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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일본과 모래성을 쌓겠다고… 이건 잘못된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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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외교부 제3자변제 공탁 논란 유족 첫 공개발언… “국민 힘 실어주시면 끝까지 싸울것”

▲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앞에서 ‘제3자 변제 공탁에 대한 피해자측 입장 발표 기자회견’이 열렸다. 재단측과 면담을 마치고 나온 고 정창희 할아버지(미쓰비시 중공업 히로시마공장 강제동원 피해자) 장남 정종건씨와 이춘식 할아버지(일본제철 강제동원피해자) 장녀 이고운, 장남 이창환씨가 소감을 밝히고 있다. 맨왼쪽은 소송대리인 임재성 변호사, 맨오른쪽은 민족문제연구소 김영환 대외협력실장. ⓒ 권우성

“과거사 반성 없이 일본과 모래성을 쌓겠다고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절규를 무마하려는 정부, 이건 잘못된 것 아닙니까?” (고 정창희 할아버지 장남 정종건씨(66))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국민은 국가의 의무를 다하고, 국가는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지켜줘야 합니다. 우리 대법원에서 판결한 그 권리를 정부는 끝까지 보장하고 지켜주길, 강력히 원합니다.” (이춘식 할아버지(99) 장남 이창환씨(67))

“살아계신 저희 아버지는 절대 반대하십니다. 나라에서 (아버지를) 생각한다면 재고하셔야 합니다. 일본 정부한테 당연히 사죄를 받아야 합니다.” (이춘식 할아버지 장녀 이고운씨(64))

아버지의 뜻을 전하는 아들과 딸의 목소리는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정부의 일제강제동원 판결금 제3자 변제 공탁을 거부하는 동시에, 대법원 판결대로 일본 기업의 배상과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하는 피해자 자녀들이 11일 오전 공탁 논란 이후 처음으로 언론 앞에 섰다. 외교부와 함께 제3자변제 공탁을 진행하는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아래 재단) 사무실이 있는 서울 종로구 건물 로비에서다.

언론 앞에 선 유족 “일본은 절대 사과하지 않는다”

카메라 앞에 선 피해자 자녀들은 정부의 제3자변제안에 쓴 소리를 던졌다. 일제강점기 미쓰비시중공업 히로시마 공장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원폭 피해까지 당한 고 정창희씨의 장남인 정종건씨는 “제3자 변제라는 이상한 것으로 우리 법을 스스로 우습게 만들지 말아야 하며, (피해자들의) 권리를 소멸시키는 공탁은 전면무효”라고 주장했다. 고 정창희 할아버지의 장남인 정씨가 언론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정부는 가만히 있어도 된다. 그런데 앞서 나아가 일본과 모래성 쌓길 하나? (그 모래성은)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은) 절대 사과하지 않는다. 국민 여러분들이 힘을 실어주시면, 우리도 열심히 싸워보겠다. 일본과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앞에서 ‘제3자 변제 공탁에 대한 피해자측 입장 발표 기자회견’이 열렸다. 고 정창희 할아버지(미쓰비시 중공업 히로시마공장 강제동원 피해자) 장남 정종건씨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권우성

정씨는 어린 시절부터 지켜본 아버지의 모습을 회고하기도 했다. 이른 아침부터 내린 폭우로 정씨의 바짓단은 다 젖어 있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원폭피해자협회부터 시작해 강제징용 문제까지 쭉 해결 해오신 걸 봤다. 젊은 나이에 일본 강제동원 만행으로 끌려가 노역에 시달리다 죽은 사람이 많다. 이는 역사적 사실이다.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이 일본에 소송을 걸었다. 그런데 이걸 금전 이익으로 치부하는 정부는, 우리 아버지… 아버지가 일본 정부를 향해 몇 십년간 투쟁하고 억울함을 호소했을 때 과연 무엇을 했을까. 어릴 때 기억으로 원폭 피해자 사무실에 항상 경찰 정보계 형사들이 상주해 있었다. 이런 감시 속에서도 아버지는 꿋꿋이 투쟁했다. (중략)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에 사과와 보상을 받는 것, 아버지의 뜻을 이어나가겠다.”

이춘식 할아버지의 장녀 이고운씨는 피해자들의 채권을 다루는 정부의 “주먹구구식” 행정 처리를 비판했다. 이씨는 “아버지를 제가 모시고 있는데, 절차도 없고 아버지한테는 연락도 없었다. 큰오빠에게만 연락을 했다”면서 “‘이렇게 됐다든가’ (연락도 없이) 수박 겉핥기 식으로 후루룩 넘어가는 것은 우리나라 정부가 굉장히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남 이창환씨는 “(외교부에서) 공탁을 할 것이라고 연락이 왔기에 ‘우리는 우리대로 해나가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왜 공탁했나, 당사자가 직접 물었는데 설명도 못해”

▲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앞에서 ‘제3자 변제 공탁에 대한 피해자측 입장 발표 기자회견’이 열렸다. 피해자측 소송대리인 임재성 변호사가 재단측과 면담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 권우성

피해자들의 소송을 대리하는 임재성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최소한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당신들의 채권을 공탁하게 됐다’는 이야기조차 못 받고 절차가 진행됐다는 게 당황스럽다”면서 “지난주부터 시작된 공탁의 핵심은 채권자들의 권리를 빼앗겠다는 것으로, 일본을 상대로 30년 넘게 한 소송이자 죽기 전 마지막으로 받은 판결을 없애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고운씨도 우리나라 대법원의 판결을 다시 강조했다. 이씨는 “(아버지는) 일본에서 그렇게 고생하시고 30년 넘게 재판을 다녔다. 대법원에서 판결 받은 것을 현 정부가 (제3자 변제로) 공탁한다는 것은 절대 반대하신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국민께서도 통탄할 일”이라면서 “끝까지 아버지의 의지대로, 공탁은 있을 수 없다. 끝까지 말씀 대로 따르겠다”고 했다.

한편, 정부가 피해자 또는 피해자 유족을 대상으로 광주, 수원, 전주 등 관할 법원에 낸 공탁 신청들은 줄줄이 불수리됐다. 임 변호사는 “이미 이뤄진 공탁에 대해서 당사자가 묻는데, 설명도 못하는 행정행위를 왜 하는가”라면서 “절차도 주먹구구식으로, 대면해서도 설명조차 할 수 없는 행정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자회견 직후 이들은 심규선 재단 이사장을 만나 다시 한 번 제3자 변제와 공탁에 대한 반대 의사를 전했다. 자녀들은 정부의 공탁 이유를 직접 물어봤지만, 심 이사장은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면담을 끝낸 정종건씨가 밝힌 소회는 “답답하다”였다.

글: 조혜지(hyezi1208), 사진: 권우성(kws21)

<2023-07-11>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일본과 모래성을 쌓겠다고… 이건 잘못된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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