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징용 배상금 받으면 20% 내라” 지원단체, 피해자와 11년전 약정 보도 관련
조선일보는 23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를 돕는 시민 단체가 징용 피해자들과 ‘일본 기업들에서 어떤 형태로든 돈을 받을 경우, 20%는 단체에 지급한다’는 내용의 약정을 11년 전에 맺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일부 피해자 유족이 최근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 해법을 수용해 판결금을 2억원 안팎 수령한 가운데, 해당 단체가 이 약정을 근거로 금액 지급을 요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고 보도 했습니다.
■<개요>
앞서 일본 소송(1999~2008)에 나선 양금덕 할머니 등 원고 5명은 2012년 10월 24일 광주지방법원에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소송의 대리인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광주전남지부’ 소속 변호사들이며,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의 전신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2009년 창립)은 지원단체 역할을 맡아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양금덕 등 원고 5명은 소송 대리인 및 소송 지원단체인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과 아래와 같은 약정을 체결했습니다.
1. 위임인들은 위 사건과 관련하여 손해배상금, 위자료, 합의금 등 그 명칭을 불문하고 피고로부터 실제로 지급받은 돈 중 20%에 해당하는 금액을, ‘일제 피해자 인권 지원 사업, 역사적 기념사업 및 관련 공익사업’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게 교부한다.
2. 위임인들은 수임인들이 피고로부터 직접 손해배상금 등을 지급 받은 다음 위 1항에서 정한 금액을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게 직접 지급하는 것에 동의한다.
3.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위임인들로부터 지급 받은 돈을 위 1항에서 정한 대로 사용하여야 하고, 위임인들이 생존해있는 동안 매년 1회 그 구체적인 사용 내용을 위임인들에게 통지하여야 한다.
약정서는 모두 소송 원고들의 동의하에 작성되었으며, 본인이 서명 또는 날인한 것입니다.
■<소송 경위 및 약정 내용>
소송 원고들은 모두 앞서 1999년 3월 1일 일본정부 및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나고야지방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던 원고들입니다. 이 소송은 2008년 11월 11일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패소했습니다.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의 전신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은 일본 소송이 무위로 끝난 직후, 피해 할머니들의 상황에 안타까워 했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2009년 3월 창립되어, 피해 할머니들의 인권 회복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왔습니다.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은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인권 침해 문제를 놓고 미쓰비시중공업 측과 2010년 11월 8일 1차 본 교섭을 시작으로 2012년 7월 6일 16회 교섭까지 2년에 걸쳐 도쿄, 나고야에서 협상을 가진 바 있습니다. 그러나 미쓰비시중공업이 시종일관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면서 협상이 교착 상태에 이르렀고 협상은 결국 결렬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2012년 10월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약정서’에 적시된 그대로, 약정금은 법률 대리인의 수임료가 아닙니다. 같은 취지에서 이 약정금은 누군가의 수고에 대한 ‘보답’이나 ‘답례’가 아니며, 취지가 ‘공익’이고 사용처도 ‘공익’입니다.
약정의 목적은 ‘일제 피해자 인권 지원 사업, 역사적 기념사업 및 관련 공익사업’으로 한정되어 있고, 구체적 방법은 공익 활동을 수행하게 될 지원단체인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에 교부하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아울러 약정서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위임인들로부터 지급 받은 돈을 위 1항에서 정한 대로 사용하여야 하고, 위임인들이 생존해있는 동안 매년 1회 그 구체적인 사용 내용을 위임인들에게 통지하여야 한다.”고 함으로써, 약정금이 목적에 따라 투명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약정 경위>
소송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그 결과를 전혀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이 소송은 일반적인 사건과 달리 한일 간 정치적 문제가 얽혀 있어, 법정 다툼 이외에도 다양한 방향에서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고, 그만큼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 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안타깝게도 2012년 제기된 사건은 2018년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판결 5년에 이른 지금까지 판결 취지가 심각히 왜곡되거나 배상 이행이 지체되고 있습니다.
소송 원고들은 10년 가까운 일본에서의 소송도 마찬가지였지만, 국내에서 소송이 제기된 이래 지금까지 단 한 푼의 돈도 부담한 사실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와 미쓰비시를 상대로, 때로는 한국정부를 상대로 이 싸움을 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의 숨은 조력과 우리 사회의 선량한 힘이 보태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많은 손과 손이 보태지게 된 것은 이 사안이 단순히 피해 당사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일제 식민지배로부터 기인한 반인도적 인권 침해 피해자들에게 ‘정의’를 돌려줘야 하는 ‘공익적’ 가치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변호사단체는 변호사단체대로 시민단체는 시민단체대로, 시민들은 시민들대로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함께 손을 잡고 힘을 보태왔던 것입니다.
이 사건 소송 원고들은 우리 사회의 선량한 조력들이 모아진 덕분에, 어떠한 형태의 경제적 부담을 지지 않으면서도 권리회복에 나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약정서 역시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약정서 문안 그대로, 약정서는 원고들의 동의하에 향후 누군가의 조력이 없이는 권리회복에 나설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인권 피해자를 위해, 역사적 기념사업 및 관련 공익사업 등 또 다른 공익적 활동을 위해 디딤돌 역할이 될 수 있도록 하자는 차원이었습니다.
정부는 지난 3월 6일 소위 강제동원 해법을 발표하면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한 ‘판결금’
계획과 함께, “동 재단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기억하여 미래 세대에 발전적으로 계승해 나가기 위해, 피해자 추모 및 교육‧조사‧연구 사업 등을 더욱 내실화하고 확대해 나가기 위한 방안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약정서에 언급된 ‘역사적 기념사업 및 관련 공익사업’ 역시 바로 정부가 강조해 온 것과 같은 취지라 할 것입니다. 정부도 필요성을 느끼고 강조하고 있는 기억 계승사업에 대해 시민단체는 이미 11년 전부터 앞서 고민해 온 것인데, 시민단체의 그런 취지가 왜 문제가 되는 것입니까? 정부가 강조해 온 기억 계승사업을 시민단체가 앞서 고민하고 피해 당사자들과 함께 참여하여 추진하면 안되는 것입니까?
이러한 형태의 약정은 처음이 아니며, 그동안 일본에서 제기된 소송에서도 원고와 대리인 간에도 같은 취지의 약정이 있었습니다. 국내 사례로 보더라도 과거 국가권력에 의해 인권침해를 입은 조작 간첩단 사건이나 사회적 참사 사건 등의 공익소송에서 일반적으로 있어 왔던 일이며, 이러한 공익기금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인권구제 사업이나 공익 활동을 위해 활용되고 있습니다.
■강조하지만, 이 약정 내용이 왜 ‘문제시’되어야 하는지, ‘불온’한 시각에서 언급되고 있는지 도리어 묻고 싶습니다.
원고들이 많은 시민, 인권단체, 활동가들의 도움을 받아 수령한 금액 중 일부를 다른 공익사업 기금으로 출연하여 사회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라, 바람직한 방향이며, 오히려 더 많은 선례로 남도록 권장되어야 할 일이라는 것이 우리의 판단입니다.
만약, 혹여라도 경제적 이득에 먼저 눈이 가 있었다고 하면 이 일은 처음부터 간여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소송 뿐 아니라, 소송 외에 일본 원정 활동, 그 외 다양한 활동에 쏟은 많은 시민들의 노력과 땀, 시간은 감히 금전으로 환산할 일이 아닙니다.
아울러 이 사건을 맡아 온 소송 대리인단, 지원단체 역할을 해 온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의 관심은 여전히 일제에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에게 인권과 정의를 돌려주는 것에 있습니다.
윤석열 정권은 가해자인 일본 피고 기업의 배상책임을 피해국 한국이 뒤집어쓰는 치욕적 해법을 발표함으로써, 가해자인 일본 피고 기업에 면죄부를 줬습니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 취지를 무력화시키는 것은 물론, 피해자들이 일본 소송으로부터 시작해 수십년 동안 싸워 어렵게 쟁취한 피해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짓밟았습니다.
우리는 이번 <조선일보> 보도가, 윤석열 정권의 국면 전환용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굴욕외교에 대한 국민적 비난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화살을 피하고자 도리어 정당한 활동을 경주해 온 시민사회와 시민단체를 표적 삼아 ‘불온한’ 색칠을 가함으로써 위기를 돌파해 보려는 수작으로 규정합니다. 즉, 대통령 메시지를 구체화해 인권단체, 활동가들을 국민들과 분리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향후 다시 대응하겠습니다.
2023년 5월 23일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