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는 시민역사관

식민지로 전락한 도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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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와 총독관저
‘을사늑약’ 후 한성의 남산에 들어선 통감부는 조선총독부로 이름을 바꾸고 <병합기념조선사진첩>의 첫 풍경 사진으로 수록되었다. 사진첩은 1910년 12월 4일에 발간하였는데 ‘조선총독부’와 ‘총독관저’를 ‘통감부’, ‘통감관저’로 설명하고 있다.
창경궁 풍경
1909년, 일본은 창경궁의 전각 일부를 철거하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어 여러 종류의 동물을 전시하고 서양 식물, 벚나무 등으로 정원을 조성했다. 이렇게 ‘창경궁’은 ‘창경원’이 되었다. 왕권을 상실한 궁궐은 더 이상 대한제국의 한성이 아닌 일본의 식민지 경성임을 보여준다. ‘창덕궁’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아 ‘창경궁’과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한 듯 보인다.
인천항의 모습과 침몰한 함선
바다에서 바라보는 인천항의 모습 아래, 1904년 러일전쟁 초기인 제물포 해전에서 침몰한 러시아의 함선 바리야크(Valyog, Варяг)호와 코레예츠(The Corets, Кореец) 호를 배치했다. 일본은 러일전쟁의 승리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뺏는 ‘을사늑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개성 전경
개성의 남대문, 인삼밭, 선죽교가 보인다. 개성 인삼은 강제병합 이후 조선의 특산품 소개와 함께 ‘근대화’를 상징하는 홍보물에 자주 등장한다. 여러 장의 사진 중 특이하게 ‘선죽교’ 사진만 ‘고려의 신하 정몽주가 살해된 혈흔이 있는 다리로 칭한다.’고 설명문을 첨부하였다.
평양의 모란대와 대동강
평양에서 가장 경치가 빼어난 모란봉의 모란대와 대동강의 모습을 담았다. 일제는 지역 관광 상품을 개발하면서 위 사진과 같은 구도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활용했다.
부산 전경과 목지도
배가 드나드는 부산항의 모습과 용두산에서 바라보는 목지도(현재의 영도). 부산은 일본에서 식민지 조선으로 이동하는 경로의 관문과도 같은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인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목포항과 군산항
군산은 조선의 미곡을 일본의 각지로 수출하는 거점이었다. 특히 군산항에 쌓여 있는 가마니 모습은 도시의 발전상과 특색의 이미지로 지속적으로 활용되었다.
경주 명승고적
천년고도 경주의 첨성대, 불국사, 무열왕릉 사진이 <병합기념 조선사진첩>에 수록되어 있다. <일본서기>에 ‘진구황후(神功皇后)의 신라 정벌’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신라가 일본에 조공을 바치는 내용의 홍보물을 제작, 배포하였다. 높은수준의 문명국가 신라의 고적을 보여주는 사진이다

<병합기념 조선사진첩>에는 ‘청일전쟁 전의 경성日淸戰役前の京城’의 모습을 시작으로 조선총독부, 총독관저, 경성시가, 남대문, 경복궁 등 경성의 모습 44장과 인천, 개성, 평양, 압록강, 부산, 수원, 목포, 군산 등 지방 명소와 고적 사진 86장이 실려 있다. 이 사진들은 강제병합 직전에 촬영된 이미지가 아니라 한반도 곳곳의 모습을 길게는 20여 년에 걸쳐 담은 것이다. 일제의 조선 ‘보호국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조선에 대한 체계적인 사진기록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한국병합기념첩>, <일한병합기념 대일본제국조선사진첩> 등 여러 종류의 ‘병합’을 ‘기념’하는 사진첩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사진첩에는 ‘대한제국’은 ‘조선’으로, 황도皇都 ‘한성’은 ‘경성’으로 전락한 식민지 조선의 모습을 침략자의 시선으로 담아내었다. 

• 강동민 자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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