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조선혁명선언’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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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조선혁명선언’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개최

6월 9일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국가보훈부가 후원한 ‘조선혁명선언’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가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의정원홀에서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개최되었다.

윤경로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상임대표의 개회사로 시작된 학술회의는 세 차례의 주제발표, 종합토론 순서로 진행되었다.

제1 주제는 조규태 한성대학교 인문학부 교수의 「조선혁명선언의 연원과 북경 ‘반임정 그룹’」이었다. 조규태 교수는 1919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의 ‘위임통치론’ 주장에 대한 반발로 ‘반임정 그룹’이 성립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이 그룹의 구성원들과 그들의 정치사회관을 개괄적으로 분석했다. 반임정 그룹의 주요 세력은 무장투쟁을 주장하는 박용만을 옹위하는 미주세력, 신숙 등의 천도교 집단, 윤해와 원세훈 등 대한국민의회, 김창숙과 신채호 등 유림 집단, 의열투쟁을 중시한 김원봉의 의열단 세력, 성준용, 송호 등 서간도의 서로군정서 집단, 조정구와 이회영 등 친왕 세력 등이었다. 이들 중 조선혁명선언과 직접 관련한 신채호와 의열단 계통의 인물들은 사회주의적 또는 아나키즘적 사회관을 갖고 있었다. 특히 신채호는 일제가 무력과 폭압으로써 우리 민족의 자유와 권익을 빼앗은 것에 대해 투쟁으로 되찾고자 하였고 상호부조론에 입각하여 구성원 모두가 균등하게 잘 사는 사회의 실현을 염원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제2 주제로 김영범 대구대 명예교수가 「조선혁명선언의 혁명사상과 의열단(계)의 실천경로」를 발표하였다. 김영범 교수는 조선혁명선언에서 신채호가 “민족사회·경제·문화의 완전 변혁에 의한 ‘이상적 조선’의 건설을 꿈꾸었으며 그 결과로 생성된 조선혁명의 성격은 민족혁명임과 동시에 사회혁명이고 주체로 보면 민중혁명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의열단은 조선혁명선언을 즉시 인쇄하여 조선 국내뿐 아니라 만주 미주 러시아 등 조선 동포가 있는 곳에 배포하였다. 이로써 조선혁명선언에 담긴 혁명이념과 의열단의 확고부동한 투쟁의지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조선혁명선언의 독립운동 이념과 방략이 더욱 체계화된 것은 1926년 12월 의열단이 조선민족혁명당으로 개편하고 강령 20개 조를 제정한 것에서였다. 이 강령의 얼개는 민족혁명 완수와 반봉건 민주변혁이었다. 이 강령에는 ‘봉건제도 및 일체 반혁명세력의 삭제’를 기초로 인민의 자유권 평등권 참정권 행복권이 보장되는 ‘진정한 민주국가’ 건설을 기약하였고 사회복지기관의 설치와 노동자·빈농층에 대한 주거 공급 등 행복추구권도 규정해놓았다.

해방 후 좌우 대립의 정치지형에서 조선민족혁명당의 진로는 순탄치 않았고, 김원봉 등 민혁계 요인들도 정치무대에서 사라져갔다. 하지만 1960년 4·19, 1987년 민주항쟁, 2017년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조선혁명선언 속에 내재된 혁명적·민중적 민주주의로부터 우리는 많은 영감과 지적 용기를 새로 얻을 수 있었다고 평가하였다.

제 3주제는 김도형 전 독립기념관 연구위원의 「한국독립운동 각종 선언서의 역사적 성격」이었다. 김도형 연구위원은 1919년 3·1운동을 전후하여 선포된 각종 독립선언서 즉 ①대동단결선언(1917년 7월, 조소앙, 상해) ②2·8독립선언서(1919년 2월, 이광수, 도쿄) ③3·1독립선언서(1919년 3월, 최남선, 서울) ④대한독립선언서(1919년 3월(?), 조소앙, 길림) ⑤ 대한국민의회 선언서(1919년 3월, 해삼위)를 발표 시점과 기초자, 배포 경위, 선언서의 내용을 중심으로 개괄적으로 분석하였다. 이 다섯 가지 선언서는 발표 주체와 지역에 따라 무장독립 지향, 평화운동 지향 등 각기 다른 성격과 방략을 가졌음을 지적했다. 발표자는 그중에서도 “2·8독립선언서는 3·1독립선언을 준비하는 주체들에게 독립선언 후에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암묵적으로 국민대회 개최와 임시정부 수립안과 같은 구상을 주었다”면서 3·1운동의 결과 상해 임시정부 수립으로 귀결되도록 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평가하였다.

이후 종합토론에서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을 좌장으로 하고 박환 수원대 교수, 장세윤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수석연구원, 반병률 외대 명예교수가 함께한 가운데 2시간에 걸쳐 열띤 논의가 이루어졌다.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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