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회원마당]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 2023 서울평화기행
<독립에서 통일로> 진행
박종선 부천지부장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는 6월 17일(토) 부천시민 37명이 참가한 가운데 서울평화기행을 다녀왔습니다. 서울은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600여 년 동안 우리 민족의 중심인 수도(首都)이기에 많은 유적과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방송, 기사 등에서 많이 다루어지기 때문에 서울을 많이 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접근하는 주제와 방식에 따라 우리가 모르는 많은 내용을 지니고 있습니다. 알면 알수록 더 복잡해지기도 하고 역사적 사실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를 알면 서울이 새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렇듯 우리에게 특별한 존재인 서울을 부천지부는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 일제의 억압과 수탈에 맞서 독립을 찾기 위해, 해방 후에는 강대국들의 신탁통치를 반대하고 분단을 막기 위해 그리고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신 분들을 만나기 위해 <독립에서 통일로> 주제로 평화기행을 추진하였습니다.
전체적인 답사 해설은 방학진 기획실장이 해주셨으며, 백범 김구 선생과 심산 김창숙 선생에 관한 이야기는 함께 간 홍소연 전 백범기념관 자료실장께서 해주셨습니다.
경교장 (백범 김구 선생 사저와 마지막 임시정부 청사)
백범 김구 선생은 1919년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후 해방될 때까지 국내가 아닌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셨습니다. 상해, 항저우, 충칭 등 중국 내에 다수의 임시정부청사가 남아 있으며 많은 국민은 독립운동가분들의 발자취를 찾아 독립운동 유적답사를 다녀오고 있습니다. 중국 내 임시정부를 따라다니는 답사는 곧 백범 김구 선생의 독립운동 활동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내에도 백범 선생 독립의 길이 있습니다. 인천의 감리서 터, 강화도의 합일학교 및 대명헌, 공주 마곡사 등 다양합니다. 서울에는 경교장(京橋莊)이 있습니다.
경교장(종로구 평동 108-1)은 백범 김구선생께서 중국에서 환국하셔서 지내셨던 사저로 마지막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로도 불립니다. 1945년 해방이 되었지만, 남북으로 분단되고 1948년 8월 15일 총선이 치러짐에 따라 임시정부는 해단식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독립운동가분들이 꿈꾸는 대한민국은 분단되고 대립한 독립국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경교장은 대일항쟁기 금광으로 부자가 된 친일반민족행위자 최창학(친일인명사전 등재)의 개인 소유주택이었으나 해방된 후 헌납하여 백범 선생의 개인 사저가 되었습니다. 백범 선생께서 1949년 6월 26일 안두희의 총에 맞 돌아가심에 따라 경교장 소유권은 다시 최창학에게로 돌아갔으며, 이후 주한 중화민국대사관, 6·25 전쟁 중에는 미군 특수부대와 임시의료진 벙커, 병원 등으로 이용되는 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게 됩니다. 위태위태한 고비를 넘긴 경교장은 1990년대 시민들의 노력으로 우리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2001년에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받았으며, 2005년 사적 제465호로 승격되었습니다. 2009년에 경교장 전체 복원이 결정되고 2013년 3월 2일 복원이 완료되고 무료 개방되어 관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독립정신과 민주주의의 성지 강북구
강북구에는 북한산 국립공원 출입사무소가 있습니다. 서울의 수려한 경관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관광지로 여겨지는 강북구에는 3·1운동의 발원지인 봉황각, 독립운동가분들의 묘소, 그리고 국립 4·19민주묘지가 자리 잡고 있어 독립정신과 민주주의의 성지로 여겨집니다.
우리 일행은 경교장에 이어 문익환 목사님의 생가인 <통일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문익환 목사님은 대학 교수로, 시인으로, 반독재를 외친 민주열사로 그리고 남북의 화해와 교류를 위해 활동하신 평화통일운동가로 기억됩니다. 문익환 목사님은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나셨으며 윤동주 시인독립운동가 송몽규 선생과 친구입니다. 목사님의 일생은 곧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관통하게 됩니다. 특히 1989년에는 북한을 방문하셔서 <4·2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셨는데 2000년에 남북정상이 합의한 <6·15 남북합의서>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6번에 걸쳐 총 11년 4개월의 옥고를 치르셨는데 이러한 목사님의 뜻을 잇기 위해 많은 사람이 <통일의 집>에 방문하고 있습니다.
<통일의 집>에 이어 4·19 국립묘지를 참배했습니다. 4·19 국립묘지는 1960년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의 부정부패와 독재 그리고 3·15부정 선거에 항거하기 위해 일어났던 민주 영웅들을 모신 성지입니다.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많은 분의 희생으로 지금의 민주주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정치란 무엇인가?’,‘권력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잘못된 정치인들이 권력을 잡으면 평범한 시민들은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점심 겸 휴식 시간을 가진 후 오후에는 근현대사기념관을 방문하였습니다. 근현대기념관은 동학농민혁명부터 4·19혁명까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알려주는 공간으로 2016년 5월 개관하였습니다. 다양한 전시와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념관에 오르는 길에는 시민들이 뜻을 모아 제작한 독립운동가들의 흉상이 설치되어 있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근현대사기념관에서는 우리 방문단을 위해 학예실장과 학예사들이 나와서 직접 설명해주었으며 심산 김창숙 선생에 대한 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또한 이번 답사에는 상명대 고경일 교수님과 5명의 제자가 함께해 우리 방문단의 캐리커처를 그려주셨습니다. 고경일 교수님은 만화를 통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관동대지진 100년을 맞이하여 기억하고 치유하기 위해 ‘관동대지진 100년 만의 통곡 아이고 AIGO전’을 펀딩 모금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작가가 함께 관동대지진이 일어났고 학살이 자행되었던 관동지방에서 그날 희생된 분들을 추모하는 전시회를 열 예정입니다.
근현대사기념관 다음으로 향한 곳은 심산 김창숙 선생 묘소였습니다. 심산 선생을 뵈러 가는 길에 단주 유림 선생의 묘소가 있습니다. 단주 선생(1898~1961)은 경상북도 안동군 임북면 계곡동에서 태어나셨으며 대일항쟁기에 국내외 아나키스트 운동가들의 대표격으로 임시정부에 참여, 국무위원을 맡으셨으며, 광복 후에 독립노농당을 결성해 미국, 소련 등 열강에 의해 나라의 운명이 좌지우지되던 격동의 해방정국 속에서 반외세와 자립자강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었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림 선생의 가정사는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들이 유원식(1914~1987)인데 유원식은 일본군에 입대하여 만주군 장교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관계로 아버지인 유림 선생은 아들인 유원식과 의절하게 됩니다. 유원식은 후에 5·16군사정변에 참여하여 박정희 독재정치에 부역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심산 김창숙 선생 묘소를 참배했습니다. 심산 김창숙 선생(1879~1962)은 경북 성주군 출신으로 대일항쟁기 유림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입니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을 역임, 유도회(儒道會)를 조직하시고 성균관대학교를 설립하여, 초대 학장에 취임하셨습니다. 1953년에는 성균관대학이 4년제 종합대학교로 승격하여 초대 총장에 취임하셨습니다. 하지만 1956년 이승만 정권에 부역했던 친일 유림의 강압으로 성균관대학교 총장직에서 쫓겨나셨습니다.
기온이 30도를 넘는 무더운 여름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짧은 하루 동안 총 6곳을 답사하는 강행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참가하신 분들은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셔서 잘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근현대사가 정의와 상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팠지만 앞으로 후손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은 독립운동가분들이 꿈꾸는 통일된 대한민국임을 자각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이 상황이 힘들고 괴롭지만 꿋꿋하게 견디고 이겨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 <콩나물신문> 2023.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