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강제동원 증언 특별전 <사라지는 목소리들>, 부산에 이어
서울 전쟁기념관에서 열려
6월 8일부터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사라지는 목소리들-전쟁과 산업유산, 잊힌 희생자 이야기〉 전시가 열리고 있다. 작년 11월 1일부터 12월 16일까지 부산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 열린 전시의 성과에 힘입어 서울 전시로 이어졌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주최하고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후원하였으며,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그간 강제동원 구술사업과 산업유산 대응활동 과정에서 축적해온 기록과 영상, 소장자료를 제공했다.
‘전쟁기념관’이 ‘강제동원’ 문제와는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강제동원 피해자야말로 식민지배의 피해자이자 일본이 일으킨 아시아‧태평양 전쟁의 희생자이다. 일본 산업유산의 각 시설들은 그 침략전쟁을 뒷받침한 전시 강제노동의 현장이었던 점 또한 기억해야 한다. 1945년 창립한 유네스코 역시 인류가 저지른 두 차례 세계대전을 반성하고 역사적 교훈으로 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전쟁과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전쟁기념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세계유산 특히 산업유산 속 ‘전쟁’의 기억과 전시 강제노동 희생자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시는 크게 3부로 구성하였다. 1부는 ‘일본의 산업유산의 현장과 사라지는 목소리들’, 2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기억의 계승’, 3부는 ‘또 하나의 현장, 사도광산’이다. 귀 기울여야 하는 ‘사라지는 목소리들’은 한국인·중국인 강제동원 피해자와 연합군 포로, 사도광산 피해자와 유족까지 포함해 29건의 에피소드를 5편의 영상으로 엮어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14,5세 어린나이에 가족이 괴롭힘을 당하거나 배급이 끊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 일본의 탄광과 제철소로 끌려갔다. 그 곳에서 한국인들이 겪은 기아와 고통은 중국인, 연합군 포로들이 겪은 전시 강제노동과 다르지 않았다. 또 일본 정부가 기만적인 방법으로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사도광산에서 벌어졌던 강제노동의 참혹한 실상도 고발하였다.
일본의 산업유산은 ‘피해자’들에게는 현재진행형의 가해 현장이나 다름없다. 청일전쟁 배상금으로 지어진 야하타제철소, 죄수노동으로 성장한 미쓰이 미이케탄광, 전쟁으로 성장한 군수재벌 미쓰비시의 나가사키조선소와 다카시마‧하시마탄광 현장은 국제사회에 공언했던 약속을 무시하고 여전히 피해자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산업유산정보센터를 개설했지만 ‘찬란한’ 성공의 역사만을 기리는 진실과 동떨어진 또 하나의 역사왜곡 현장만 추가한 데 지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이 전시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널리, 함께 들을 수 있는 공간구성에 더욱 집중했다. 한국인, 중국인, 연합군 포로 등 피해자의 목소리는 식민지, 전쟁, 일본 산업유산이라는 역사와 유산의 현장 사이에서 증언영상과 텍스트, 사료와 다양한 오브제로 재현된다. 우리 연구소는 ‘전시’를 통해 일본 산업유산의 현장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한 피해자의 목소리를 함께 듣는 이러한 실험을 일찍부터 시도해왔다. 2015년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서 개최한 강제동원 기획전부터 2021년 식민지역사박물관, 2022년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을 거쳐 올해 전쟁기념관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피해자들의 “사라지는 목소리”가 다시 기억해야 할 목소리로 재현되는 전시가 계속 열리는 것도 의미가 크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로서 한국인과 중국인, 연합군 포로의 목소리를 함께 듣는 것으로도 전쟁과 평화, 인권과 희생자 기림의 새로운 관점과 시각의 확장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한다.
“전쟁은 인간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이다”라는 유네스코 헌장 정신에서 볼 수 있듯이 세계유산은 다음 세대에 전수되어야 할 인류 공통의 유산이자 전쟁을 반성하고 평화를 싹틔우는 기억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일본의 산업유산과 강제노동 희생자의 이야기를 다룬 이 전시를 통해 단 한 명의 피해자의 목소리라도 전시를 관람하는 누군가에게 가 닿는다면 불행한 시대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없었던 희생자들을 진정으로 추모하고, 기억하는 길이 될 것이다. 1층 기획전시실, 전쟁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무수한 기념물 사이로 들려오는 늙은 청년들의 목소리는 나지막하지만 강인한 호소력을 지닌다. 그들의 한탄과 공포, 회한과 설움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은 9월 8일까지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전시실 입구에서는 연구소 회원, 대학생과 청소년 등 다양한 전시 도슨트가 관람객을 맞을 예정이다. 전시 관련 소식은 인스타그램(instagram@fading_voice)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 김승은 학예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