부’를 통해 힘겨웠던 시절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던 사람들을 찾아내고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찬구 편집주간
<2022-01-07> 시사포커스
☞기사원문: [칼럼] 일제가 마지막까지 감시한 789명의 조선인은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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