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5일 저녁 7시 한국전쟁 당시 충남 태안지역에서 벌어졌던 ‘민간인학살’을 다룬 구자환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태안’을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를 비롯한 17개 시민사회단체 공동 주최로 상영하였다.
작은할아버지가 한국전쟁 당시 고향인 울릉도에서 경찰에 의해 끌려가 경북 경산의 코발트 광산에서 희생되셨고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에서 근무할 당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 발굴 공동조사단’ 일원으로 활동했던 나에게는 영화 ‘태안’의 관람이 남달랐다. 한국전쟁 당시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자행되었던 ‘민간인학살 사건’을 영화로 알리고 있는 구자환 감독은 2013년의 ‘레드툼’, 2017년의 ‘해원’에 이어 세 번째로 ‘태안’을 제작했다.
영화 ‘태안’은 1950년 여름 보도연맹사건을 시작으로 좌우 보복 학살을 다루고 있는데 태안유족회 상임이사인 강희권, 유민 아빠로 알려진 세월호 유가족인 김영호 씨가 출연해 태안 곳곳의 학살지역을 비추고 같은 동네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유가족이 사건 후에도 마주 보고 살아야 했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한다. 영화 ‘태안’에서 증언해 주신 유가족분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대다수가 민간인학살 당시 14살, 15살 정도의 어린 나이였고 이제 70년 세월이 흘러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는데, 그 긴 시간 동안 응어리진 한과 슬픔을 차마 가늠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영화에 출연하신 분들은 좌우 보복 학살의 두 주체가 한 마을에서 70년이나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면서 자신의 아픔만큼 상대의 아픔도 컸음을 알고 있었고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을 개개인이 스스로 깨우치고 용서하며 화해의 길로 나가고 있었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감독과의 대화에서 구자환 감독은 몇 년 전 만리포해수욕장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그곳도 ‘민간인학살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에 의하면 당시 태안지역 희생자는 보도연맹 관련 115명, 적대세력에 의한 학살 136명, 부역 혐의자 학살 906명, 기타 학살 28명 등 총 1,185명이라고 했다. 영화를 관람하면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 발굴 공동조사단’ 일원으로 희생자 유해를 발굴했던 충남 홍성, 경남 진주, 충남 아산, 대전 산내 등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유족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으며 이유도 모른 채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희생되신 작은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좀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안지역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 전국에서 벌어진 민간인학살에 대한 진실 규명이 하루빨리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져 희생되신 분들의 한을 풀어 드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