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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게 다 사실인가요?” 한 고등학생이 윤 정부에 던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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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나의 스승] 난데없는 이승만 재평가 움직임, 싸늘한 ‘교실 민심’

▲ 3월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이화장에서 열린 이승만 전 대통령 탄생 148주년 기념식에서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역사의 퇴행도 유분수지, 수십 년 전 독재정권 시절로 완벽하게 회귀한 모양새다. 얼마 전 시내 곳곳에 특정 정당의 이름으로 ‘이승만 대통령 탄신일 경축’ 현수막이 내걸리더니, 급기야 정부까지 나서서 ‘국부 재평가’를 이유로 수백억 원의 혈세를 들여 이승만 기념관을 짓겠다며 맞장구를 쳤다. 이러다 ‘이승만 대통령 탄신일’이라는 국가 기념일이 지정될지도 모르겠다.

4.19 혁명으로 종지부를 찍었던 이승만 우상화 작업이 60년도 더 지난 지금 좀비처럼 다시 스멀대고 있다. 가깝게는 이명박 정권 당시의 ‘건국절 논쟁’을 재점화하려는 시도이고, 멀게는 반공이 국시였던 독재정권의 숱한 만행들에 면죄부를 주려는 속셈이다. 이 땅의 기득권 세력에게 극우의 뿌리인 이승만에 대한 ‘국민적 호감’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그러나 우리 현대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승만의 행적을 호의적으로 평가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미소 냉전 시기, 미국의 편에 서서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아냈다는 사실을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지만, 그조차 과연 칭송받을 만한 업적인가를 두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전쟁과 분단의 상처가 너무나 크고 깊어서다.

명색이 역사 교사지만, 이승만의 공적이 뭐냐고 묻는다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통령으로 추대됐다는 것, 그리고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뒤 초대 대통령을 역임했다는 것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그나마 두 번 모두 임시정부 요인들에 의한 탄핵과 4.19혁명으로 권좌에서 쫓겨났으니 공적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하다.

그를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명명하기도 어색하긴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가장 위대한 독립운동가들에게 수여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의 제1호 대상자였다는 걸 차마 증거 삼을 순 없다. 대통령이 된 후 건국훈장 포상제도를 만든 이가 바로 이승만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셀프 훈장’이라는 조롱이 나오는 이유다.

이후로도 건국훈장은 이승만과의 친소 관계에 따라 훈격이 정해지는 웃지 못할 상황이 이어졌다. 일례로, 그가 임시정부 구미위원부에서 활동할 당시 비서로 일했던 임병직이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 수훈자로 이름을 올렸다. 헤이그 특사 이상설도,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 이동휘도, 한인애국단 이봉창도, 심지어 불세출의 독립운동가 신채호조차도 받지 못한 훈격이다.

이승만을 둘러싼 여전한 의문들

일제강점기 이승만이 미국에서 벌였다는 독립운동은 석연찮은 대목이 많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의 비밀문서 봉인이 해제돼 세상에 알려진 자료를 바탕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은 그가 과연 독립운동가 맞나 싶은 의문을 자아내게 했다.

2012년 <백년전쟁>이 처음 방영됐을 때 보수단체로부터 십자포화가 쏟아졌다. 대한민국을 폄훼하는 그릇된 역사관을 심어주고 있다며, 작품을 제작한 민족문제연구소를 반국가단체로 매도했다. 당시 보수 정권의 맞장구에 화들짝 놀란 방송통신위원회는 제재를 가했다. 제재 조치를 취소해달라며 방통위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행정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지난 2019년 대법원은 과거 해당 영상을 제재한 방송통신위원회의 결정이 위법하다고 최종 판시했다. 당시 대법관 13명 가운데 김명수 대법원장 등 7명은 다수의견으로 “백년전쟁이 공정성·객관성·균형성 유지 의무 및 사자 명예존중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비록 비아냥거리는 내레이션과 일부 자극적인 자막이 ‘옥에 티’일지언정, 사실관계를 현저히 왜곡할 만큼의 내용은 아니라는 걸 인정받게 된 셈이다.

▲ 역사다큐멘터리 <백년전쟁> 포스터. ⓒ 민족문제연구소

개인적으론, 이승만의 행적에 대해 나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해왔는데 영상을 본 뒤 며칠 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설마 그랬을까 싶어 이승만의 업적을 칭송한 자료를 부러 찾아보기도 했다.

당시 해당 영상을 수업 시간에 활용했다가 봉변을 당한 쓰라린 기억도 있다. 지금도 교과서에 언급된 내용과 이면의 사실을 대조하며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하도록 이끄는 게 역사교육의 고갱이라고 믿고 있다. 역사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아이들 앞에서 “사실은 없다. 오로지 해석만 있을 뿐”이라는 독일 철학자 니체의 금언을 강조하는 이유다.

어처구니없게도 수업 시간에 <백년전쟁>을 보여줬다는 이유로 ‘일베'(일베저장소, 극우 성향 커뮤니티)에 의해 간첩 신고를 당한 것이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욕보이는 건 스스로 ‘빨갱이’임을 인증하는 일이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모독하는 행위라는 논리였다. 당시는 일베의 전성기였고, 그들에겐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국부 이승만은 신성불가침한 존재였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이듬해 느닷없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가 터지면서 글 쓰고 말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했다. ‘교과서 국정화 반대 선언’에 참여하면서도 괜히 움츠러들었고, 수업 시간에도 논쟁거리가 될 만한 내용은 웬만하면 건너뛰었다. 민망한 고백이지만, 일베의 막장 행태에 주눅이 들어 몸을 사린 것이다.

호기롭게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던 박근혜 정부는 압도적인 반대 여론에 부딪혀 무릎을 꿇었고, 새 교육과정에 따른 한국사 검인정 교과서가 빛을 보았다. 그제야 ‘자기 검열’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새 교과서는 근현대사 위주로 재구성됐고, 다양한 자료와 함께 상세히 서술됐다. 그중에도 이승만과 관련된 내용은 두세 단원에 나뉘어 실릴 만큼 풍부해졌다.

이전 교과서에서 이승만은 1919년과 1948년에 잠깐 등장한 뒤, 1960년을 끝으로 이름이 사라졌다. 임시정부의 대통령이었고,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대통령이 됐으며, 4.19 혁명으로 하야한 대통령이었다는 게 전부였다. 공과 과를 따지기엔 서술된 내용도 많지 않은 데다, 집권 기간에 저질러진 숱한 비위에도 그의 이름은 늘 사건 뒤에 감춰지기 일쑤였다.

새 교과서에 현대사의 분량이 크게 늘다 보니 덩달아 이승만의 행적도 곳곳에 등장한다. 필자가 교직생활을 하며 만나는 고등학생들도 이젠 대통령이라는 직책보다 그와 연관된 사건들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아이들은 이승만에 관해 공부하면 할수록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이용해 사적 권력욕에 취해 정적을 제거하고 수많은 민간인을 희생시킨 인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애써 찬반 토론의 장을 마련해보려고 해도 이승만 편에 서서 그를 두둔하려는 아이가 거의 없다. 그나마 그가 임시정부의 대통령으로 추대되고, 제헌 국회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는 건 그의 공적을 당시 독립운동가와 정치인이 두루 인정한 것 아니겠냐며 반문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이젠 아이들에게 <백년전쟁>을 굳이 보여줄 필요가 없다.

‘현대사 덕후’ 고등학생의 분노

▲ 이영일 전 의원 등 각계 원로들이 3월 2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이승만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이들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 전 대통령 탄생 148주년을 맞아 4.19세대 출신들이 이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최근 한 고등학생이 이승만의 행적에 대해 던진 질문은 분노의 함성에 가깝다. 자타공인 현대사 ‘덕후’인 아이의 질문에 소상히 답해주는 것이 역사 교사의 의무일 테지만, 현대사 관련 교양 도서의 일독을 권하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여기에 이승만과 관련된 그의 분노 섞인 질문을 열거한다. ‘이승만 탄신일’을 경축하고, 수백억 원의 혈세로 이승만 기념관을 짓겠다는 분들이 질문마다 납득할 만한 답변을 달아주신다면, 대신 질문한 아이에게 전해주겠다.

“4.19 혁명으로 하야할 때까지, 이승만이 태어난 3월 26일에는 국경일처럼 학교 수업이 없었다는 게 사실인가요? 북한에서 김일성의 생일을 명절로 지내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죠?”

“해방 후 김종원과 김백일, 김창룡 등 독립운동가들 때려잡던 악질 친일파들을 이승만이 중용해 측근으로 삼았다는 게 사실인가요? 그렇다면 친일파와 다른 점이 뭐죠?”

“제주 4.3 사건 때 서북청년단을 토벌대로 내려보내고, 정부 수립 후 국군통수권자로서 초토화 작전 명령을 내려 수만 명의 민간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게 사실인가요?”

“여수 순천 10.19 사건 때 반란군의 부역자를 색출한다는 이유로 수많은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반란으로 불리던 사건이 10.19 사건으로 공식 명칭이 바뀌었다면, 이승만의 통치 행위가 역사적 정당성을 잃었다고 보는 게 맞지 않나요?”

“6.25 전쟁이 터지자 한강철교를 폭파해 피난길을 끊어놓고선 서울 수복 후에 북한군에 부역했다며 피난 못 간 서울시민들을 학살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좌익 인사들을 전향시키겠다며 스스로 국민보도연맹이라는 조직해 반강제적으로 가입시켜놓고선 6.25 전쟁이 터지자 이적 행위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집단 학살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6.25 전쟁이 한창인데도 대통령을 재임할 욕심으로 반대파 국회의원을 감금한 뒤 불법적으로 헌법을 고치는 만행을 저질렀다는 게 사실인가요?”

“6.25 전쟁으로 전 국토가 폐허가 되고 온 국민이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또다시 대통령에 출마할 요량으로 견강부회의 사사오입 논리로 헌법을 난도질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대통령 선거에서 겨뤘던 상대 후보 조봉암이 평화 통일을 주장하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해 사형시켰다는 게 사실인가요? 50여 년이 지나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났으니,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뜻일까요?”

그는 이승만을 존경한다는 이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약 질문을 던진 현대사 ‘덕후’에게 납득할 만한 답변을 내놓지 못한다면, ‘이승만 탄신일 경축’ 현수막과 이승만 기념관 설립 운운하는 정부의 방침은 극우적 망동이자 혈세 낭비의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서부원 기자

<2023-04-09>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이게 다 사실인가요?” 한 고등학생이 윤 정부에 던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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