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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통치의 화려한 선전장이 된 경복궁(2) – 조선박람회 조감도와 박람회장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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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통치의 화려한 선전장이 된 경복궁(2)
– 조선박람회 조감도와 박람회장 엽서

조선박람회의 가장 큰 특징은 당시 조선의 각 도(道)의 특설관(特設館)들이 독립적으로 세워진 것 외에 내지관(內地館-일본관), 오사카관, 도쿄관, 교토관, 규슈관, 나고야관 등 일본의 지방관과 훗카이도관, 타이완관, 만몽참고관, 화태(樺太-사할린)관 등 당시 일본세력 하에 있던 식민지의 특설관이 세워졌다는 점이다.

특히 각 도의 특설관은 지방의 특색을 반영한 건축양식을 보여주었다. 충청남도관은 논산 관촉사의 석조미륵보살입상의 이미지를 입구에 조성하였고 평안남도관은 평양의 현무문 이미지로 만들었다. 이와 함께 일본의 주요 도시 10개의 특설관이 설치되었는데 도쿄, 교토, 오사카 등 일본의 선진 도시 모델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경회루 뒤편에는 타이완총독부가 운영하는 타이완관과 만몽관(滿蒙館) 있었는데 중국측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강행하여 설치하였다. 조선박람회가 ‘20년동안의 실적을 천명’하기 위해서라고 선전하였지만 일제의 대륙 침략을 미화하는 정치적 의도를 드러낸 것이었다.

일제가 개최한 박람회는 실제로 경제적인 측면보다 정치적인 목적이 있었다. 1923년에 열린‘조선부업품공진회’는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대한 들끓는 조선의 민심을 잠재우기 위한 방편으로, ‘신흥만몽박람회’는 만주사변을 일으킨 후 만주국에 대한 실질적 지배권을 주장하기 위해, ‘조선대박람회’는 중일전쟁 이후 대동아공영권의 결성을 위해 개최되었다. 박람회의 성격이 점차 정치적·군사적 목적으로 변화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강동민 자료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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