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자료 톺아보기 48]
식민통치의 화려한 선전장이 된 경복궁(1)
– 조선박람회 사진엽서
• 강동민 자료실장
조선박람회 홍보엽서
조선총독부 주최로 경복궁에서 열린 조선박람회의 홍보엽서로 경성협찬회(京城協贊會)가 발행하였다. 조선박람회를 후원하고 보조하는 관변단체인 경성협찬회가 그림엽서와 안내도서 등의 제작 판매를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박람회 관련 기념엽서는 대다수가 이곳에서 배포한 것으로 보인다. 엽서의
도안은 박람회 회장의 주요 건물 모습과 벼, 곡괭이, 공구, 생선, 뱀 등 전시된 생산물품이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조선박람회 정문
박람회장의 매표소 기능을 한 정문. 입장료는 성인 30전, 아동 15전, 군인 20전 등 싼 가격은 아니었다.
조선총독부는 통치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조선박람회 경성협찬회를 조직하고 1929년 9월 12일부터 10월 31일까지 ‘조선박람회’를 개최하였다. 일제강점기를 통틀어 조선총독부가 직접 박람회를 주최한 경우는 딱 두 번뿐인데 1915년의 조선물산공진회가 첫 사례이고, 다른 하나는 1929년에 열린 ‘조선박람회’였다. 개최 장소는 모두 경복궁이었고 개최 기간도 거의 같다.
두 박람회의 관람객이 각각 100만 명을 넘었는데 조선총독부의 위세에 각 지역에서 동원된 인원도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물산공진회의 개최 명목은 대한제국을 강점한 후 5년 동안 조선을 통치한 실적을 대내외에 선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선박람회도 ‘20년 동안 관민이 일치하여 힘들여 쌓아 올린 실적을 내외에 천명’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개최 취지 역시 조선물산공진회와 다르지 않다. 굳이 찾자면 일본의 조선통치 기간만 늘어났을 뿐이다. 경복궁의 전각과 수목들은 조선총독부가 조선물산공진회 개최 때 이미 훼손하기 시작하였는데 조선총독부 신청사 건축으로 1920년대 경복궁 내 남은 전각은 근정전, 경회루, 수정전, 사정전 등 얼마 되지 않았다.
남은 전각들은 조선박람회의 여러 전시관으로 사용되었는데 조선물산공진회 때와 마찬가지로 경복궁 근정전은 조선박람회의 식장으로, 경회루는 연회장으로 사용되었다.
조선박람회의 출품은 제1부 농업을 시작으로 수리, 임업, 광업, 수산 등 총 22부로 구성되었다. 조선물산공진회의 13부 구성과 비교하면 대폭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는데 통치 기간에 비례하여 성과를 크게 홍보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박람회의 규모를 조선박람회 사무국에서 결정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출품 수의 증가에 따라 진열관의 수도 늘어났고 이로 인해 경복궁은 남은 전각마저 전시장으로 전락하여 궁궐의 모습은 만신창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