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형평사 100주년 기념 답사로 진주에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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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회원마당]

형평사 100주년 기념 답사로 진주에 다녀오다

강동욱후원회원(부산외고 교사)

지난 5월 13일~14일 아름다운 진주에서 1박 2일 동안 형평사 운동 100주년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가 주관하고 연구소 본부가 후원한 행사로 제가 후원회원으로 가입하고 최초로 떠나는 1박 일정의 답사라 기대가 참 컸습니다. 참가자는 변량근 부산지역위원장님을 포함해서 10명(이상국, 강호준, 탁경완, 이정은, 성윤재, 정재훈, 김혜정, 정성임)이었습니다.

부산에서 차량 3대로 출발하였고 운전은 변량근, 정재훈 회원님 그리고 제가 맡았습니다. 출발할 때 계획으로는 정재훈, 김혜정, 정성임 회원님은 당일 일정으로 참가하였지만 진주지회의 열렬한 환영 분위기에 취해 1박 2일을 오롯이 함께하였습니다.

첫날 일정은 부산 사상역 앞에서 만나 중간에 함안휴게소에서 쉬고 변량근 위원장의 정확한 시간 계획 덕분에, 진주성 공북문 앞에서 진행하는 수문장 교대식의 처음과 끝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이어 진주 3·1운동기념탑 참배와 촉석루를 거쳐 약속한 답사 시작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본격적인 형평사 100주년 기념 답사는 진주 석류공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진주지회 강호광 지회장님과 함께 여러 진주지회 분들과 방학진 실장님과 김무성 회원팀 부팀장님도 함께했습니다.

첫 방문지는 형평운동의 시작이었던 강상호 선생의 묘소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진주지회의 노력으로 묘소는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진주시가 사유지라는 이유로 강상호 선생 묘소 일대를 형평사 운동의 상징적인 성지로서 조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이를 뒤로 하고 다음 일정은 경남문화예술회관 앞에 있는 형평운동기념탑 앞에 도착하였습니다. 여러 이유로 원래 위치에서 이곳까지 옮겨지는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전투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대사지 터와 강상호 선생님의 동생으로 방정환 선생과 함께 색동회를 조직했던 강영호 선생의 삶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강영호 선생 동상 근처에는 일본군 ‘위안부’ 기림상도 있어서 안타까운 과거와 아직도 사죄하지 않는 일본의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함께 이야기 하였습니다.

다음 장소는 진주의 번화가에 있으면서 조그만 조형물로만 남아 있는 진주좌 터로 이곳에서는 형평사 창립 기념식이 열린 곳이었습니다. 첫날 답사의 끝으로는 백정과 동석 예배를 거부함으로써 형평운동의 발단이자 진주 3·1운동의 발상지가 되었던 진주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우리 답사단의 숙소는 진주지회 강병성 후원회원이 운영하는 명석면 소재 장군생태체험농장. 식사 전에 우선 현직 중학교 교감으로 재직 중인 신진균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님이 형평사 운동의 역사와 그 의의를 쉽게 강의해주셨습니다.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요 애정은 인류의 본성이라.”(1923년 형평사 창립선언문에서) 형평사 선언문은 1948년에 제정된 UN인권선언보다 훨씬 앞선 위대한 인권선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녁 뒤풀이는 진주지회 회원님들이 준비한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밤새는 줄 모르고 노래와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이튿날 숙소를 떠나 답사단은 한국전쟁의 가장 슬픈 사건으로 기록되기에 충분한 보도연맹 관련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지를 방문했습니다. 답사단은 김영희 후원회원의 안내와 설명을 들으며 아직도 평안한 안식을 취하지 못하고 계신 억울한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답사의
마지막 코스는 1862년 진주농민항쟁기념탑. 이곳에서는 단순히 ‘진주민란’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진주농민항쟁이 동학농민운동의 뿌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배우면서 모든 일정을 마쳤습니다.

1박 2일이라는 길지 않은 일정을 통해 역사는 되풀이되고 역사를 통해 배우지 못한다면 다시 어둠의 시절이 올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끝으로 역사를 바로 알고 이를 통해 미래를 설계하고 싶은 시민이라면 우리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하기를 권유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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