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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아버지 명예 걸린 ‘야스쿠니 합사 취소’ 절대 포기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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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 이희자 공동대표

‘야스쿠니 신사 한국인 합사 취소 소송’을 이끌고 있는 이희자(80)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아버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제 인생을 걸고 싸우는 겁니다. 절대 포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일본의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는 야스쿠니신사와 이희자(80)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와의 싸움은 벌써 23년째다. 부당하게 신사에 합사된 아버지의 영혼을 빼오자는 야스쿠니 2차 소송의 2심 판결을 나흘 앞둔 이 대표는 22일 <한겨레>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40대에 아버지 찾기를 시작했는데, 어느덧 80대가 됐다”고 말했다.

결혼 후 주부로 평범한 삶을 살던 그가 야스쿠니 신사와 전면전에 나서게 된 것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 이사현은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2월 육군 군속으로 징용됐다. 이 대표가 갓 돌을 지났을 무렵이다. 해방 후에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고, 외할머니는 아침마다 하얀 대접에 물을 담아 사위의 무사 귀환을 빌었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운 1989년 7월께부터였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92년 이 대표는 아버지의 사망 기록을 확인하게 된다. 1971년 한국 정부가 일본에서 받은 ‘전사자 명부’에 ‘1945년 6월11일 중국 광서성에 있는 제181병참병원에서 사망했다’는 기록을 찾아냈다.

아버지의 사망 사실조차 통보 받지 못해 분노하던 이 대표는 5년 뒤 더 충격적인 소식을 알게 된다. 일본 정부가 작성한 ‘유수명부’(일본 후생성이 일본군으로 징용된 조선 군인·군속 등의 신상을 담은 문서) 속 부친 이름 옆에 ‘합사제’라고 적힌 글씨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이게 무슨 뜻인지도 몰랐어요. 일본 전후보상 운동단체에서 활동하던 분이 그걸 보더니 ‘희자씨 아버지도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돼 있네요’라고 하더군요.” 가족들에게 사망 통보조차 하지 않았던 일본 정부가 아버지의 영혼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해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처음 이 소식을 접하고 너무 화가 나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고 했다.

야스쿠니신사는 1867년 메이지 유신을 전후해 일본에서 벌어진 내전에서 일왕을 위해 숨진 이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이후 청일전쟁에서 태평양 전쟁까지 일본이 일으킨 여러 침략 전쟁에서 일왕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이 늘어나며 총 246만6천여명이 합사돼 있다. 이 중 약 90%는 태평양전쟁(1941년12월~1945년8월) 때 숨진 이들이다. 야스쿠니 신사에 세계적 관심이 쏠리게 된 것은 일본의 침략 전쟁을 일으킨 책임이 있는 에이(A)급 전범 14명이 1978년 합사되면서부터다. 이후 일본의 현직 총리가 이 신사를 참배하면, 한·중 등 주변국 반발이 이어져 왔다.

1944년 부친 일본군 군속 징용
합사 소식 1997년 뒤늦게 접해
2001년 일 정부 상대로 첫 소송
“침략전쟁 상징 같은 야스쿠니에
아버지 갇힌 것 참을 수 없었죠”
2011년 패소 확정 뒤 다시 소 제기
26일 2차 소송 항소심 결과 나와
“자식 세대 안 되면 손자녀 세대가”

이 대표는 “일본이 침략전쟁을 반성하지 않는 상징과도 같은 야스쿠니에 아버지가 갇혀 있다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같은 처지의 군인·군속 유족 등을 모아 2001년 6월 일본 정부를 상대로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야스쿠니신사 합사 취하’ 등이 포함된 소송을 제기했다. 2003년 소송자가 추가되면서 전체 원고가 416명에 달했다. 하지만 일본 법원의 벽은 높았다. 2006년 도쿄지방재판소는 “합사는 야스쿠니신사의 소관사항”, “인격권을 침해한 것은 아니다” 등의 이유로 기각 결정을 했다. 결국 2011년 최고재판소에서 패소가 확정됐다.

“가족이 싫다는데, 합사를 취소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심지어는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사람까지 합사했어요. 처음엔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가 유족들 동의 없이 합사한 것에 미안하다고 할 줄 알았어요.”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어이없는 판결이었지만 이 대표는 “아버지의 인생과 명예가 걸려 있기 때문에 끝까지 싸우겠다”고 결심했다.

충청남도 천안시 ‘망향의 동산’엔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 아버지의 비석이 있다. 이름을 포함해 어떤 것도 적혀 있지 않은 ‘백비’다. 이 대표는 야스쿠니신사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빼 오는 날 비석에 이름을 새길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2007년 4월 모습.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이후 2007년 야스쿠니 합사 취하에만 집중한 1차 소송, 2013년 2차 소송이 이어졌다. 이 대표는 유족의 소송을 지원하는 동시에 한-일을 오가며 기자회견, 집회, 토론회 등 야스쿠니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리는데 온힘을 다하고 있다. “재판에서 계속 져 속상하지만, 일본의 범죄행위를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피해자들이 후세대를 위해서라도 이렇게 남겨놔야죠.”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일방적인 양보안’이 나온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를 보면서 가슴이 많이 답답하다고 했다. 윤 정부가 2018년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을 무시하고 일본에 끌려 다니고 있어서다. “대법원 승소 판결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식민지 지배가 잘못됐다는 판결이잖아요. 강제동원이 잘못됐다는 판결이잖아요.”

일제 식민지배로 인한 피해를 회복하려는 야스쿠니 소송을 20년 넘게 이어가고 있는 이 대표는 누구보다 그 고통을 잘 안다. “아버지도 강제동원으로 끌려가 돌아가셨지만, 우리 피해자들은 일본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말한 적이 한번도 없어요. 잘못한 것에 대해 진정한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길 바라는 겁니다. 야스쿠니 합사처럼 말도 안 되는 일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잖아요.”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이 지난달 <워싱턴 포스트> 인터뷰에서 “100년 전 일로 일본에 무조건 무릎을 꿇으라고 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 것은 기본적인 “사실관계도 맞지 않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인 유족 27명이 2013년 10월 제기한 2차 ‘야스쿠니 신사 한반도 출신 군인·군속 합사 취소 소송’ 항소심(도쿄고등재판소) 결과는 26일 나온다. 도쿄지방재판소는 앞선 2019년 5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는 “법원이 이번엔 어떤 판결을 내릴지 모르겠지만, 유족들은 최선을 다했다”며 “자식 세대에서 지면 손자녀들이 계속 소송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은 양심적인 일본 시민사회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수십년 동안 일본의 시민사회가 재판을 도와주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끌고 오기 힘들었을 겁니다. 그 고마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그는 26일 재판 참석을 위해 24일 도쿄로 출발한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사진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2023-05-23> 한겨레

☞기사원문: “아버지 명예 걸린 ‘야스쿠니 합사 취소’ 절대 포기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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