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 동상’이 360도를 회전해도
친일행적을 감출 수는 없다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 ‘동서남북 사방으로 대한민국을 지키고 수호한다는 의미’로 360도 회전하는 ‘백선엽 동상’이 결국 세워지고 말았다. 동상 건립비용 5억 원 중에는 국가보훈부 1억 5천만 원, 경상북도 1억 원 등 2억 5천만 원의 혈세가 포함되어 있다.
백선엽은 교사 양성기관인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하고서도, 일제의 침략전쟁이 극에 달하던 1940년 3월 진로를 바꿔서 일제가 세운 괴뢰 만주국의 초급장교 양성기관인 중앙육군훈련처(일명 봉천군관학교)에 입학하여 자발적으로 만주국군 장교가 된다. 특히 백선엽은 1943년 12월부터 악명 높은 조선인 특수부대인 간도특설대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이런 부역행위로 백선엽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음은 물론, 여야 합의로 제정된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최종보고서에 1,006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 중 한명으로 수록되었다. 백선엽 스스로도 “이이제이(以夷制夷)를 내세운 일본의 책략에 완전히 빠져든 형국이었다”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회고록에서 자백하였다.
한마디로 백선엽은 국가가 공인한 친일파이다. 그러나 국회와 정부가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아무런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아 국가가 규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인 백선엽이 2020년 7월 대전 국립묘지에 묻히게 되는 대단히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였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국가보훈부와 경상북도 그리고 백선엽 후손 등은 후안무치하게도 백선엽 사망 3년을 맞아 그의 동상을 더욱 드높이 세우기에 이르렀다.
대부분의 친일파들이 해방 후 반공영웅으로 신분을 세탁하여 재등장하였듯이 백선엽 역시 분단과 냉전의 질곡 속에서 일제에 충성했던 친일장교에서 대한민국을 지킨 6‧25 전쟁영웅으로 성공적으로 변신했다. 두루 알려진 백선엽의 친일행위에 더하여 백선엽이 ‘조작된 전쟁영웅’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예비역 장군이자 한국군사학회·군사평론가협회 박경석 명예회장은 “낙동강 전선은 월턴 워커 중장이 한국군 5개 사단과 미군 3개 사단 등 8개 사단을 지휘해 워커 라인으로 불렸다”면서 “백선엽의 제1사단은 8개 사단 가운데 하나였는데 공적이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또한 “백선엽의 제1사단은 개성에 주둔했는데 북한군은 6‧25 발발 5시간 만에 개성을 점령하고 남하했다”면서 이때 백선엽은 전쟁이 벌어지는 순간, 술판을 벌이고 있어 남침에 곧바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미화가 가능했던 것은 백선엽이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자신과 일본군 출신 군인들 중심으로 한국전쟁사를 미화했기 때문이다.
청렴결백한 전쟁영웅으로만 미화된 백선엽에 대해 미국은 어떻게 보았을까? 1971년부터 1974년까지 주한 미국대사였던 필립 하비브(Philip Charles Habib)는 1960년 5·16 쿠데타 당시 주한 미국대사관 정치담당 참사관로 있으면서 본국에 보낸 기밀문서에서 백선엽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였다. 그는 “백선엽은 자기 파벌이 위법행위를 하더라도 보호”하면서 “혜택과 진급, 적절한 사면 등의 방법을 통해 자신의 파벌적 역량을 축적했다”고 보고하였다. 그리고 “백선엽은 한 가지 단점이 있었다. 백 장군은 다른 참모총장들보다도 더욱 부패한 것으로 유명했다”고 당시 세간의 평가를 전했다.
동생 백인엽이 설립한 선인학원은 단군 이래 최대 비리 사학으로 수십년 간 온갖 불법과 부정을 저지르다, 시민·학생들의 오랜 저항으로 1993년에 이르러서야 공립화되는 결과를 볼 수 있었다. 백인엽이 장기간 이렇게 방약무인할 수 있었던 것도 형의 비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백선엽 본인도 서울 강남에 2천억 원대의 대형 건물을 가족 명의로 소유한 자산가였으며, 미성년자였던 장남 명의로 경기도 일대에서 부동산 투기까지 일삼은 모리배였다. 백선엽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어느 모로 보아도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지 결코 기념의 대상이 될 수는 없는 인물인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인 벤자민 프랭클린은 말했다. “좋은 전쟁도 나쁜 평화도 없다”고. 평화는 그만큼 소중한 것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고 평화적 통일을 이루려면, 친일군일을 전쟁영웅으로 떠받드는 몰역사적 행태와 구태의연한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사를 바로 잡는 지름길이다.
2023년 7월 5일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역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