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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양금덕 할머니에 정부 대신 ‘국민훈장’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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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제동에 국민훈장 무산되자
시민단체들, 평화훈장 수여운동 펼쳐

지난 14일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총영사관 근처 강제징용노동자상 근처에서 부산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 대신 양금덕 할머니에게 평화훈장 수여 운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김영동 기자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93) 할머니는 전남 나주공립보통학교 6학년 때인 1944년 5월 근로정신대로 일본으로 끌려가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에서 중노동에 시달렸다. 그는 비행기 부품 녹을 닦고 페인트를 칠하는 일을 하다 오른쪽 눈을 잃었고 냄새도 맡지 못하게 됐다. 공습 등으로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다.

1945년 나고야 공장이 폭격으로 파괴되자 도야마현의 다이몬 공장에서 강제 노동을 이어가다 같은 해 8월 해방 뒤 부산항을 거쳐 고향인 나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미쓰비시중공업이 약속했던 임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계기로 양 할머니도 근로정신대에 대해 증언하기 시작했다. 1992년 2월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에 가입한 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일본 정부와 강제동원 기업을 대상으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인권 회복 투쟁을 본격적으로 펼쳤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도 제기했지만 2012년까지 일본에서 진행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모두 패소했다.

양 할머니는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한국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2013년 11월 광주지법은 양 할머니 등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승소 판결을 내렸다. 2015년 6월 광주고법의 판결도 마찬가지였다. 2018년 11월29일 대법원도 “피해자에게 1억~1억5000만원씩 배상하라”고 확정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일본 정부와 기업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든 배상이 끝났다며 판결 이행을 거부하고 있다. 양 할머니 등 피해자들은 조금이라도 배상금을 확보하려고 일본 기업 자산 매각을 위한 법정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양 할머니를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자로 선정해 같은 해 12월9일 수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사전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국무회의에 안건을 상정하지 않았고, 결국 양 할머니 서훈은 무산됐다.

지난 14일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총영사관 근처 강제징용노동자상 근처에서 부산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 대신 양금덕 할머니에게 평화훈장 수여 운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김영동 기자

“윤 정부는 일본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양 할머니 서훈 안건을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며 대일 굴욕외교라는 날 선 비판이 전국에서 쏟아졌다. 부산 시민단체들은 지난 14일부터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부산시민 평화훈장 추진위’(추진위)를 만들어 양 할머니께 정부 대신 부산시민이 평화훈장을 수여하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추진위 누리집(vvd.im/할머니의평화훈장)에는 26일 기준 6100여명이 동참하고 있다. 참가단체도 95곳에 달한다. 추진위 쪽에 우편으로 도착하는 훈장 수여 추천 서명까지 합하면, 추천인은 1만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인다. 추진위는 3월1일 삼일절 기념식에서 추천인 명단과 모금으로 만든 평화훈장을 양 할머니에게 수여할 계획이다.

이원규 추진위 대변인은 “30여년 동안 일본 쪽과 싸워온 양 할머니의 훈장을 무산한 정부를 규탄하는 여론이 크다.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정부의) 시도를 크게 경계하고, 4대 굴욕 외교 끝판왕으로 보는 시민이 많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우리들의 인권상’을, 지난달에는 울산겨레하나가 ‘시민훈장’을, 이달에는 민족문제연구소가 ‘대한민국 국민이 드리는 시민훈장’을 양 할머니에게 각각 수여했다.

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2023-02-26> 한겨레

☞기사원문: 양금덕 할머니에 정부 대신 ‘국민훈장’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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