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06: 사라지지 않는> 개봉… 허철녕 감독 “세상 밖으로 나온 영령 영원히 기억되길”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년이 넘었지만 한국전쟁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들에 대한 유해들은 전국 곳곳에 지금까지 방치돼 있습니다. 국가가 나서 국가폭력으로 희생된 분들의 진상규명을 촉구하기 위해 유해 발굴에 나섰습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결성선언문 중에서)
2014년,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 결성됐다. 한국전쟁기 국가에 의해 무고하게 집단 학살된 민간인 유해 발굴을 위해서다. 그런데 유해발굴을 위한 공동조사단이 정부 기관이 아니었다. 한국전쟁유족회, 민족문제연구소, 4·9통일평화재단 등 시민사회단체였다.
정부가 유해발굴을 외면하자 일부 전문가와 시민들이 삽과 호미를 들고 직접 유해발굴 자원봉사에 나선 것이다. 시민발굴단이 결성되자 유족들과 자원봉사자가 합류했다. 공동조사단이 별칭이 ‘시민발굴단’이 된 이유다.
이후 시민발굴단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전국 곳곳을 찾아다니며 전쟁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들에 대한 유해를 발굴했다. 또 발굴을 계속하고 있다. 올해에도 최소 8곳에 이르는 암매장 유해 발굴을 앞두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206: 사라지지 않는>(감독 허철녕)은 시민발굴단의 활동을 기록했다. 여기서 ‘206’은 인체의 뼈의 개수다. 국가가 아무리 감추려 해도 땅속에서 드러난 유해가 진실을 말해주고 있고, 그 진실은 묻어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인체의 뼈 개수 206… 진실 묻어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당연히 이 영화의 주인공은 시민발굴단이다. 인류학자인 박선주 교수는 시민발굴단과 영화에서 발굴단장역을 맡았다. 그는 일본 홋카이도에 묻힌 한국인 징용 피해 유해발굴을 시작으로 국군 전사자, 안중근 의사, 태평양 전쟁에 이어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 등을 도맡았다. 일흔을 훌쩍 넘긴 지금도 현장에서 호미를 들고 직접 발굴 현장을 챙기며 유해 감식까지 책임지고 있다.
안경호 발굴팀장은 4.9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을 지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관을 역임했다. 안 팀장은 유해발굴 현장 작업반장역으로 등장한다. 홍수정 실장은 4.9통일평화재단과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부터 안경호 팀장과 손발을 맞춰왔고 시민발굴단에서는 살림꾼 역할을 맡았다.
과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관으로 일한 추모연대 임영순 사무처장도 시민발굴단 일원이다.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 당시 유해발굴 총괄팀장을 맡은 노용석 부경대 교수와 그의 제자인 자원봉사자 김나경과 김소현도 이 영화의 주요 인물이다. 이 밖에 김장호 한국전쟁유족회 아산지회장과 김광욱 부회장은 유가족으로 유해발굴에 참여했다.
영화 속 마지막 발굴 현장인 아산 설화산 현장은 참혹하기만 하다. 시민 발굴단에게 심리적으로 가장 힘든 발굴장소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유해의 80% 이상이 여성이었고, 12세 이하의 어린아이가 유해도 60구에 달했다. 게다가 마지막 순간까지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필사적으로 끌어안고 죽음을 맞이한 유해도 많았다.
이 영화의 출발선은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이다. 허철녕 감독이 당시 밀양 송전탑 건설반대 투쟁에 참여한 주민 김말해 할머니를 인터뷰하면서 영화를 기획했다.
<말해의 사계절>(허철녕 감독)로 알려진 김 할머니는 1928년생으로 강제징용을 피하고자 이른 나이에 남편과 결혼했다. 그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였다. 남편이 보도연맹원 교육이 있으니 집합하라는 연락을 받고 나갔다 돌아오지 않은 때문이다. 남편을 찾기 위해 어렵게 찾은 학살터에서 본 건 수많은 유골, 정수리 부분에 대못이 박혀 있는 두개골이었다.
주요 등장인물은 시민발굴단
결국 <206: 사라지지 않는> 영화는 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1950년~1953년)- 4·19혁명과 5.16 군사쿠데타 (1960년 4·19 혁명으로 ‘양민 학살사건 진상조사특별위원회’ 설치 및 유해 발굴 시작했지만 1961년 5.16 군사쿠데타 발생 한국전쟁유족회가 이적단체로 몰리면서 유해발굴 중단)- 5.18민주화운동(1980년)-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 출범(2005년)-제1기 진실화해위원회 해체(2010년)-시민발굴단 결성(2014년)-진실화해위원회 출범(2020년)-한국전쟁 정전 70주년(2023년)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허철녕 감독은 “이 영화는 <말해의 사계절>의 연작이라 생각한다”며 “김말해 할머니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해발굴이 단순히 유해 수습을 넘어 역사적 갈등과 화해를 하고 사회적인 치유를 가능하게 하는 가능케 하는 첫 단추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온 수많은 영령이 해원 하여 사람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허 감독의 바람대로 영화는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과 아시아에서 만들어진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중 대상에게 수여되는 ‘비프메세나’상을 받았다. 이후 26회 인천인권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러프컷 내비게이팅 선정, 제47회 서울독립영화제 페스티벌 초이스, 제19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환경영화부문 선정, 제13회 타이완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초청, 제44회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초청 등의 성과로 현실이 되고 있다.
“세상 밖으로 나온 영령 영원히 기억되길”
영화는 서울과 제주 등 민간인집단학살 사건이 있었던 전국에서 현재 순회 상영을 하고 있다. 골령골 학살터가 있는 대전에서도 영화 상영 일정을 논의 중이다.
허 감독은 관객들에게 “70년 전 의문의 죽임을 당하고 우리 곁에서 사라져 버린 사람들을 끝끝내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시민발굴단의 발굴 여행은, 또 다른 기적과 감동의 한 순간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허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 <옥화의 집>, <밀양, 반가운 손님>, <말해의 사계절> 등을 연출했다. 또 <학교 가는 길>, <논픽션 다이어리> 등 제작에 참여했다.
심규상 기자
<2023-06-30>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