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멜리오라’,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하미경 후원회원
방학진 기획실장
우리에게 낯익은 이름의 철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존 듀이는 “민주주의는 고향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민주주의의 고향은 동네 공동체이다”라고 말했다. 동네가 이렇게 거창한 곳이었나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교과서에서 우리 민족에게는 향약, 두레, 품앗이 등 공동체 전통이 강했다고 배웠지만 현실에서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웃에게 인사는커녕 바로 옆집 사람의 이름도 모른 채 지내고 있다. 어느 학자는 우리의 끈끈한 공동체가 박정희 시대를 거치면서 새마을운동, 통반장제도, 반상회 등 관제 공동체로 변질되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여하튼 동네 즉 ‘마을’이 우리에게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지방자치가 부활하면서 도시빈민운동가들의 목적의식적인 풀뿌리 운동이 확산되면서부터일 것이다. 현재 전국에서 약 200개가 넘는 지역에 마을공동체 조례가 있는데 조례에서 ‘마을’은 “주민이 생활환경을 같이하며 주민 서로에 대한 이해와 소통을 바탕으로 주민 스스로의 협력을 통해 형성한 삶터(공간), 사람(조직) 및 공동체(관계)가 통합된 집단”이라고 정의된다.
이번 달에는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에서 열심히 마을공동체를 일궈가고 있는 ‘같이빚다’ 대표 하미경회원을 만났다. 한때 이 지역은 현재의 LH공사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공기업 ‘토지금고’가 염전이었던 이곳에 택지를 조성하면서 그 위로 집들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번성했었다.
지금은 상권이 신도심으로 옮겨가면서 이 지역 상가들이 대체로 낙후되고 허름하지만, 마을공동체 ‘같이빚다’가 활동하는 공간인 ‘멜리오라’는 단연 돋보이는 건물이다. 먼저 하미경 대표에게 건물 설명을 부탁했다.
“공간 멜리오라는 1부터 3층까지 커피숍, 4층은 조그만 공연무대와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공유 공간이고 5층은 그날그날 갓 구워진 빵과 디저트가 만들어지는 베이커리, 6층은 다양한 식물과 화초가 있는 루프탑으로 4층뿐 아니라 2층, 3층 그리고 루프탑까지 다양한 교육 및 활동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멜리오라(Meliora)의 뜻은 라틴어로 ‘To be better’로 좀 더 좋은 나은 세상 또는 공간이 되도록 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하미경 대표는 건물주이다. 그런데 각 층마다 임대해도 될 터인데 하 대표는 애초에 건물 설계 때부터 2개 층을 상업 공간이 아닌 주민 공유 공간으로 만들었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20대 후반에 캐나다 토론토로 유학 가서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KIDS COME FIRST CHILDCARE CENTRE에서 근무하며 지금의 남편을 만나 10여 년을 그곳에서 살았고 지금은 한국에서 남편은 교수로 저는 사업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캐나다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문화 충격을 받았는데 그중에서 종교, 인종, 언어, 이념을 뛰어넘어 인간이 깊은 교류와 소통이 가능하며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기에 저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는 10년이 넘었는데 처음엔 초등학교, 고등학교, 관공서, 그리고 일반 영어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과 장애인 아시아게임에서 통역을 담당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미경 대표는 캐나다에서 공부뿐 아니라 공동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캐나다에서 경험을 한국에서 적용하게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세월호 참사가 터졌고 그 일로 충격을 받았는데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모습과 그것을 묵인하는 국민들을 보면서 또 한 번 충격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 사건을 보도하는 TV 매체나 신문사에 큰 실망을 느껴작은 목소리지만 진실을 보도하고 말하는 유튜브 채널을 찾아보며 함께 분노하면서도 동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즈음 민족문제연구소가 근현대사를 주제로 다양한 교육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울림과 감동을 받았고 근현대사에 대해 많은 부분을 우리가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채로 지내 왔음을 느꼈습니다. 이후 이러한 교육이 전 국민으로 확대되기 위해서는 작은 힘을 보태야 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민족문제연구소에 후원해오고 있습니다.”
하미경 대표는 공간 멜리오라에서 베이커리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어머니가 40년 넘게 하셨던 식당을 이어받아 운영한다. 게다가 어머니의 병수발도 들고 있어 한시도 쉴틈이 없을 것 같은데 마을공동체 활동까지 하고 있으니 그 열정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캐나다에서 살며 다양한 자원봉사를 경험하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는 자동차 세차와 한국의 명절날 음식을 판매한 수익금을 밴쿠버에 퍼스트 스텝이라는 재단을 통해 북한 어린이를 위한 콩우유 만드는 기계를 선물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름 보람도 느끼고 한민족의 분단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가 가진 지식과 재능을 필요한 곳에 나눌 때마다 분에 넘치는 감사와 칭찬을 받으며 오히려 제가 더 큰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면 반드시 자신의 재능과 지식을 가진 분들과 함께 그 재능과 지식 나누면서 서로가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공동체 활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결국 그러한 다짐은 2022년 ‘같이빚다’ 마을공동체로 현실이 되었다.
“저희 같이빚다 마을공동체는 주민이면서 교육전문가 4인이 함께 뜻을 모아 시작하였고 미추홀구와 인천시 공모사업을 통해 다양한 교육·문화 콘텐츠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도자기 공예, 세무지식 QnA, 반려견 바로 알기, 원어민 영어회화, 인문학 강의 및 역사 답사, 핸드 드립 커피의 세계, 클래식 힐링타임, 중창 클래스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입니다. 처음에는 열정만 앞서고 홍보도 잘 되지 않아 좋은 강사진과 알찬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수강생 10명을 모으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정말 현실의 벽을 느끼면서 홍보를 위해 초보적이지만 유튜브도 만들고 SNS활동도 하며 꾸준히 마을공동체를 널리 알린 결과 지금의 좋은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나도 하미경 대표의 연락을 받고 공간 멜리오라에서 역사 특강과 강화도 답사를 안내한 적이 있었다. 돈보다는 마을에서 이웃과 함께 더욱 열심히 마을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기회가 된다면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또는 재단으로 입지를 넓혀 나가고 싶다는 하미경 대표의 열정에 진심 어린응원을 보낸다. 하지만 대통령은 물론 인천시장도 바뀌고 나니 마을공동체 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 또는 아예 사라지는 지역이 많아 걱정이다.
“저는 제가 성장하고 부모님의 일터였던 이곳을 사랑하고 더 발전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해 나가려고 합니다. 눈에 보이는 발전과 개발이 아닌 주민 의식 수준을 높이고 관계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끌어올리며 자율성과 독립성을 가진 존재와 단체가 되어 사회적, 정치적으로 힘을 낼수 있도록 노력하려구요.”
긍정의 힘으로 가득한 그래서 멜리오라의 뜻처럼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하미경 대표가 연구소회원들에게도 용기를 북돋는 말을 해주었다.
“돈은 버는 것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는 옛말이 있듯이 소중히 번 돈을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사회 정의를 위해 활동하는 민족문제연구소를 위해 쓰는 일은 역사의 잘못 앞에 사회적 부당함과 불공정에 눈감는 방관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를 후원하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항상 당당하시고 함께해 주시길 후원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