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안 보이는’ 일 반응
사과 얘기 일절 않고, 일 기업 변제 참여 방안에 “입장 없다”
수출관리 우대국 재지정 관련해서도 “징용 문제와는 별개”
한국 정부가 여론 반발에도 일본 강제동원(징용)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 방식의 배상안을 확정 발표했지만, 일본 측의 ‘성의 있는 호응’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의 발표 이후 강제동원에 대한 새로운 사과 없이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하겠다고 밝혔다. 미쓰비시중공업 등 강제동원 피고 기업을 대신해 기금 조성 사업에 참여할 것이라고 알려진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도 별다른 입장문이나 참여 계획을 내놓지 않았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6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이 발표한 한국의 강제동원 피해 배상 해법에 대해 “한·일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한 것으로 평가한다”면서 “앞으로도 윤석열 대통령과 의사소통을 긴밀히 하면서 한·일관계를 발전시키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역사인식에 관해서는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해 왔고, 앞으로도 이어갈 것”이라고만 밝혔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저녁 총리 관저에서 기자들과 만나서도 “(일본 정부는) 1998년 한·일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 이것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기시다 총리가 언급한 1998년 한·일 공동선언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발표한 것으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으로도 불린다. 오부치 총리의 ‘식민 통치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죄’가 명기됐다.
하지만 2012년 아베 신조 2차 내각이 들어선 이후 일본에선 공동선언의 의미를 퇴색시키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아베 전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역사 왜곡 발언으로 계속 논란을 빚었고, 이후 조선인 강제노동 피해와 관련해 왜곡된 전시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군함도’ 전시시설을 방문해 “(강제동원 주장은) 이유 없는 중상모략”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베를 이은 스가 요시히데 내각에서도 ‘종군위안부’ 호칭에서 ‘종군’을 삭제하는 내용의 각의 결정이 내려졌다.
이 같은 현실에도 기시다 총리는 새로운 입장 표명 없이, ‘역대 내각을 계승하겠다’는 두루뭉술한 말만 답습한 것이다. 강제동원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이미 해결됐고, 이번 소송도 한국이 국내에서 풀어야 할 사안이므로 일본 정부가 새삼스럽게 사죄를 표명할 이유가 없다는 기존의 입장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제3자 변제에 일본 기업이 참여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의 조치는 일본 기업의 재단에 대한 거출 등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며 “민간인 또는 민간 기업에 의한 국내외의 자발적 기부 활동 등에 대해서는 특별한 입장을 갖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앞서 일본 언론은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 등 피고 기업 대신 게이단렌이 기금 조성에 참여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날 게이단렌은 기금 조성 관련 아무런 입장문을 내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아울러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해제와 수출관리 우대국 재지정에 대해 “징용 배상 문제와는 별개”라면서 “수출관리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이 개시한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해결 프로세스의 중단을 포함해 한국 측에 적절한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는 5월 히로시마에서 열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윤석열 대통령을 초대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결정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2023-03-06> 경향신문
☞기사원문: “역사인식, 역대 내각 입장 계승”…일본은 꿈쩍도 안 했다
※관련기사
☞프레시안: 헛물 켠 윤 정부? 성의도 사과도 ‘역대급’으로 없는 일본
☞한겨레: “강제동원 인정 않는 일본 입장 완벽 반영…최악의 굴욕 외교”
☞한국일보: 강제동원 배상 피한 일본, 사과 한마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