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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사] 식민지근대화론 분쇄의 선봉, 허수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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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사〉

식민지근대화론 분쇄의 선봉, 허수열 교수

민족문제연구소 상임이사 조세열

허수열 충남대 명예교수가 1월 29일 71세를 일기로 별세하셨다. 참으로 갑작스런 부음이었다. 당신의 역량과 열정이 필요한 일들이 산적해 있는데 너무 일찍 돌아가시니 안타까운 심경을 금할 길이 없다. 지난 해 연구소 프로젝트 자문을 요청하기 위해 전화를 드렸다가 투병 중임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그 때만 해도 “많이 좋아졌다”고 힘주어 말씀하시며 “조만간 민족문제연구소를 방문하겠다”고 하시더니 그것이 마지막 통화가 되고 말았다.

허 교수와 우리 연구소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9년 ‘『친일인명사전』 편찬지지 교수 1만인 선언’ 때였으나, 각별하게 교류하게 된 계기는 2006년 허 교수의 제2회 〈임종국상〉 수상이었다. 수상저서는 『개발 없는 개발 – 일제하, 조선 경제개발의 현상과 본질』(은행나무, 2005)로 ‘수탈론’과 ‘개발론’의 평행적 대립을 극복하고 총체적인 ‘구조론’의 시각에서 식민지근대화론의 허구성을 입증한 역저였다. 허 교수는 이 책에서 일제의 조선 개발은 조선 땅위에서 이루어진 개발이었음에도 일본인들의 일본인들에 의한 일본인들을 위한 개발이었고, 한국인에게는 전혀 그 수혜가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을 실증에 기초해 설득력 있게 제시하였다. 또 8·15 해방 전후 일제가 남긴 식민지 성장의 유산이란 것도 매우 제한적인 것이었으며 이나마도 분단과 한국전쟁을 통해 거의 소멸되어, 오늘날 한국의 경제성장이 일제의 경제개발에 역사적 기원을 두고 있다는 주장도 허구임을 지적했다. 심사위원회(위원장 이이화)는 만장일치로 그를 영예의 수상자로 결정함으로써 그의 노고에 경의를 표했다.

2015 해방 70년 특별기획답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강연 중인 허수열 교수

시상식 날 그의 수상소감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제목이 ‘한 사람이 있어 외로이 길목을 지켰습니다’였다. 바로 명량대첩 전날 이순신 장군이 휘하의 장수들을 모아놓고 이른 말이었다. ‘일부당경一夫當逕 족구천부足懼千夫’ 임종국 선생을 향한 헌사였지만 자신의 각오가 실린 말이기도 했다. 민족문제에 대한 견해 차이로 뉴라이트의 아성 낙성대경제연구소를 박차고 나온 그가 지녔을 고립감과 비장감을 넉넉하게 짐작하게 해 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고인은 전형적인 외유내강의 풍모를 지녔었다. 항상 조용한 미소를 띠고 차분한 목소리로 응대했으나, 강연이나 토론할 때는 치열한 내면이 드러나곤 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한국경제사 관련 학술행사에는 빠짐없이 참여하여 조언과 조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특히 역사학계가 미처 감당하지 못하는 분야에서 전문적인 자문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역사기행에서도 여러 차례 안내와 강연을 맡았었는데, 자신의 전공 분야를 넘어 역사 전반에 걸쳐 해박하였을 뿐만 아니라 수줍음이 담긴 유머를 더해 참가자들을 매료시켰다. 일제시기의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있는 ‘징게 맹갱 외에밋들(김제 만경 너른 들판)’과 군산항 곳곳을 누비며 식민지 조선의 실상을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애쓰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연하다.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영훈 교수가 소설가 조정래 선생을 무참하게 비판할 때 내놓았던 어이없는 ‘벽골제 방조제’설을 명쾌하게 논파했던 것도 그때 그 자리였다.

허수열 교수는 두루 알려져 있듯이 두드러진 학문적 업적을 쌓은 타고난 학자였다. 그중에서도 앞의 『개발 없는 개발』과 함께 『일제 초기 조선의 농업』(한길사, 2011), 『식민지근대화론 무엇이 문제인가?』(독립기념관, 2017) 등은 식민지근대화론의 기초를 허문 탁월한 성과였다.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수량경제학과 계량사학을 그들이 ‘전가의 보도’인양 전유하던 실증과 통계로 여지없이  무장해제시켰으니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통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처럼 어느 누구보다도 성실한 연구자였으나 그렇다고 그가 강단과 연구실에만 머문 것은 아니었다. ‘역사와 교육’의 위기 앞에서는 몸을 사리지 않고 최일선에서 투지를 불태웠다. 이명박근혜 정권 아래에서 저질러졌던 이승만 박정희 우상화와 관제 교과서 보급 기도에 결연히 맞섰으며, 역사 대중화의 관점에서 『반일종족주의』 등 뉴라이트 세력의 역사부정론이 가지는 위험성을 직시하고 그 확산을 막아내는 데도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2023년 오늘, 마치 역사의 데자뷰인양 다시 불길한 전조가 이 땅에 드리우고 있다.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역사쿠데타에 부역했던 흘러간 인물들이 대거 역사와 교육의 현장에 복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암울한 시기, 허수열 교수의 부재가 던지는 공백은 그 크기를 가늠하기 힘들다. 그러나 어찌 한탄만 하고 있으랴! 한국근현대사 분야를 비롯해 학계는 이미 그에게 큰 빚을 졌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역사의 길목’을 지키는 전사가 되어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다소라도 빚을 덜고 고인의 뜻을 실천하는 길이 되리라.

2019.10.5. 민족문제연구소 주관 제2회 연세 시민 인문학교. 김제·군산지역 역사기행, 김제 하시모토농장 사무소. (오른쪽 세번째가 허수열 교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학문세계와 실천운동의 동반자이자 조력자였던 부인 손인자 선생과 유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이 추도사는 『민족사랑』 2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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