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9월, 전국의 후원회원을 담당하는 연구소 기획실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 후원회원들을 조금이나마 돕기 위해 원하는 분들에 한해 그분들의 업체, 업종, 연락처 등을 정리하여 전체 후원회원들에게 메일링을 한 적이 있다. 그러한 홍보가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겠지만 자영업 후원회원께 작은 도움과 격려를 드리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 당시 홍보한 업체는 모두 30개였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누룽지 과자인 ‘서울칩’을 생산하는 ㈜서울칩 정동수 대표를 처음 만나게 되었지만 사실 정 대표는 더 오래 전부터 연구소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1998년에 현대사를 공부하면서 처음 연구소를 알게 되었는데요. 5년 전부터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강의와 연구소가 수탁하여 운영하는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진행하는 강좌를 들으면서 연구소에 더 많은 애정을 갖게 되었어요.”
홍보 메일링 발송 이후 정동수 대표는 직접 제품을 들고 감사의 뜻으로 연구소를 찾아왔다. 정 대표에게 제품 설명을 들어 보았다.
“수년간 영화나 드라마에 음식을 기획하는 푸드 디렉터(음식 메뉴를 개발하는 일부터 음식 산업 전반의 일을 기획하는 사람) 업무와 식품회사에 신제품을 개발해주는 일을 하고 있었어요. 최근에 개봉한 영화 ‘영웅’에도 참여했는데요. 바로 독립운동가들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함께 만두를 먹는 장면이에요. 1992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관부재판을 영화로 만든 ‘허스토리’에도 참여했었고 그 외에도 ‘더킹’, ‘환혼’ 등 많은 작품에 참여했죠. 그리고 국내 백화점이나 식품회사에 신제품 컨설팅을 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갑자기 쉬는 시간이 많아졌죠. 때는 이때다 싶어 그동안 생각했던 ‘우리만의 제품을 만들어보자’라고 생각해서 2020년 5월 서울칩이라는 누룽지 회사를 설립해서 누룽지 제조와 판매까지 하고 있어요. 벌써 제품이 다섯 종류나 되고 해외 수출도 하고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연구소는 가끔 행사용 다과가 필요할 때면 정 대표에게 서울칩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주문보다 더 많은 양이 덤으로 오곤 했다. 때로는 연구소 근처를 지나는 길이라면서 서울칩을 주고는 바로 사라졌다. 작년 12월 초정동수 대표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가지고 갈 예정이라면서 연락해 왔고 실제로 12월 23일 연구소를 방문해 100만원의 특별 후원금을 건네주었다.
“2022년 한국PR협회에서 ‘숨은영웅상’이라는 특별상을 처음 제정했는데요. 감사하게도 제가 선정되어 상금을 받게 되어 전액을 민족문제연구소에 기부하게 되었습니다. ‘숨은영웅상’을 받은 이유는 25년간 제주 4·3항쟁을 위해 헌신한 노력을 인정받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정 대표는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의 이사이다. 제주 출신도 아니며 다른 이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 그가 어떻게 제주 4·3과 인연이 닿았을까.
“사학과를 다니며 대학교 4학년이 시작되는 1998년 1월에 혼자서 여행하다가 ‘진상규명 – 명예회복 50주년 제주 4·3범국민위원회’에서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무작정 찾아갔어요. 당시 4·3범국민위는 모두 제주 사람들이고 저는 갑자기 찾아온 육지 사람이다 보니 프락치로 의심도 받았었죠. 그때부터 4·3 활동을 하게 되었어요. 그 당시 서울 후암동의 작은 사무실에서 실무자로 일하기도 했지요. 다행히 정권도 교체되면서 2000년에는 제주 4·3특별법도 제정되어 저의 역할에 보람을 찾게 되었습니다. 특히 제주 4·3항쟁 70주년과 71주년 때인 2018년과 2019년에는 회사도 팽개치고 몇 달씩 행사 준비만 했었죠. 광화문 광장에서 4·3 행사를 하며 서울정부 청사에 초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는 4·3 특별전을 열 때는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현 정부가 4·3을 폄훼하는 지금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을 모두 가지고 또 잘 이겨내길 바라고 있습니다.”
대학생으로 그리고 직장인이 되어서도 4·3과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정 대표는 학창시절부터 역사에 깊은 관심이 있었을까?
“사학과 학생이었지만 공부를 잘 하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던 저에게 ‘제주 4·3항쟁 50주년 기 학술제에 참여하면 제주도 여행을 학생회비로 보내주겠다’는 꼬임(?)에 빠져 4·3 공부를 처음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4·3공부는 저의 가치관을 정립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강만길, 서중석 선생님 등을 뵈며 대학원에 입학하여 연구자의 길을 가려 했으나 제가 직접 연구하는 것보다는< 연구자 분들을 돕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여 년 전에는 치기 어린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작지만 실현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설렙니다.”
정동수 대표는 독립운동가 중에서 러시아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인 최재형 선생(1860~1920)을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 연해주 동포들은 집집마다 최재형 선생의 초상화를 걸어두고 동포에게 난로처럼 따뜻한 그분에게 페치카(난로)라는 애칭을 붙였다. 그 이유는 러시아 군대에 각종 물품을 공급하는 군납회사를 경영하여 큰돈을 벌어 한인들을 위한 학교 설립은 물론 독립운동 지원에도 인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는 최재형 선생님을 가장 존경하며 저도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 중입니다. 선생님께서 독립운동가들의 후원자가 되었듯이 저도 사업가가 되어 독립운동, 반민족행위에 대한 연구를 하시는 분들의 후원하는 것이 연구자 보다는 저에게 더 어울릴 것 같고 그것이 제가 회사를 운영하는 목적입니다.”
코로나19로 우연히 시작한 누룽지 사업이 위기도 있었지만 잘 성장하고 있어서 올해 서너 개의 신제품 출시와 더불어 경북 문경에 새롭게 생산라인을 확충할 계획이라고 한다. 서울칩의 번성을 진심으로 기원하며 연구소 후원회원들에의 당부를 부탁해 보았다.
“지난 카타르 월드컵에서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있는 선수들의 모습이 화제가 되었죠. 민족문제연구소가 수많은 어려움을 딛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후원회원들의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마음을 영원히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