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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역사망언 3종세트… ‘대통령 속성 과외’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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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삼일절 기념사, 강제동원 피해자 3자 변제, 이번엔 ‘일본 무릎’… 퇴행과 거짓을 어찌할까

▲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기어이 ‘역사 망언 3종 세트’를 선보였다. 삼일절 기념사에서 그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면서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적·반인도적 팽창에 대한 비판은 생략한 채 식민주의 역사학의 단골 논리인 정체성론(停滯性論, 조선은 근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낙후된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3월 6일엔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관련 정부 입장’을 발표하면서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전범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책임을 인정한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정부가 일본 강제동원 가해 기업의 사법적 책임을 면책시켜주는 월권을 자행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100년 전 일로 일본이 무릎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일찍이 역대 한국 대통령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역대급 역사 망언을 자행했다. 지난 24일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망언의 전체 문장은 이렇다.

“유럽은 지난 100년 동안 여러 번의 전쟁을 경험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중인 국가들은 미래를 위해 협력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저는 100년 전에 일어난 일 때문에 어떤 일을 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고 그들(일본)이 100년 전 우리의 역사 때문에 (용서를 위해)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정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설득력 면에서 저는 최선을 다했다고 믿습니다.”

미래를 위한 협력… 독일은 어떻게 했나

이 발언의 문제점을 살펴보자. 첫째, ‘지난 100년 동안 여러 번의 전쟁’은 아마도 제1차 대전과 제2차 대전을 묶어서 언급한 듯하다. 윤 대통령은 제국주의 국가 간 식민지 분할 전쟁인 1차 대전과 제국주의적 성격에 더해 반제반파시즘·민족해방전쟁의 성격을 지닌 2차 대전을 대강 뭉뚱그려 놓곤 ‘전쟁 중인 국가들은 미래를 위해 협력할 방법을 찾았다’고 말한다.

도대체 어느 나라와 어느 나라가 미래를 위한 협력 방법을 찾았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단순히 당시 교전국 간의 수교가 이뤄진 것을 놓고 미래를 위해 협력 방안을 찾았다고 말한 것은 아니라고 믿어본다.

‘지난 100년 동안 여러 번의 전쟁을 경험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위해 협력할 방법을 찾은 나라’를 꼽자면 단연 독일과 프랑스다. 독일과 프랑스는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 1, 2차 세계대전을 거친 철천지 원수였지만 1950년대부터 양국의 교원단체가 주축이 돼 공동 역사교과서 발간을 논의했다. 2003년 양국의 청소년들이 독일 슈뢰더 총리와 프랑스 시라크 대통령에게 공동 역사교과서 편찬을 요청한 결과 2006년 ‘독일-프랑스 공동 역사교과서’인 <역사(Histoire, Geschichte)>가 발간됐다.

이어 2016년에는 독일과 폴란드 사이에 ‘독일-폴란드 공동 역사교과서’가 발간됐으며, 이밖에도 홀로코스트의 가해자와 피해자인 독일과 이스라엘, 오랜 식민지배와 끈질긴 독립전쟁을 벌인 프랑스와 알제리도 공동 역사교과서 제작을 논의 중이다. 2000년 독일 정부와 기업이 전시 피해자 배상을 위해 공동으로 100억 마르크(약 6조 원)의 재원을 마련해 ‘기억·책임·미래 재단’을 설립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피해자들의 연대, 국제 사회의 압력, 독일 정부의 전향적 자세 때문이었다. 그 전제는 두말할 것도 없이 ‘탈나치화’다. 종전 직후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이 집행한 뉘른베르크 국제전범재판에 앞서 연합국은 1945년 2월 얄타회담 선언문을 통해 패전 독일에 대한 처리 방침을 밝혔다.

“군국주의와 국가사회주의를 제거하고 독일이 결코 다시는 세계 평화를 깨뜨릴 수 없도록 안전장치를 만드는 것, (중략) 모든 전범을 정당하고 신속하게 처벌하고 (중략) 모든 국가사회주의적이고 군국주의적인 영향을 독일의 공공기관 및 문화, 경제 영역에서 제거” 등을 명시한 이른바 4D 정책(탈나치화 Denazification, 탈군국주의화 Demilitarization, 탈카르텔화 Decartellization, 민주화 Democratization)이었다. 이것이 바로 유럽 국가들이 벌인 ‘미래를 위한 협력 방법’이었다고 윤 대통령에게 말해주고 싶다.

사죄와 항복을 구분하지 못 하나

▲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사진 맨 오른쪽)과 이삭 헤르초크 이스라엘 대통령(사진 맨 왼쪽)이 2023년 4월 19일 폴란드 바르샤바의 바르샤바 게토 기념비 앞에서 바르샤바 게토 봉기 80주년을 맞아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사진 가운데)과 회동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둘째,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이 100년 전 역사 때문에, 용서를 위해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용서를 구하기 위한 사죄 행위와 상대방에게 굴복을 뜻하는 항복 행위를 동일시하는 것 같다.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꿇고 사죄한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 이후 바이츠제커 대통령, 메르켈 총리 등 독일 정치지도자들의 사죄는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윤 대통령의 <워싱턴포스트> 인터뷰가 보도되기 불과 닷새 전인 4월 19일 빌리 브란트 총리가 무릎을 꿇었던 바로 그곳에서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폴란드 대통령, 이스라엘 대통령과 나란히 헌화한 뒤 “독일인에게 역사가 부과한 책임에 대해 그 어떤 한계도 둘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아베 일본 총리가 2015년 8월 14일 담화에서 “전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우리의 아이들, 손자 그리고 그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죄를 계속하는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던 발언을 상기한다면 윤 대통령의 발언을 일본어로 직역한다면 온전히 일본 총리의 담화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 설득에 최선? 그것은 거짓말이다

▲ 2021년 9월 11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구 중구 서문로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찾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환담을 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당시 윤 전 총장은 “일본의 사과를 반드시 이끌어내고, 할머니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았던 것들을 다 해드리겠다”라고 말했다. ⓒ 연합뉴스

끝으로,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들을 설득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이는 반박할 가치조차 없는 거짓말이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로 온갖 비난을 자초했던 박근혜 대통령조차도 2014년 “독일과 프랑스, 독일과 폴란드가 했던 것처럼 동북아 공동의 역사교과서를 발간함으로써 동서유럽이 그랬던 것처럼 협력과 대화의 관행을 쌓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동북아 평화협력을 위해 먼저 역내 국가들이 동북아 미래에 대한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중·일’ 공동 역사교과서 발간을 제안했다. 이런 사실을 확인한다면 윤 대통령의 역사 인식이 얼마나 뒷걸음질 처졌는지 알만 하다.

게다가 윤 대통령의 발언은 식민주의 등 반인권 행위를 극복하려는 세계적 흐름에도 정면으로 반한다. 유엔은 인종차별금지 국제회의에서 채택한 2001년 더반 선언(Durban Declaration)에서 식민주의가 인종주의, 인종차별, 외국인 혐오 및 이와 관련된 불관용으로 이어져 왔다면서 식민주의 극복과 재발방지, 가해국가의 피해자 기림 등을 촉구했다.

“… 식민주의로 인한 고통을 인정하며, 발생장소와 시기에 관계없이 식민주의는 비난받아야 하며 그 재발은 방지돼야 함을 확인한다. …”

“노예제, 노예무역, 대서양간 노예무역, 아파르트헤이트, 식민주의, 대량학살로 인해 수백만 명의 남녀노소에게 가해진 극심한 고통과 비극적 고난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심히 유감을 표하며, 관련 국가는 과거 비극의 피해자를 기리도록 촉구하며, 발생한 장소와 시기에 관계없이, 그러한 행위는 비난 받아야 하고 재발은 방지해야 함을 확인한다. …”

상황이 이런데도 국민 설득보다는 ‘강행’을 택한 윤 대통령은 좀처럼 그 고집을 꺾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는 윤 대통령의 친구인 이철규 변호사의 말을 인용해 윤 대통령의 성격을 이렇게 언급했다.

“만약 그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그는 다른 사람들이 그의 행동을 어떻게 보는지, 혹은 다른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의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그가 우유부단함과 씨름하기보다는 얼마나 결정적이었는지 기억합니다.”

“속성으로 배울 수 있을지”… 홍준표의 선견지명

▲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각) 워싱턴DC 백악관 영빈관 접견장에서 열린 글로벌기업 최고 경영진 접견에서 프로야구 시구 영상을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에게 보여주며 즐거워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21년 당시 국민의힘 대권주자였던 홍준표 후보의 선견지명이 새삼스럽다.

“검찰사무는 대통령 직무의 1%도 안 된다. 검찰 사무만 26년 하신 분이 갑자기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왔다. 다른 분야는 속성 과외를 해야 될 텐데. 그 속성 과외로 대통령직을 수행할 만큼 그런 것을 지금 배울 수가 있을지…”

검찰사무밖에 모르는 대통령이 어렵게 쌓아 올린 역사의 성과를 하루 아침에 무너뜨리고 있어도 별다른 해법이 생각나지는 않는다. 다만 그동안 한일 전문가 집단과 소수의 시민단체로 국한됐던 역사 대화를 동아시아, 나아가 식민주의를 경험했던 여러 나라들로 범위를 확대함과 동시에 윤석열 정부의 역사퇴행에 반대하는 정당·전문가·시민사회단체의 광범위한 연대체를 구성해야 할 필요를 절감한다. 일회적·즉흥적·분산적 반응보다는 지속적·전략적·통합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상황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방학진씨는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입니다.

<2023-04-26>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역사망언 3종세트… ‘대통령 속성 과외’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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