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올곧은 시대인식과 역사의식을 품자!
윤경로 식민지역사박물관 관장, 전 한성대 총장
윤석열 정부가 시작된 지 1년이 훌쩍 지났다. 처음 출발 때부터 기대보다는 우려와 걱정의 소리가 적지 않았지만 한 해를 넘긴 작금, 그 정도가 더욱 넓어지고 높아지는 것만 같아 우려스럽다. ‘검사공화국’을 넘어 ‘검사제국’을 향하는 제반 정치·사회 현 상황에 대해 많은 시민과 국민이 우려를 표하고 있다. 광복 이후 역대 여러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여러 형태의 정치권력 유형을 지켜보았고 경험해 왔지만 이런 형태의 ‘검사공화국’을 넘어 ‘검사제국’과 같은 유형의 정권과 정부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정권이 바뀌면 그에 따라 앞서의 정권이 시행해온 정책에 변화가 있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정치현상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한시적 정권 차원을 넘어서는 예컨대 역사문제와 민족문제와 같은 거족적이며 거시적인 대내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관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할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역사문제라 하겠다. 1945년 광복 이후 역대 정권의 정치적 성향과 성격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지만 적어도 대일본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보수·진보를 뛰어넘어 한 목소리로 대일정책을 펼쳐온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진중하고도 역사적 무게감이 깊은 대일정책을 윤석열 정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허물고 있다. 작금 우리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역학관계에 큰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과의 문제는 그렇게 칼로 무 썰듯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비근한 사례로 독도 문제만 해도 그렇다.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도 우리 영토가 명약관화한 사실을 왜곡 부인하며 ‘다께시마(竹島)’라는 이름으로 자기네 땅이라 우겨대는 일본을 이웃집 우방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그뿐만 아니다. 윤 정부 들어선 이후 한·미 공조를 넘어 한·미·일 합동군사훈련을 명분으로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의 상징인 ‘욱일기(旭日旗)’를 내걸고 우리의 영해를 휘젓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보며 피를 토하는 울분이 끌어오른 것이 필자만의 느낌만은 아닐 것이다.
윤 정부의 대외적인 정책 중 재고되어야 할 문제는 민족분단 극복 문제라 할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있는 현대 한국사회를 지칭해 ‘분단시대(分斷時代)’라 한다. 민족사적으로 수많은 문제가 우리 앞에 산적해 있지만 이 가운데 최대의 민족사적 해결 과제는 곧 우리 민족이 남북으로 양단되어 있는 분단문제라 할 것이다. 지난 70여 년 간의 남북 민족분단으로 인한 민족사적 고통과 아픔과 손해는 한두 마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이 중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에 특히 경제적 불이익을 초래하고 있는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를 새롭게 떠올릴 수 있다. 어렵사리 선진국 대열에 오른 코리아가 다시 남북 갈등과 대립의 고조로 정치, 군사적 긴장을 넘어 겨우 극복한 ‘디스카운트’ 곧 경제적 불이익을 또다시 당하는 일은 이제는 종식시킬 때가 충분하게 되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윤 정부가 들어선 후 남북문제는 급속하게 얼어붙어 지난 역대 문민정권에서 어렵게 풀어왔던 민족분단과 남북대결 구도의 완화를 다시 냉전 대결체제로 회귀시키고 있는 점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지적하지만 나는 새 정부가 그렇게 무식하고 무지한 정부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지난 집권 1년간 대내외적 국정운영 성향을 일별할 때 참으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한둘이 아니다. 어느 서양 철학자가 “모든 악은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했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는 인류사에서 무지는 악(惡)보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한 사례를 헤아릴 수 없이 보아왔다. 인식된 악은 양심의 가책이라도 받지만 무지의 경우는 무엇이 선인지 악인지도 구분하지 못한 채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그 좋은 사례를 우리는 일본에 의해 1876년 강제 개항된 ‘강화도조약’ 체결 과정에서 잘 보지 않았는가?
일찍이 몽양 여운형 선생께서는 혈농어수(血濃於水), 곧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글을 적지(敵地) 일본에 건너가 기록으로 남긴 바 있다. 우리 민주 시민이 다시 깨어 일어날 때라고 생각한다. 작금 우리 민족이 처한 현실이 백척간두에 서있는 현실을 직시해야겠다. 군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정부가 들어선 이후 어렵사리 추진되어왔던 남북대화가 다시 복원되어야 하겠다. 지금으로부터 41년 전인 1992년 유엔은 우리 남측과 북측 양 정부를 함께 국가로 인정했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아직도 남북이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지 못한채 다시 남북 대결구도로 되돌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싶다.
마침 다음 달 7월 27일이면 6·25 종전 이후 남북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70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앞두고 있다. 비극적인 정전협정을 떨쳐내기 위해서 이를 종전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범민족적·국민적 운동이 우리 ‘깨인 시민’ 곧 <민족사랑> 독자들로부터 추진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품어 본다.
이런 말이 있다. “통(通)하면 불통(不痛)이요 불통(不通)하면 통(痛)한다”는 말이다. 남북이 함께 통하면 고통이 사라지지만 불통하면 민족적 고통이 계속된다는 뜻이다. 이런 옛 어른들의 말씀도 함께 떠오른다. 곧 만절필동(萬折必東) 다시 말해 중국 황하의 물줄기가 만여 번의 오르기도 하고 내려치기도 때로는 정지하는 등 만여 번의 굴절이 있지만 종국에는 결국 동쪽으로 흘러간다고 했다. 작금의 눈으로 보면 불가능해 보일지 모르고, 또한 앞으로도 우리 민족 사이에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그래도 결국은 만절필동의 그날을 바라보면서 우리 민족이 가야 할 정도(正道)의 길을 걷는 올곧은 시대인식과 역사의식을 품은 이 시대의 <민족사랑>의 독자들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