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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KGB에 붙잡혀 끌려갔다 탈출한 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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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정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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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 제3권 정일권 편은 “1922년 러시아혁명의 여파가 극동 지역에 밀려와 극동혁명위원회가 창설되면서 제정러시아의 극동군 통역 장교인 부친이 면직되고 감시받게 되자 모친과 함께 경원으로 돌아왔다”고 설명한다.

만주국의 또 다른 사관학교인 육군군관학교(신경군관학교·신징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육사로 진학한 박정희처럼, 정일권도 일본에서 두 번째 사관생도 생활을 했다. 박정희처럼 교사 생활을 하다가 간 게 아니기 때문에 그의 졸업은 박정희보다 4년 빨랐다. 그래서 박정희보다 많은 시간을 친일에 바칠 수 있었다. <친일인명사전>은 “1940년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마치고 만주군 소위로 임관해 만주군 지린부대 교관에 보임되었다”라며 이렇게 설명한다.

“만주군 헌병 장교로 계인주·최남근 등과 함께 일본이 시베리아 철도를 폭파하려고 만든 특수부대 돌격대에서 3개월간 폭파 훈련을 받은 뒤 독립헌병대에 배치되어 랴오허 방면으로 출동했다. 1941년 신징에 있는 만주군 총사령부 고급부관실에서 근무하면서 3월에 헌병 중위로 진급했다. 1942년 모교인 광명중학교를 방문해 후배들에게 만주국 군관으로 입대할 것을 권유했다.”

▲ 굴욕외교라는 거센 비판속에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이 한일회담 비준서에 서명하고 있는 모습. 박 전 대통령 왼쪽에 서 있는 사람이 정일권 국무총리. ⓒ 자료사진

ㅡ 기사발췌

김종성 기자

<2023-05-21>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KGB에 붙잡혀 끌려갔다 탈출한 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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