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보도자료] 독립투사 모독한 국가보훈처의 ‘7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1795

[보도자료] [다운로드]

독립투사 모독한 국가보훈처의 ‘7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부민관 폭파 의거’ 삼의사 중 조문기 의사만 배제

국가보훈처는 지난해 12월 14일,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유진 초이 역의 실제 인물인 황기환 선생과 윤동주 시인의 사촌형 송몽규 선생 등 34명을 〈2023년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최종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보훈처에 의하면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지방자치단체와 관련 기관, 기념사업회 등으로부터 138명의 인물을 추천받아 근현대사 전공학자 등으로 구성된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위원회」에서 ‘독립의 불꽃, 청년’을 주제로, 청년 시절부터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들을 선정했다”고 한다.

▲ 부민관 폭파의거 삼의사. 조문기(가운데), 강윤국(왼쪽), 유만수(오른쪽).

그 중 7월의 독립운동가 선정사유를 보면 “1945년 7월 24일 경성부민관(현 서울시의회 건물)에서 친일파 박춘금이 전쟁 수행 찬성을 위해 아세아민족분격대회를 개최하자 여기에 참석하는 친일파를 처단하기 위해 폭탄의거를 주도한 강윤국(1990년 애국장)·유만수(1990년 애국장) 선생을 선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부민관 폭파의거는 조선총독부의 고관과 아시아 각국의 특급 친일파가 총집결한 대회장에 폭탄을 터뜨려 민족의 독립의지가 끝까지 식지 않았음을 보여준 일제강점기 마지막 의열투쟁이었다. 독립운동사의 대미를 장식한 쾌거로 관련자들의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은 오히려 많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런데 국가보훈처는 선정과정에서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행태를 보여주었다. ‘부민관 폭파 의거’ 삼의사 중 유독 조문기 선생(1990년 애국장)만 뺀 것이다. 국회 윤영덕 의원실의 근거자료 요구에 대해 보훈처 관계자는 “고 조문기 독립운동가는 공적조사 결과, 1948. 5. 25. 인민청년군 활동과 관련하여 강도범죄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사실이 있어 심의위원회 심의대상에 올리지 않았습니다.”라는 비공식 해명과 함께 『민중일보』 1948년 5월 25일자와 『경향신문』 28일자 기사를 방증으로 제시했다고 한다.

보훈처의 이와 같은 일련의 행태는
① 재판에 회부된 혐의만으로 조문기 지사가 강도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기정사실화하고,
② 『경향신문』 남로당 관련 기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이를 의원실에 제시함으로써 조문기 선생이 마치 남로당과 연계된 공산주의자인양 악의적으로 호도하였으며,
③ ‘부민관 폭파의거’의 주역으로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훈하고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받은 저명한 독립운동가를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의견조차 들어보지 않은 채 모욕적인 조치를 취해 심각하게 고인의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간주된다.

보훈처 관계자가 “독립운동가인 것은 차치하더라도, 문제의 소지가 있는 분을 후보로 올려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수 있다는 실무자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으나, 이는 독립유공자의 서훈을 심의하고 관할하는 부처로서 무책임한 자기부정일 뿐이다. 또 이런 중차대한 결정을 일선 실무자가 내렸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원회에서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을 상대로 조문기 의사를 배제한 이유를 묻는 윤영덕 의원의 질의가 있은 뒤 언론이 취재에 들어가자, 보훈처는 “1심에서는 강도 범죄로 실형을 받았고 2심에서 해당 혐의는 무죄가 난 것을 확인했지만, 맥아더 포고 2호 위반으로 1년 6개월 형 받은 것을 확인해 심사 진입 단계에서 제외했다”고 말을 바꾸었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해명도 납득이 가지 않지만 도대체 이렇게 무리수를 두어가며 특정인을 표적삼아 배제하는 까닭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혹시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2대 이사장을 역임한 사실을 문제 삼았다면 이는 묵과할 수 없는 권한 남용에 해당할 것이다.

조문기 선생의 1948년 5월 5일 단선·단정 반대 북한산 봉화 시위는 통일민족국가 수립의 당위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단행한 의거이다. 조문기 선생과 거사에 참여한 동지들은 배신자의 밀고로 검거된 뒤 혹독한 고문을 받았으며, 경찰은 봉화 시위를 남로당과 엮어 공산당의 음모로 조작하려 하였다. 그러나 사건을 이첩받은 검찰관 김형대조차 공산주의와는 무관하다고 판단하였으며(조문기 회고록 『슬픈 조국의 노래』 154쪽∼167쪽), 재판부도 경찰의 남로당 연계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남로당 계열의 5·10선거방해사건을 정리한 검찰자료(대검찰청 수사국, 『좌익사건실록』 391쪽∼422쪽) 어느 곳에도 조문기 선생과 동지들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음을 볼 때 진상을 알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5·10총선거를 앞두고 있을 무렵 언론은 봉화사건을 매일 같이 일어나는 일로 파악하고 있었으며, 이는 민중의 열망이 담긴 일상적인 저항운동이었다.

보훈처가 거론한 ‘강도 운운’은 봉화 시위가 일어난 5월 5일 관련 언론보도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5월 25일에 가서야 『민중일보』와 『현대일보』 두 신문에 기사화되었다. 조문기 지사의 회고대로 친일경찰이 고문 끝에 만들어낸 소설인 것이다. 독립운동가들이 친일부호를 위협해 군자금을 조달했다는 사례는 들어보았지만, 의거에 나선 활동가가 무슨 소매치기도 아니고 거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길가는 행인에게서 푼돈을 강탈하겠는가. 참으로 설득력이 떨어지는 조잡한 수준의 조작이었다. 이 혐의 또한 재판에서 무죄로 판명지어 졌다.

보훈처는 또 유만수 지사는 기소유예를 받은 데 그쳐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속내를 밝힐 수 없으니 궁색한 이유를 들이대지만 논리가 빈약해도 정도가 있다. 더구나 유만수 지사도 같은 사건으로 1년 징역형을 받고 복역했다는 조문기 지사의 회고를 보면 보훈처의 부실한 검증과 의도적인 왜곡이 너무나도 뚜렷해 보인다.

미군정 말기 경찰-검찰의 남로당 연계 공안몰이 조작사건은 연일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국가보훈처는 판결문 확인 등 최소한의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노상강도’ ‘남로당 연계’ 등을 기정사실화하려 했다. 경찰 발표 받아쓰기 한줄 기사를 근거로 존경받는 애국지사를 파렴치범으로 모는 망동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에다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에 회부조차 하지 않는 만용을 부리며 월권을 서슴지 않았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합리적 의심을 가지면서 국가보훈처의 명확한 조치를 요구한다.

첫째, 국가보훈처는 진보적인 시민단체에 불이익을 주고 관련자를 배제하는 블랙리스트를 운용하고 있는지 또는 유사한 지침을 전파했는지 진상을 밝혀라!
둘째, 심의위원회 회부를 의도적으로 생략한 것은 직무유기이다. 실무선에서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니 최고 윗선을 공개하라!
셋째, 최종 책임자를 문책하고 유족 등 관계자와 관련단체에 사죄하라!

※ 관련자료
[다운로드] 『공업신문』 1948. 5. 7. 2면 삼각산 봉화꾼 3명 검거 취조
[다운로드] 『부인신보』 1948. 5. 7. 1면 봉화올린 폭도 3명 또 검거 권총도 압수
[다운로드] 『현대일보』 1948. 5. 7. 2면 봉화범 3명 검거, 권총·휘발유 압수
[다운로드] 『공업신문』 1948. 5. 13. 2면 성북, 마포서장, 장 청장이 표창
[다운로드] 『민중일보』 1948. 5. 25. 2면 강도하든 인민청년군, 조문기 등 공판에 회부
[다운로드] 『현대일보』 1948. 5. 25. 2면 수원 인청군(인민청년군), 조문기 등 기소
[다운로드] 『경향신문』 1948. 5. 28. 2면 남노(남노당)의 음모 탄로, 선전선행대원 대량체포
[다운로드] 『슬픈 조국의 노래』 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2005.3.24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