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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낙천적 자세로 역사 큰 흐름 보시던 실천적 역사학자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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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이의 발자취] 고 강만길 선생님을 보내드리며

2005년 5월31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된 강만길 교수.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강만길 선생님이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1933년 일제 식민지배를 받던 엄혹한 시기에 태어나 해방 뒤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의 참화, 독재와 민주화의 격동 속에서 꿋꿋이 식민잔재 청산, 분단극복, 평화통일의 한길을 걸으셨던 역사학자 강만길 선생님이 눈을 감으셨습니다. 학문과 사회 실천에 정진하시던 선생님의 건강한 모습이 생생한데, 갑작스러운 부고를 받으니 황망하고 애통하기 그지없습니다. 더구나 한국 사회가 그 어느 때보다 거대한 역사의 변화를 통찰하며 나아갈 길을 밝혀줄 현자의 목소리를 갈망하고 있기에, 남겨진 우리는 막막하여 어찌할 바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의 영전에 서니 선생님께 배운 바가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선생님의 학문 세계를 살펴보면 크게 정체성론, 타율성론으로 대표되는 식민사학을 극복하고 근대화의 흐름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길을 닦았던 시기, 분단시대의 모순을 직시하며 통일시대를 전망하기 위해 좌우합작에 기반한 민족운동과 탈냉전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정초했던 시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역사는 인간의 고투 속에서 변화하고 진전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강조하며 이를 학문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선생님께 배우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가르침은 역사학자는 현실 문제에 외면하지 말아야 하나, 철저히 자신의 학문적 성찰을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울러 선생님은 항상 역사의 거대한 흐름과 변화를 말씀하시며 역사학자로서 낙천적인 자세를 견지하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몸소 20세기 고난의 한국 근현대사를 직접 겪었으면서도 21세기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인간다운 삶을 사는 세상이 열리리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학문적 열정을 다하셨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시민과 소통하는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또 한국 근현대사 분야의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사재를 출연하여 재단을 만드시고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2008년 제정된 ‘강만길연구지원금’은 매년 한국근현대사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젊은 연구자를 선정해 연구지원금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마음이 후학에게 전해져 새로운 희망과 학문적인 열정을 낳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학문과 사회 실천을 통해 희망의 씨를 뿌려놓으신 학자셨습니다.

한국 사회는 선생님을 분단시대의 역사 인식을 제기하며 분단체제에 정면으로 비판하시다 강단에서 쫓겨났으나 엄혹했던 1970~80년대 청년 세대에게 희망을 준 지식인이며, 한국 사회가 20세기 질곡을 넘어 새로운 21세기를 열기 위해 반드시 청산해야 할 과제였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온 힘을 쏟으신 실천적인 역사학자로 기억할 것입니다. 선생님의 분투 덕분에 한국 사회는 진실에 기반한 화해와 정의를 세우기 위한 일보를 내디딜 수 있었습니다. 한국사회의 일원으로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물론 선생님이 바라 마지않던 인간답고 평화로운 사회는 아직 멀었습니다. 영정 앞에 서니 선생님이 따듯한 눈길로 권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내가 걸어온 길을 낙천적으로 이어가길 바라네. 더 멀리 나아가게.’ 열심히 따라 하겠습니다. 부디 모든 근심 내려놓으시고 평안히 영면하시기 바랍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 전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위원장

<2023-06-25> 한겨레

☞기사원문: “낙천적 자세로 역사 큰 흐름 보시던 실천적 역사학자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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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강만길 선생 영전에…역사와 사회 정의 실현에 몸 바친 정신 기억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30년만에 만난 강만길 교수님, 내게 준 큰 가르침

☞[추모성명]: 강만길 선생님의 뜻을 받들어 가겠습니다.

☞고발뉴스: [서해성의 사람] 강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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