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부활동

[오마이뉴스] 13년째 무보수 활동… 수도사 같은 한약사 박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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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호진 시인의 삶의 아름다운 당신] 민족문제연구소 부천 지부장 박종선

▲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 회원들이 부천역 북부 마루광장에서 1차 ‘강제동원 굴욕협상 규탄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 박종선

“윤석열을 퇴진시키려면 서명도 받고 세게 좀 하시오!”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아래, 부천지부) 회원들이 부천역 북부 마루광장에서 1차 ‘강제동원 굴욕협상 규탄집회’를 진행하는데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문제를 제기했다. 부천지부 회원들이 든 피켓 중에 ‘친일 매국노 윤석열 퇴진’이라는 문구를 지적하면서 강력한 운동을 요구했고, 시민의 요구에 힘을 받은 부천지부는 다음 날부터 피켓 시위와 함께 ‘윤석열 퇴진 서명 운동’을 병행했다.

“윤석열 굴욕외교 반대합니다!”
“윤석열 퇴진을 지지합니다!”

지난 3월 10일부터 시작해 6일 현재 20회차 집회를 이어가고 있는 부천지부(지부장 박종선)는 경찰에 집회신고 한 대로 7일까지의 1차 ‘강제동원 굴욕협상 규탄집회’를 마친 뒤에 4월 8일부터 5월 6일까지 2차 규탄 집회를 이어가기 위해 집회신고를 마쳤다. 부천지부는 시민들의 퇴근 시간에 맞춰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집회를 진행하고 있는데 회차를 거듭할수록 시민들의 호응도가 높아가고 있다.

▲ 일본 제품 불매운동 피켓 시위에 참여한 박종선 지부장과 큰아들.(맨 왼쪽) ⓒ 박종선

집회 장소인 부천역 북부 마루광장은 서민들의 통행로이자 만남의 광장이다. 이곳을 지나는 시민 중 20~30%가량의 시민들이 부천지부 회원들이 든 피켓 내용을 따라 하면서 주먹을 불끈 쥐거나 서명 운동에 동참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굴욕외교에 대한 반발 민심을 드러냈다. 60대로 보이는 어떤 시민은 “윤석열에게 속아서 표를 주었는데 노인 일자리를 빼앗아 갔다”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수고들 많으신데 커피 좀 드시고 하세요!”

50대로 보이는 남성이 커피 6개를 사와 부천지부 회원들에게 건넨다. 그 시민에게선 고달픈 삶을 사는 서민의 힘겨움과 함께 반서민 정권에 대한 분노와 연대 의지가 읽힌다. 롤케이크를 선물한 40대 남성은 불끈 쥔 주먹을 흔들면서 ‘윤석열 OUT’ 구호를 외치면서 귀갓길을 서둘렀다. 부천지부 회원에게 전달한 롤케이크는 어쩌면 가족에게 주려고 샀다가 뜨거운 그 무엇에 의해 나눈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날은 30대 여성이 박카스 10개짜리 1박스를 전달하면서 시민들을 대신해 싸워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간혹, 시비 거는 취객도 있었으나 이들은 여론이 윤석열 정권의 굴욕외교와 반서민 정책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고 느낀다.

헌신과 희생의 본을 보이는 시민운동가

▲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부천시민 1200명이 참여한 부천시 만세운동 재현 행사에서 대회사를 하고 있는 박종선 민문연 부천지부장. ⓒ 조호진

부천지부는 민족문제연구소 산하 30여 곳의 국내외 지부 가운데에서도 선도적이고 모범적인 지부로 손꼽힌다. 2005년 창립한 부천지부는 부천의 항일 독립운동 연구와 일제 잔재 청산 그리고, 남북 평화통일을 위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2023년 현재 부천지부 회원은 350여 명이다.

회원관리와 부천의 항일운동 발굴과 연구 그리고, 일본 제품 불매 운동 등의 현안 관련 집회와 지역 연대활동을 하려면 상근 활동가가 필요하다. 그런데, 재정 문제 등에 의해 상근자를 두지 못한 가운데 박종선(46) 지부장이 상근자 역할을 하고 있다. 부천지부가 핵심 지부로 손꼽힐 수 있었던 것은 묵묵히 헌신하는 박 지부장의 솔선수범 덕분이다. 2010년부터 민족문제연구소 활동을 시작한 박 지부장은 2011년부터 6년간 부천지부 사무국장을 지낸 뒤 2017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 7년째 지부장을 맡고 있다.

박 지부장은 재임 동안 ▲2017년~2020년 부천시민과 함께하는 역사강좌 ▲2018년 제주 4.3항쟁 70주년 특별강좌(강사 경기대 박진우 교수) ▲2018년 부천시 상동에 있는 ‘시와 꽃이 있는 거리’에 설치됐던 서정주 등 친일문인 3인의 ‘국화 옆에서’ 등 4개 작품 철거 요구 관철 ▲2019년 부천시의회 앞 화단에 설치된 ‘고향의 봄’ 노래 시비 철거 ▲2019년 3.1운동과 임정 100주년을 맞아 1919년 부천 소사리 만세운동을 기념하는 부천시민 1200여 명이 참여한 ‘부천시독립운동 재현행사’ 주관 등을 해냈다.

또, ▲2020년 ‘부천시 항일독립운동 기념에 관한 조례’ 제정 ▲2020년 <친일파와 독립운동가의 엇갈린 삶_웹툰 ‘한 시대, 다른 삶’>(이육사와 서정주 등 친일과 항일의 다른 삶을 살았던 역사 인물 10편) 웹툰과 만화로 제작해서 경기도 초중고 2,400여 곳에 무상 보급 ▲2021년 ‘부천시 일제 잔재 청산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 ▲2021년 항일음악 ‘독립가1’ 등 12곡이 담긴 학교 종소리 음원 제작해서 경기도 내 초중고에 무료 배포 ▲2022년 부천시 평화통일기반조성사업(해주시 안중근공원 건립을 위한 시민포럼/ 로저 셰퍼드 작가의 백두대간 강연회) 등의 사업 전개와 함께 부천의 친일파 연구물을 지역신문에 연재하고 있다.

▲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가 펴낸 <친일파와 독립운동가의 엇갈린 삶_웹툰 ‘한 시대, 다른 삶’> ⓒ 박종선

13년째 무보수 활동가인 그는 출마 계획이 전혀 없다. 지역의 어떤 ‘장’ 자리를 꿰차려고 꼼수 부린 적도 없다. 그렇다고 바라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가 간절히 원하고 꿈꾸는 것은 일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민족을 배신한 친일파와 그 잔재들을 완전히 청산한 나라다. 그래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온전히 기리는 정의로운 세상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이다.

그는 학생운동권 출신이 아니다. 그가 친일 문제에 관심 가지게 된 것은 문학적 가치관 때문이었다. 문학 청소년이었던 그는 고교 시절, 친일파 문인 서정주를 놓고 친구와 토론했는데 그 친구는 “서정주의 삶과 문학을 분리해야 한다”며 서정주의 친일 행위를 옹호했던 반면 그는 “삶과 문학을 어떻게 분리할 수 있는가. 민족을 배신한 친일파 서정주와 그의 작품을 한국 문학에서 퇴출시켜야 한다”고 반박했다. 진실은 단순하고 정직해서 수난을 당하는 반면 거짓은 궤변으로 남루한데도 이리도 질기고 악랄하다.

그의 시민운동은 삶이 있는 운동이다. 간호사 출신인 아내와 두 아들은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인 동시에 남편과 아빠의 지지자이자 동지다. 그의 가족에게 친일청산과 일본제품 불매운동 집회 및 시위 현장은 살아 있는 역사 교육현장이다. 역사를 외면한 민족에게 미래가 없는데 가족에겐들 미래가 있겠는가. 그는 두 아들과 함께 부천역 광장에서 일본제품 불매운동 피켓 시위를 전개했고 광화문 촛불 집회에 참여하면서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는 시민의 의무를 다했다.

한약을 무료로 나누는 19년 차 한약사

▲ 19년 차 한약사 박종선. ⓒ 조호진

박종선 지부장은 올해로 19년 차 한약사다. 한약사 출신의 어른 김장하 선생처럼 부천의 한약사인 박종선 또한 자가용이 없다. 운전면허증은 진즉에 취득했고 자가용을 사려고 하면 얼마든지 살 수 있지만 근검절약하며 살라고 하신 부모님의 가르침을 위반할 생각이 없다. 한약을 배달해야 하거나 바람을 쐬고 싶으면 자전거를 이용하면 된다.

효심이 지극한 그는 전주에 사시는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는다. 자가용을 타고 가면 편하게 귀향할 수 있는데도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는 불편함을 감수한다. 자가용의 편리함보다 대중교통의 불편함을 선택한 그의 가족들은 천천히 가면서 차창 밖 풍경을 즐기며 가족애를 나눈다. 그는 “바쁘지 않게 천천히 사는 삶이 좋다”고 말했다.

박종선 한약사가 들고 다니는 서류가방은 아주 낡았다. 20년이 넘으면서 곳곳이 낡고 헤졌는데도 버리지 않는 것은 어머님이 주신 선물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무엇이든 쉽게 사고 마구 버리는 사람들처럼 자본주의 노예로 살고 싶지 않아서다.

박종선 한약사의 가족은 편리함보다는 불편함을 선택했다. 어떤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들이 흘리는 눈물을 아무렇지 않게 외면하건만 그의 가족들은 약자들이 흘리는 눈물이 가슴 아파서 외면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불의한 권력이 휘두르는 폭력을 외면하는 삶을 편하게 살아갈지라도 그의 가족은 그 폭력을 두고 볼 수 없어서 저항하는 불편한 삶을 살아간다. 그렇다고 그의 가족이 특별히 용감하거나 대단한 가족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행함이 없는 사랑과 정의는 죽은 것에 불과하기에 묵묵히 행하려고 애쓸 뿐이다.

박종선 한약사는 수완이 좋은 한약사가 못 된다. 양심을 팔면 한약을 팔기 쉬운데 양심을 팔지 못한다. 그가 수입의 10분의 1인 50만 원을 매월 시민단체와 진보언론과 그리고, 미혼모와 위기 청소년 돕는 단체에 후원할 수 있는 것은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등 허튼 지출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위기 청소년과 미혼모를 돕는 사람과 독립운동가 후손과 부천의 복지관과 공익활동가와 버림받은 손주를 키우는 원미동 할머니의 건강을 돌봐주고 싶어서 한약을 무료로 나눈다.

▲ 시민운동가 박종선의 20년 넘은 낡은 서류가방. ⓒ 조호진

어떻게 살 것인가?

정직한 한약사이자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성실한 시민운동가 박종선을 보면서 복잡하거나 비루하지 않게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지하게 용감하지 않을지라도 불의에 맞설 수 있다는 것, 돈을 많이 벌지 못할지라도 허튼 과소비를 하지 않으면 가난한 이웃을 도울 수 있다는 것, 거짓 투성이 욕망의 삶으로 얻는 재물과 권력에 비해 정직하고 성실한 삶은 낡은 가방처럼 남루해 보일지라도 그 삶이 깊어지면 그 샘에서 자족과 감사의 삶을 길어 올릴 수 있다는 것.

박종선은 언제나 묵묵히 자기 길을 간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 옳을지라도 다른 길을 선택한 사람들을 정죄하거나 비판하지 않으니 시비에 걸리지 않는다. 수많은 헌신과 희생을 할지라도 공치사를 하거나 자기를 자랑하지 않으니 다툴 일이 없다. 그가 한약사이기보다는 수도사처럼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수도사 같은 한약사 박종선의 눈이 맑은 것은 삶은 소박하고, 행동은 겸손하며, 나눔은 진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경상도 진주는 한약사 김장하 선생이 계셔서 좋겠다. 어른이 없는 이 세상에서 어른과 함께 살고 있으니 남강은 더욱 유유히 흐를 것이다. 진주에 비할 바 아니지만 경기도 부천에는 어른 김장하 선생의 삶을 따르는 정직한 한약사이자 성실한 시민운동가 박종선이 있으니 부끄러운 삶을 부끄러워할 기회가 있지 않겠는가. 어느 날 문득, 욕망의 삶에서 하차하고 싶거나 혹은 자족과 감사의 샘물에 목을 축이고 싶거든 부천의 시민운동가 박종선을 찾으시라.

<2023-04-07>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13년째 무보수 활동… 수도사 같은 한약사 박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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