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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합기념 조선사진첩 속 이미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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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자료 톺아보기 46]

병합기념 조선사진첩 속 이미지(3)
– 강제병합의 주역들, 침략자와 친일파

• 강동민 자료팀장

메이지(明治) ‘천황’ 부부의 초상과 요시히토 ‘황태자’ 일가족
<병합기념 조선사진첩>에 맨 처음 등장하는 인물인 일본의 ‘천황’ 무츠히토(睦仁)와 ‘황후’인 마사코(勝子)는 이미지만 수록되어 있고 이름이나 설명은 없다.

‘이왕가’로 전락한 대한제국 황실 가족
(왼쪽) 창덕궁 왕비(순정효황후), 창덕궁 이왕(순종) (오른쪽) 이태왕비(순헌황귀비), 이왕세자(이은), 덕수궁 이태왕(고종) 이휘 공, 이강 공
강제병합 당시 일본 내각 대신들
강제병합 이후 제3대, 제5대 조선총독으로 부임했던 해군대신 사이토 마코토를 비롯하여 내각총리대신 가츠라 타로, 외무대신 고무라 주타로 등 강제병합의 일본주역들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오른쪽)와 부통감 야마가타 이사부로(왼쪽) 강제병합 후 데라우치는 조선의 초대 총독으로 부임하고 야마가타는 정무총감이 되었다.
나라를 팔아먹은 조선의 내각 대신들
내부대신 박제순, 내각총리대신 이완용, 중추원 의장 김윤식 궁내부대신 민병석, 탁지부대신 고영희, 농상공부대신 조중응
일본인 관료들
경무총장 아카시 모토지로를 비롯한 일본인 주요 관리들. 경무총감부의 장인 경무총장은 주차군 헌병사령관을 겸직하여 경찰과 헌병을 통합 지휘하는 이른바 헌병경찰제의 수장이었다. 이러한 헌병경찰제 는 식민지 지배 초기 안정된 통치체제 구축을 위한 뒷받침이 되었다.
대한제국의 1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와 2대 통감 소네 아라스케
통감관저 뒤 호도원(好道園)의 바위에 새겨진 이토의 필적. 글씨는 <일본서기>의 한 구절로 ‘왕위의 융성함은 천양과 함께 무궁할 것이다(寶祚之隆與天壤無窮)’를 인용한 것이다.
「반도의 명사」라는 소제목으로 소개된 조선의 주요 관료들
이근택, 권중현, 이근상, 김가진, 이재극, 이준용, 송병준, 김성근, 민영휘, 이지용, 박영효, 이재순, 민영기, 성기운, 조동윤, 민영소, 이병무, 윤덕영

<병합기념 조선사진첩>에 수록된 약 400컷의 사진 중 인물사진은 단체사진을 포함해 약 200컷으로 절반을 차지한다. 대부분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한 주역들로 일본의 ‘천황가’와 군부를 비롯한 관료들, 이에 협력한 친일 조선 관료들이다.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여 제작된 <병합기념조선사진첩>에 등장하는 첫 인물은 메이지(明治) ‘천황’ 부부다. 이와 함께 ‘천황가’ 일족을 수록하고 ‘이왕가’로 전락한 대한제국 황실일가는 다음 순서로 밀려났다. 이어서 ‘한국의 통치권을 일본에 양여’한다는 순종의 칙유와 병합조약체결의 정당성을 알리는 데라우치 통감의 유고를 수록하였다. 조선의 병합은 ‘원만하고 평화롭게’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후로는 일본의 내각대신, 역대 조선통감, 조선주차군사령관 등 일본의 인물들부터 대한제국 내각 대신과 중추원 의장, 이완용·박제순·민병석·고영희·조중응·김윤식 등 ‘병합’에 결정적인 이바지를 하였던 친일 인사들의 사진이 줄지어 나온다.

특히 ‘왕비사건 당시의 공사, 자작 미우라 고로’, ‘강화도사건 당시의 함장, 이노우에 요시카’, ‘제물포조약 당시의 전권대사, 구로다 기요타카’ 등과 같이 한국병합에 결정적인 사건의 주요 인물들이 사건 당시 직위와 함께 소개되어 있다.

사진첩에 수록된 주요 인물들은 다양한 책자와 화보에 지속적으로 소개되는데 연구소의 소장자료인 <한국병합기념화보>에도 실려 있다. 식민지역사박물관 상설전시장을 방문하면 강제병합의 일본 주역들을 비롯해 친일파들의 상세한 이력을 살펴볼 수 있다. 


「반도의 명사」는 강제병합 당시 조선인 주요 관료들과 ‘영향력 있는 인물들’로 구성된 부분으로 친일 인사들뿐만 아니라 독립운동가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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