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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백선엽이 친일파 아니란 주장은 박민식 장관이 거의 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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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 박민식 국가보훈부장관이 7월 5일 오후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투기념관에서 열린 백선엽 대장 동상 제막식에서 국가보훈부와 국립 현충원 홈페이지에 기재돼 있는 백씨의 친일행적을 지우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 조정훈

최근 국가보훈부는 독립유공자 포상 심사 기준을 대폭 변경·강화해서 ‘가짜 유공자’ 논란을 불식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또한 박민식 장관은 일제 강점기 때 간도 특설대에서 복무한 백선엽에 대해 친일파가 아니라며 장관직을 걸겠다고 했다.

보훈부의 이런 방침과 함께 백선엽의 친일 행적에 대해 들어보기 위해 지난 11일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방 실장과의 일문일답.

– 박민식 보훈부 장관이 “독립유공자 포상 심사 기준을 대폭 변경 강화해서 가짜 유공자 논란을 불식시키겠다. 특히 친북 논란에도 불구하고 독립유공자로 포상돼 사회적 갈등을 일으킨 부분에 대해 기준을 명확히 하겠다”라는 뜻을 밝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은 우리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것이죠. 과거에 소위 말하는 이념 논쟁에 대해 뉴라이트 성향의 학자들이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을 이야기하면서 본인들의 의견 말씀하셨잖아요. 그리고 그것에 대해 역사 연구자들이 대응하면서 공론장을 만들었다면 현재는 그렇지 않고 정무직 정치인이 직접 나서서 이념 논쟁 촉발시키고 나아가서 본인의 답을 가지고 있는 거죠.”

– 무슨 답이요?

“박민식 장관이 최근 말했듯이 백선엽이 친일파 아니라고 하는 것에 장관직을 걸겠다는 식이죠.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논의해 보자, 재평가하자, 공청회 하자’가 아니라 ‘백선엽이 친일파 아니라는 데 장관직 걸겠다’는 식으로 역사 영역을 정치 영역으로 완전히 끌고 들어온 것이죠. 이러한 모습은 이전 이명박근혜 정권에서도 전혀 볼 수 없었던 행태죠.”

– 이유가 뭘까요?

“저는 기본적으로 윤석열 정권은 즉흥적인 정권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승만 재평가 이야기는 윤석열 대통령이 3·1절 기념식장에 이승만 그림이 없다고 질책하면서부터 시작된 겁니다. 그래서 기념식 주무 부처인 보훈처가 난리 났다는 거예요. 그리고 3월 26일 박민식 처장이 이화장으로 이승만 탄생 기념식에 간 거죠. 바로 그 자리에서 박민식 처장이 이승만 재평가하겠다고 하고 이어서 한겨레와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평소 이승만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했는데 공부를 해보니 이승만을 재평가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합니다.

해당 기자가 그럼 언제부터 그럼, 생각이 바뀐 거냐고 물었더니 그런 인식을 바꾼 지가 2~3년이 채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 이후부터 이승만기념관 460억 이야기도 나오고 급기야 이승만 동상이 7월 27일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세워지죠. 사실 그 동상도 2017년도부터 세우려 했어요. 그러나 그동안 부지는 내놓는 지자체가 없었는데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니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손들고 나선 겁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윤석열 정권은 이념 논쟁은 이미 답을 정해 놓고 즉흥적으로 추진하고 있죠.”

– 보수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비슷한 논쟁이 계속되는데 왜 그럴까요?

“이전의 보수 정권과 비교해도 너무도 달라서 그 이유를 추측하기는 어려운데요. 제가 볼 때는 ‘지지율이 땅바닥이라도 추진할 건 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막무가내식 태도에 내년 총선에서 공천에 받고자 하는 박민식 장관의 장단 맞추기가 더해지면서 발생하는 자충수나 무리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박정희 정권 때 시작된 서훈… 친일 경력자들이 심사”

▲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 방학진 제공

– 가짜 이력으로 독립유공자 된 사람 찾겠다는 게 보훈부 입장인 것 같은데 이 부분 어떻게 보세요?

“박정희 정권 때인 1962년부터 독립운동가 서훈이 낮은 수준에서나마 시작되었는데요. 문제가 많았습니다. 단적으로 백낙준, 유광열, 이선근, 신석호 등 친일 경력자들이 독립운동가를 심사했으니까요. 따라서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에 작성된 독립유공자 공훈록은 많이 개선돼야 하고 전수조사 과정에서 그 부분을 유심히 살펴야 합니다.”

– 아직도 잘못된 게 남아 있는 건가요?

“독립운동사 연구가 발전하면서 초기 공훈록에는 없는 새로운 자료들이 발굴되었어요. 그러면서 공적이 추가되기도 했고 반대로 친일 행적이 드러나기도 하지요. 여기에서 관심사는 추가 공적보다는 친일 행적의 발굴이지요. 많은 국민들은 ‘독립운동가로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가짜였다’하는 부분에 관심이 높습니다. 가짜 독립운동가는 당연히 가려내야 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문재인 정권에서 피우진 보훈처장이 전수조사를 공언했습니다. 하지만 전수조사하려면 많은 예산과 인력이 투입되는데 그러한 고려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약 1만 7천 명 서훈자 중의 25%밖에 못 봤다는 거 아닙니까.”

– 시간이 오래됐잖아요. 해방된 지 80년 가까이 되는데 그런 게 왜 정리 안 된 거죠?

“독립운동가 예우에 관한 단독 법이 제정된 해가 1996년입니다. 즉 1945년부터 50년 동안에는 독립유공자의 공적을 조사하고 서훈하고 예우하는 단독 법률이 없었어요. 대한민국의 보훈의 시작은 독립운동가를 예우하는 것이 아니고 군인을 돌보는 군사원호청으로 시작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나라를 위해서 봉사한 분 중 첫 예우 대상이 6·25 참전 군인이었던 거죠. 군인을 먼저 보훈의 대상으로 삼다 보니까 당연히 독립유공자에 대한 공적 조사, 예우 등은 후순위로 밀렸던 것입니다. 또한 숫자로 봐도 예비역 군인이 가장 많고요.”

– 박민식 장관은 친북 논란 인사들 서훈 취소에 대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인데 예를 들어서 독립운동을 하는 분들이 목적이 있다. 우리 국민한테 자유를 주는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우리가 독립운동한다. 이렇게 해야 이야기가 되는 것인데 예를 들어서 전체주의 국가, 자유도 없는 그런 전체주의 국가를 위해서 독립운동을 했다면 문제 있는 것 아니냐”라고 했어요.

“일제강점기 당시에 전체주의 국가는 천황제 파시즘의 일본이죠. 독립운동은 기본적으로 반제국주의 운동입니다. 따라서 친제국주의 활동은 독립운동이 아니죠. 이것은 역사 만화책 수준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 당시 독립군들은 나라를 되찾겠다는 거였지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자는 게 아니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1894년 청일전쟁이 벌어지고 그 이듬해 을미사변이 벌어지잖아요. 명성황후가 시해되니까 국모의 원수를 갚자고 일어난 게 을미의병입니다. 그 을미의병을 우리나라에서는 독립운동가로 서훈합니다. 을미의병 참가자 대부분은 복벽 주의 또는 보황주의로 일본 몰아내고 전주 이씨의 임금으로 대한제국을 지키자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 복벽주의자들을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꿈꾸지 않았다고 서훈을 박탈하자고 할 수는 없잖아요. 바로 그런 개념인 거죠. 일단 일본 제국주의 침략을 반대했기 때문에 독립운동 서훈 자격이 되는 거예요.”

– 김원봉처럼 독립운동했지만, 북한 정권 세우는 데 공 있는 사람은 어떻게 보세요?

“이만열 교수님은 독립운동가에 주는 훈장을 ‘건국훈장’ 아닌 ‘독립 훈장’이라고 이름을 바꾸자고 제안하시면서 1945년 8월 15일 이전까지만 평가하자고 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김원봉도 독립 훈장을 받을 수 있겠지요. 반대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독립운동가에게 훈장을 드릴 수 있는가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렇듯 연구자마다 의견이 통일되어 있지는 않고 입장이 분분합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한 경우 서훈 제외 대상이지요.”

– 일제 때 친일 행적은 분명히 존재하는데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 큰 공을 세운 사람에 대해 독립 유공자로 하겠다는 건데.

“이건 그야말로 말이 안 되는 얘기고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는 산업훈장이 있지 않습니까? 수출 많이 해서 산업훈장을 받은 분이라고 다른 죄를 지으면 그 범죄가 사해지는 건 아니잖아요. 따라서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 장군 했든 장관 했든 대통령 했든지 해방 이전 친일의 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즉 친일 행적과 해방 후 공적을 더하고 빼는 산수처럼 다룰 일은 아닙니다.”

– 한국전쟁에서 공 세운 사람들이 없었으면 지금 대한민국은 없었을 거라고 하는데.

“저도 가정법을 써서 이야기한다면, 백선엽이 한국군 창군에 참여하지 않고 광복군 출신들이 한국군 창군의 주역이 되고 김구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되어 친일 청산을 제대로 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더 좋은 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백선엽, 회고록서 ‘동포에게 총을 겨눈…’이라고 밝혀”

– 논란 인물 중 하나가 백선엽 장군이에요. 일제시대 간도 특설대에서 독립군을 잡았다고 알려졌죠. 그러나 박민식 장관은 다른 말을 해요. 백선엽 장군이 간도 특설대에 있었던 건 맞지만 당시 간도엔 독립군이 없었다는 거죠. 백선엽 장군이 복무할 당시 간도에 독립군 없었나요?

“역사학계에서는 1930년대 중반 이후 만주 쪽에 독자적인 조선인 무장 독립부대가 없었다고 하죠. 그 시기에 조선인으로만 구성된 무장 독립부대 활동이 퇴조한 건 사실이지만 중국인과 조선인의 연합부대 동북항일연군과 다수의 조선인이 생활의 터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백선엽이 간도특설대 활동 당시 만주에는 조선인이 없었다고 말하는 건 사실 왜곡입니다. 또한 간도특설대가 무장 부대만 공격한 게 아니라 민간인들도 많이 죽이거든요. 게다가 백선엽 스스로 회고록에서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비판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밝히고 있거든요. 법률적으로 보자면 미필적 고의죠. 만주 지역 항일부대원 중에 조선인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으나 그냥 총을 쐈다는 것이죠.

게다가 백선엽은 졸업하면 교사가 되고 군대 면제인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하고도 굳이 전쟁이 한창인 만주로 가서 자발적으로 입대해 군인이 됩니다. 그런 점을 보면 만주국군이 되면 항일부대원은 물론 동포에게도 총을 겨눠야 한다는 인식을 이미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적극적이고 자발적 행위가 <친일 인명사전>은 물론 정부로부터도 ‘친일반민족행위자’에 조사된 이유입니다.”

– 왜 백선엽의 친일 행적을 지우려고 하는 걸까요?

“저도 그게 궁금한데요.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할 무리수를 두는 거예요. 백선엽의 지지자들은 그에 대해 친일 행적이 없다고는 주장하지 않아요. 백선엽이 친일파가 아니라는 주장은 박민식 장관이 거의 유일합니다. 백선엽 스스로 동포에게 총을 겨눴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박민식 장관만 아니라는 겁니다. 마치 살인자가 법정에서 살인 자백했는데 ‘박민식 검사’만 그 살인자의 살인을 검사직 걸고 부인하고 있는 격이죠.”

– 백선엽이 어떤 인물이길래 그렇게 하는 거죠?

“개인적 견해로 백선엽은 운이 좋거나 기회를 잘 포착한 인물 같습니다. 김백일 같은 경우 6·25 참전 중에 전사하고 박임항, 김동하, 방원철 등은 반혁명 사건으로 힘을 잃었고 정일권, 강영훈의 경우는 정치권으로 갔지요. 그러면서 백선엽은 30년 넘게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 맡아 한국전쟁 당시 공적 부풀리는 셀프 영웅화를 꾀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예비역 박경석 장군, 한설 장군 그리고 서상문 박사 등의 견해도 있습니다. 개인적 경험을 소개하면 국방부 고위 관계자를 만난 일이 있었는데 그분 말씀이 ‘백선엽 장군이 거의 매일 국방부 건너편 전쟁기념관에 본인 집무실에 출근한다. 그분이 살아 있는 한 국방부에서 6·25 전쟁사를 제대로 쓸 수 없다는 것을 국방부 직원들도 다 안다’라는 거예요.”

– 백선엽을 영웅화하는 의도가 있을까요?

“백선엽이라는 대표 영웅을 통해 냉전 시기를 거친 수많은 전역 군인이 북한 공산정권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킨 영웅으로 자신들의 신분 상승을 하게 되는 것이죠. 즉 서로의 이해와 요구가 일치하는 거죠. 그러니까 백선엽 전쟁 영웅 만들기에 굳이 반대하지 않는 거죠.”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전북의 소리에에도 실립니다.

이영광 기자

<2023-07-12>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백선엽이 친일파 아니란 주장은 박민식 장관이 거의 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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