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배상 언급 없이 일본에 ‘협력 파트너’ 강조
윤석열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협력 파트너’로 변했다”고 발언하자, 과거사 배상 등에 대해서는 언급 없이 일본을 협력 대상으로만 표현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윤 대통령은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낭독한 기념사에서 “지금 일본은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협력 파트너로 변했다”고 했다. 한일 양국이 협의 중인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에 대한 언급은 없이 나온 발언이었다.
일본 강제동원 문제를 제기해온 시민단체 쪽에선 이날 발언을 강하게 규탄했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대한민국 역사상 이런 3·1절 기념사가 있었느냐”며 “불의한 권력과 싸워서 주권을 쟁취했던 순국선열들에게 부끄러운 짓”이라고 비판했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일본과의 협력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전제가 필요하다. 그런 설명도 없이 협력해야 할 대상으로만 발언하는 것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는) 모욕적이고 허탈한 얘기”라며 “아무리 미래지향적인 메시지를 던진다고 해도 오늘 한 이야기는 과했다”고 지적했다.
강제동원 피해자를 지원하는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현재 일본 상황을 볼 때 협력 파트너라고 한다는 것은 굉장히 몰역사적 반응”이라며 “강제동원 사죄배상 거부하는 일본에 역사문제를 하나도 언급하지 않은 최초의 대통령 담화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시민들도 ‘과거사 언급 없는 협력’에 대해 3·1절 기념사로 적절하지 않다는 반응이다. 직장인 박아무개(29)씨는 “일본과 협력 자체를 반대하고 모든 일본인이 다 제국주의자라는 시각을 경계하는 사람인데도 부적절하게 느껴진다”며 “‘우리가 잘못했고 과거는 중요하지 않으니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올바른 협력이 아니라고 느껴진다”고 말했다. 직장인 장아무개(29)씨도 “아직도 제대로 사과를 받지 못한 위안부 피해자들이 있는데 3·1절날 일본과 파트너가 되었다는 발언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며 “일본과의 협력을 지향하는 것은 정세상 필요하겠지만, 굳이 이날 이렇게 발언하는 것은 일본에 애걸복걸하는 정권으로 비치는 것 같다”고 했다.
또 기념사 가운데 “104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 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대목도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직장인 정아무개(31)씨도 “3·1 운동의 중요한 의의는 독립 의지와 민족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인데, 세계 변화에 발맞추지 못해서 고통을 가져왔다는 내용은 선열들의 독립 의지와 희생을 비하하는 발언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이에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는 “일제 침략은 우리 잘못인데 러시아는 왜 비난하느냐. 세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우크라이나 잘못” “학교폭력 피해자한테 반 분위기 못 따라가고 약해서 당한 거라고 손가락질 하는 것과 똑같다”며 비판하는 글 등이 올라왔다. 이날 기념사와 관련해 트위터 실시간트렌드엔 ‘매국노’ ‘국권 상실’ 등이 오르기도 했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2023-03-02> 한겨레
☞기사원문: “대한민국 역사상 이런 3·1절 기념사가 있었나” 비판 이어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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