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회원마당]
촛불혁명과 한국사회의 미래
김순흥 광주지부장, 사회학 박사
2017년 5월, 촛불혁명 직후 처음 맞는 5·18때, 영국의 시사주간지 에서 인터뷰하자고 찾아왔다. 촌구석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알고 왔는지는 모르지만, 영국인 서울지사장과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널리 알려진 한국인 교수의 딸이 기자 겸 통역으로 함께 왔다. 이런저런 질문들 끝에, ‘촛불혁명 후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해 묻는다. 세계역사를 새로 쓴 엄청난 촛불혁명이었던 탓에, 우리는 물론 온 세계가 찬사를 보내고 관심을 보이던 때다. 마치 모든 것을 이룬 것처럼 온 국민이 들떠있었고 희망이 넘쳐흘렀다.
“촛불혁명은 세계사에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엄청난 것이지만, 사회학자의 시각에서 볼 때, 한국의 미래를 낙관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내 대답에 질문자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왜 그렇게 보는지?” 다시 묻는다.
“그동안 한국 역사에서 동학, 3·1만세, 4·19, 5·18, 6월항쟁, 촛불혁명 등 수많은 저항과 혁명이 있었다. 하지만, 승리는 잠시 그때뿐이었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혁명 전의 상황으로 돌아가버리거나 오히려 더 나빠진 경우도 있었다.”
마치 내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지금도 다시 그렇게 돼버렸지만…
겉만 태우고 뿌리를 뽑지 못한 혁명
돌이켜보면, 저항과 혁명으로 근본적인 사회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저항의 대상이었던 독재세력은 무너졌지만 다른 세력들이 대신 자리를 차지하는 선에서 그치고 말았다.
촛불, 횃불, 들불들의 열기가 땅속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겉만 부르르 태운 채, 땅속에 깊이 숨어있는 버러지들을 죽이지 못한 채 끝나 버렸기 때문이다. 혁명 이후 새로 들어서는 정권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바탕이 기득권 보수세력이 주축이었던 까닭에 사람만 바뀐 채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노론 벽파 이후 오랫동안 기득권을 누려왔던 이 땅의 지배세력, 일제강점기의 친일세력 등 사회 전체의 이익을 찾기보다는 나라를 팔아서라도 자신과 자신의 무리들의 이익만 추구해왔던 수구기득권 세력들이 혁명으로 뒤집어놓은 한국사회를 다시 지배해왔다.
반민특위 해체로 끝나버린 해방 후 친일청산, 박정희 쿠데타로 막을 내린 4·19, 6·29로 넘어간 6월항쟁, 윤정권에 갖다바친 촛불…수구기득권 세력들을 척결하지 못한 채,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들을 치죄하고 역사정의를 바로 세우지 못한 채, 마치 모든 것을 이룬 것으로 착각하고 샴페인만 터뜨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뿌리를 뽑지 못하고 겉만 태우고 말았기 때문이다. 정치, 경제, 사법, 언론, 모든 분야에서, 혁명의 경험은 시민들에게도 축적되지만, 수구기득권들에게도 노하우가 쌓이게 된다. 오랫동안 모든 것을 쥐고서 단맛만 보면서 살아온 세력들이라서 쉽게 포기하지도 않고 쉽게 무너지지도 않고 죽을 힘을 다해 억척같이 지키려고 한다. 태풍이 불 때는 잠시 엎드려 숨을 죽이고 있다가, 더욱 악랄하고 교활하게 다시 부활한다. 촛불, 횃불을 들었던 민초의병들은 조직화되어 있지 않은 채 일상생활로 돌아가고 세력을 가진 수구기득세력권들이 어느새 다시 판을 뒤집어놓는다.
김대중 노무현 이후, 이명박근혜 시절 수면 위로 떠오른 수많은 수구세력, 현 정권의 후안무치한 세력들… 과거에는 숨어서라도 했지만 이제는 부끄러움도 없이 내놓고 한다. 역사를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결국 자기들 손으로 돌아오는 것을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항생제에 내성이 생기는 균처럼 저항과 혁명에 무너졌던 세력들이 갈수록 더 교활해지고, 더 뻔뻔해지고, 더 악랄해진다.
근본을 바꾸지 않으면 어떤 혁명도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이 땅을 수백년 동안 지배해온 수구기득권 세력들, 특히 나라와 민족을 팔아 가면서까지 자신들의 영달만 추구해온 친일잔재세력들을 근본적으로 청산하지 않고서는 이 땅의 미래는 결코 낙관할 수 없다.
2023.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