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범기업 대신 한국기업이 배상’ 정부 안에
“일본에서 고생했으니 일본한테 당당히 돈 받겠다”
“한국 외교부인가 일본 ‘왜’교부인가?”
31일 오전 광주광역시 동구 5·18민주광장에서는 우리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 방안을 비판하는 격한 목소리가 들렸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93·여)씨와 광주·전남 21개 단체가 구성한 광주전남역사정의평화행동(준)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 전범기업을 대신해 한국기업 돈으로 배상하는 정부의 방안에 반대의견을 다시 한 번 밝혔다.
이들은 전날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일 외교부 국장급 협의에서 일제 강제동원 문제가 접점을 찾지 못했다는 소식에 이번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양씨는 “굶어 죽어도 한국 돈은 받지 않겠다. 일본에 가서 고생했으니까 일본한테 당당히 돈을 받아야겠다. 정부와 대통령은 일본 편인지 우리 편인지 알 수 없다. 모두 옷을 벗어라”고 외쳤다.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은 “다 쓰러져가는 단칸방에 사는 양금덕 할머니는 일본이 무릎을 꿇고 사죄하기 전까지 배상을 받지 않겠다고 했는데 우리 정부는 마치 양 할머니가 돈을 구걸하는 것으로 취급한다”며 “할머니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이렇게 망가뜨리려고 하는 상황이 한탄스럽다”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기자회견문에서 “대한민국 최고 법원인 대법원이 전범기업 미쓰비시 등 일본 피고 기업에 대해 배상 명령을 내렸는데도 해당 기업들은 판결 이후 5년이나 지나도록 콧방귀도 뀌지 않고 있다”며 “우리 정부는 판결을 이행하라고 다그치기는커녕 일본에 ‘성의 있는 호응’을 주문하며 굽신거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 일본 정부는 한술 더 떠 피해자에게 구상권 포기각서를 요구하고 미쓰비시 계열의 조선인 강제동원 현장인 사도 광산까지 유네스코 산업유산으로 등재하려 한다”며 “윤석열 정부는 민족의 자존심을 짓밟고 피해자를 욕보이는 것은 물론 세계적인 비웃음까지 사게 될 구걸 외교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씨는 13살이었던 1944년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로 동원됐다가 해방이 되자 임금도 받지 못한 채 귀국했다. 양씨 등 피해자 5명과 함께 2012년 10월 미쓰비시를 상대로 한국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2018년 11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미쓰비시쪽이 무대응으로 일관하자 원고들은 상표권 등 미쓰비시 국내자산을 압류하고 현금화하는 법적 절차를 밟아 대법원 판단을 앞두고 있었다. 지난해 7월 외교부는 대법원에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의견서를 제출하며 최종 판단이 미뤄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 12일 공개토론회에서 가해자인 일본 피고 기업 대신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한국기업 등으로부터 기부금을 걷어 피해자들에게 대신 지급하는 방안을 공식적으로 밝혀 피해자 반발을 샀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2023-01-31>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