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국가보훈부의 조문기 지사 ‘이달의 독립운동가’ 제외 폭거를 규탄한다
국가보훈부는 1992년부터 월별로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선정, 발표하여 애국지사들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그런데 2023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1945년 7월 24일 경성부민관(현 서울시의회 건물)에서 친일파 박춘금이 전쟁 수행 찬성을 위해 아세아민족분격대회를 개최하자 여기에 참석하는 친일파를 처단하기 위해 폭탄의거를 주도한 강윤국(1926~2009, 1990년 애국장)·유만수(1921~1975, 1990년 애국장) 선생을 선정했다”고 밝히면서 의거의 세 주역 중 한 분인 조문기 지사(1927~2008, 1990년 애국장)만을 제외하였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인 윤영덕 의원실에서 올해 초 보훈부에 선정 제외 사유를 문의한 결과, 보훈부는 처음에는 “고 조문기 독립운동가는 공적조사 결과, 1948. 5. 25. 인민청년군 활동과 관련하여 강도범죄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사실이 있어 심의위원회 심의대상에 올리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바로 사실관계 오류임이 드러나자 “1심에서는 강도 범죄로 실형을 받았고 2심에서 해당 혐의는 무죄가 난 것을 확인했지만, 맥아더 포고 2호 위반으로 1년 6개월 형 받은 것을 확인해 심사 진입 단계에서 제외했다”고 다시 말을 바꾸었다. 이 한 가지만 보더라도 보훈처는 당초부터 조문기 지사를 표적삼아 〈이달의 독립운동가〉에서 제외할 작정이었다는 혐의를 받기에 충분하다.
“광복 이후 수형사실이 있는 경우에는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에서 제외하고 있다”는 보훈부의 추가 해명 역시 매우 부적절하다. 이는 미군정 포고령을 대한민국 법률과 동일한 권능을 가진 법령으로 간주하는 행태로, 이 포고령을 근거로 한 처벌은 위헌·위법이라는 그간의 사법부 판례 및 다른 정부기관의 유권해석과 상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미군정 포고령 위반으로 금고형을 선고받은 이선호(1904~1950) 선생을 2021년 6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한 전례로 볼 때도 보훈부의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이와 같은 지적에 보훈부는 “2021년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선정할 당시 검증을 진행하였으나, 이선호 선생의 미군정 포고령 위반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며 “만약, 미군정 포고령 위반으로 수형 사실이 확인되었다면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확실한 기준도, 검증할 능력도 없음을 자인한, ‘꼬꼬무’식의 남 보기에도 민망하고 구차한 대응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조문기 지사는 왜 미군정 포고령 2호 위반으로 고초를 당했는가. 남북분단이 점차 현실화되어 가던 1948년 5월 5일 조문기 지사는 단선·단정을 반대하고 통일민족국가 수립의 당위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동지들과 ‘북한산 봉화 시위’를 단행했고 배신자의 밀고로 검거된 뒤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5·10 총선거를 앞두고 있을 무렵 언론은 봉화사건을 매일 같이 일어나는 일로 파악하고 있었으며, 이는 민중의 열망이 담긴 일상적인 저항운동이었다. 남북협상을 위해 김규식 선생과 함께 38선을 넘었던 김구 선생도 “통일독립을 방해하는 최대의 장애는 소위 단선·단정입니다. 그러므로 현하에 있어서 우리의 공동한 투쟁목표는 단선·단정을 분쇄하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입니다”라고 역설했다.
독립운동가 중 미군정 포고령 위반으로 고초를 당한 사례는 조문기, 이선호 지사 외에도 오화영, 박성화 지사 등도 있다. 단선·단정 반대 통일민족국가 수립운동으로 인한 미군정 포고령 위반을 사유로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에서 배제한다는 사실 자체가 어불성설이기도 하지만, 최소한의 원칙도 기준도 없이 평생을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를 범죄자와 동일시하는 보훈부의 경솔하고 무례한 처사는 사회적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조문기 지사는 민족문제연구소 제2대 이사장을 역임하며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초석을 놓은 친일청산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반면에 보훈부는 최근 광복회장의 당연직 서훈심사위원 자격을 박탈하고 의결정족수를 완화하는 등, ‘친일파 복권’을 위한 전초전에서 다양한 경로로 역사쿠데타의 선봉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보훈부의 무리수는 나름의 계산 끝에 나온 승부수의 하나로 그 목적은 민족문제연구소를 압박하는 데 있다고 판단된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의 7월 18일 언론 인터뷰가 이를 입증해 준다.
“김원봉을 예우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한민국을 역사에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종의 ‘사생아’란 잘못된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민족문제연구소’ 같은 곳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김원봉 선생을 예우하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연구소의 지향과 동떨어진 얼토당토않은 언설로 국민을 호도하는 것이 정부 부처의 장관이 할 짓인가?
보훈부의 조문기 지사에 대한 분별없는 조치나 장관의 연구소에 대한 근거 없는 모욕이나 도긴개긴으로 상대할 가치조차 없는 수준이지만, 이와 같은 저급한 행태의 재연과 확산을 막기 위해 우리는 지난 2월에 이어 다시 한 번 국가보훈부에 다음의 명확한 조치를 엄중히 요구한다.
첫째, 국가보훈부는 진보적인 시민단체에 불이익을 주고 관련자를 배제하는 블랙리스트를 운용하고 있는지 또는 유사한 지침을 전파했는지 진상을 밝혀라!
둘째, 이달의 독립운동가 심의위원회 회부를 의도적으로 생략한 것은 직무유기이다. 실무선에서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니 최고 윗선을 공개하라!
셋째, 최종 책임자를 문책하고 유족 등 관계자와 관련 단체에 사죄하라!
2023년 7월 23일
민족문제연구소
〈참조〉
* 2021년 6월 24일 광주지법 순천지원 제1형사부(송백현 부장판사)는 여순사건 당시 순천역 철도원으로 근무했던 김영기 씨와 대전형무소에서 숨진 농민 김운경 씨 등 민간인 희생자 9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 “맥아더 장군이 선포한 포고령 2호는 현재 폐지된 상태인데다 적용 범위가 포괄적이어서 죄형 법정주의에 의해 위헌 법령”이라고 밝혔다.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23년 1월 18일 “미군정 포고령 제2호 위반 사항은 판결일을 기준으로 ‘일반 사면령’(1948년 9월 27일 시행, 대통령령 제6호)에 의거해 면소”돼야 함에도 “징역형의 유죄 판결을 선고한 것은 위법”이라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