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의 히,스토리] 이전 조치와 모순되는 국가보훈처의 조치들
윤석열 정부의 대일 굴욕외교는 위안부나 강제징용(강제동원) 피해자들의 한을 풀 기회를 봉쇄하고 독도 영유권마저 위험한 지경에 빠트리고 있다. 심지어 국민들의 식탁에 후쿠시마산 수산물을 올릴 위험성도 없지 않다.
대일정책으로 인한 이 같은 위기가 대통령실과 외교부에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윤석열 정부 내의 여타 기관들에서도 위기의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3일 한·미·일 연합군사훈련이 벌어지는 데서도 재차 강조되듯, 국방부와 군은 일본과의 군사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최전방 영토인 독도를 위협하는 일본과의 합동훈련을 하필이면 독도 인근에서 실시하기도 했다.
지난 3월 23일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대신과의 회담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에 관한 협력을 약속했다. 납치 문제를 매개로 하는 일본의 대북 압박에 다른 부서도 아니고 통일부가 가세하기로 한 것이다.
위안부 문제 역시 납치 문제다. 1993년 고노담화는 ‘강압에 의한 위안부 모집’을 시인했다. 한국인 위안부 납치 문제를 방기하는 윤 정부의 통일부가 일본인 납치 문제를 매개로 일본과 협력해 북한을 압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통일부의 목적이 남북통일인지 한일통일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일이다.
현충일이 있는 오는 6월, 국가보훈부로 승격될 국가보훈처도 대일문제와 관련해 비정상적 흐름을 보이고 있다. 박민식 보훈처장이 중점적으로 부각시키는 두 인물이 있다. 이승만과 백선엽이다. 박민식 처장은 만주 간도특설대에서 독립군을 탄압한 백선엽의 동상을 경북 칠곡 다부동전적기념관에 건립하는 계획을 1월 27일 연두 업무보고에서 밝혔다.
또 지난달 26일에는 ‘이승만 탄신 148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4·19의 적인 이승만을 찬미했다. 다음날에는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위한 사전 검토작업을 진행 중이라는 보훈처의 입장 표명이 있었다.
그런데 이승만·백선엽을 부각시키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이는 또 다른 흐름이 보훈처에서 진행되고 있다. 보훈처가 무리수를 써가며 독립운동가 조문기를 ‘2023년 7월 이달의 독립운동가’에서 배제한 일이다. 오류를 시정하라는 촉구가 지난 2월과 3월에 계속 나왔는데도 보훈처는 응하지 않고 있다.
이전 조치와 모순되는 보훈처
독립운동가 조문기(1927~2008)는 해방 이전의 독립운동뿐 아니라 해방 이후의 친일청산 작업에도 기여했다. 1999년부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으로 일하며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주도하다가 사전 완성 1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보훈처가 발행한 <독립유공자 공훈록> 제8권에도 명기됐듯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조문기는 일제가 한국인들을 전쟁에 동원하고자 광분해 있었던 1945년 7월 24일 부민관 의거를 일으켰다. 지금의 서울시의회인 부민관에서 조선총독·조선군사령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규모 친일 행사인 아시아민족분격대회가 그날 열리고 있다. 조문기는 폭탄을 던져 대회를 중단시켰다. 이날의 의거는 그의 주도하에 강윤국·유만수 등의 참여로 이뤄졌다.
그런데 보훈처는 작년 12월 14일에 ‘2023년 이달의 독립운동가 34인’을 발표할 때 강윤국·유만수만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의거의 주역인 조문기는 배제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2월 27일 자 보도자료에 따르면, 보훈처는 윤영덕 의원이 그 이유를 질의하자 “강도범죄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사실” 때문이라고 답했다.
언론 취재가 시작되자 “1심에서는 강도범죄로 실형을 받았고 2심에서 해당 혐의는 무죄가 난 것을 확인했지만, 맥아더 포고 2호 위반으로 1년 6개월 형 받은 것을 확인해 심사 진입 단계에서 제외했다”고 답변을 수정했다. 3월 1일 자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에 올린 ‘사실은 이렇습니다’에서는 “국가보훈처는 광복 이후 수형 사실이 있는 경우에는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에서 제외”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문기는 해방 뒤 남북분단을 반대하는 북한산 봉화시위를 일으켰다가 미군정 포고령 제2호 위반자로 체포됐다. 이를 근거로 보훈처가 그를 배제했던 것이다. 그런데 미군정 포고령 위반자이므로 이달의 독립운동가가 될 수 없다는 답변은 보훈처 자신의 이전 조치와 모순된다. 보훈처가 ‘2021년 6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한 이선호 역시 미군정 포고령 위반으로 실형을 받았다.
1904년생인 이선호는 순종황제 장례일을 기해 발생한 1926년 6·10만세운동을 기획하고 주도했다. 이선호 역시 미군정 포고령을 위반했다는 점은 김희곤 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의 저서에서도 확인된다. 김희곤 소장이 쓴 ‘6·10 만세운동의 첫 외침 이선호’의 목차에 “안동에서 맞은 해방, 미군정 포고령 위반으로 금고형”이 있다.
이처럼 불과 2년 전인 2021년에 미군정 포고령 위반자를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그런데도 보훈처는 “광복 이후 수형 사실이 있는 경우에는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에서 제외”하고 있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2월과 3월에 표명된 그 같은 공식 입장은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결정을 담은 지난 1월 18일 자 보도자료와도 충돌한다. 이 보도자료는 ‘미군정 포고령 제2호 위반으로 기소된 사람에 대해서는 1948년 9월 27일 자 대통령령인 일반사면령에 따라 면소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 진실화해위 판단이라고 설명한다. 미군정 포고령 제2호가 위헌이라는 2021년 판례도 있다고 덧붙였다.
대일 굴욕외교와 무관치 않은 흐름
미군정 포고령 제2호는 위헌이라는 법원 판례가 있고 포고령 제2호에 의한 기소의 효력을 취소해야 한다는 진실화해위 판단도 있었다. 포고령 제2호 위반자인 이선호를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한 보훈처의 조치도 있었다. 이런 사실들은 포고령 위반자라는 이유로 조문기를 이달의 독립운동가에서 배제할 이유가 전혀 없음을 보여준다.
보훈처는 조문기의 동지인 강윤국·유만수만 ‘2023년 7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그런데 조문기 회고록인 <슬픈 조국의 노래>에 따르면, 유만수는 조문기의 포고령 위반을 누구보다 열심히 도왔다. 회고록은 “유만수 동지가 제일 먼저 합류하여 나를 도왔고”라고 말한다. 유만수 역시 같은 사건으로 1년 징역형을 받았다.
이는 조문기를 배제한 보훈처의 조치가 얼마나 불공정하고 불합리한가를 잘 보여준다. 합리적 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조문기를 배제할 목적으로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조문기 배제와 이승만·백선엽 부각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친일’이다. 조문기는 친일 청산을 추진한 상징적 인물 중 한 명이고 이승만은 국회 반민특위를 와해시켜 친일 청산을 무산시켰다. 백선엽은 친일 행적으로 인해 최근 들어 사회적 평가가 급격히 바뀌는 대표적 인물이다.
조문기와 이승만·백선엽에 대한 조치는 친일청산 문제에 대해 보훈처가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친일 전력이 있는 국가유공자들에 대해 앞으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게 한다.
이처럼 국가보훈처는 친일 청산을 추진한 인물에 대한 평가를 떨어트리고, 친일을 범했거나 친일 청산을 훼방한 인물들에 대한 평가를 높이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범하는 대일 굴욕외교와 무관치 않은 흐름이다.
작년 12월 9일에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이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로 예정돼 있었지만, 외교부의 방해로 무산됐다.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훈장을 주는 모습과 한국 정부가 일본과 손잡고 피해자들의 배상 청구를 막는 모습은 상호 모순된다. 훈장 취소는 그런 모순을 제거하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조문기를 이달의 독립운동가에서 배제한 것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친일 청산 문제에 관한 윤 정부의 향후 행보를 예고하는 징후로 볼 수 있다.
김종성 기자
<2023-04-03>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친일’? 윤석열 정부의 행보 예고하는 이상한 징후
※관련기사
☞오마이뉴스: 김종성의 히,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