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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81년 전 오늘,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세상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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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의 치악산 일기] 제153화 : 허형식 장군 순국일에 붙임

▲ 추모식 포스터 ⓒ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의 <광야> 마지막 두 연이다. 오늘(8월 3일)은 이 시의 주인공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돌아가신 지 81주년이 되는 날이다.

3일 오전 11시는 만주 제일의 항일파르티잔으로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장 겸 총참모장이었던 허형식 장군의 81주기 추모식이 열린다. 추모식은 장군의 생가(경북 구미시 임은동 266번지) 왕산 허위 기념공원에서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주최로 열린다.

나는 1999년 중국대륙 항일유적답사 길에 하얼빈 동북열사기념관에서 허형식 장군을 만났다. 그때 나의 길 안내자 이항증(전 경북 독립기념관장) 선생이 허형식 장군은 바로 내 고향 구미 출신이라고 해 깜짝 놀랐다. 더욱이 그분 생가가 박정희 대통령 생가와 철길 하나 사이라고 해 더욱 놀랐다.

그리하여 그 이듬해 나 혼자 북만주 벌판을 헤맨 끝에 마침내 2000년 8월 18일 흑룡강성 경안현 청송령 허형식 순국지를 찾아 들꽃을 한 줌 바쳤다. 그 이야기를 실록소설화 해 <오마이뉴스>에 ‘들꽃’이란 제목으로 연재했었다. 그 뒤 2016년 11월 22일에는 <박도 실록소설 만주제일의 파르티잔 허형식 장군>이라는 제목의 소설집도 펴냈다.

▲ 북만주 경안현 청송령 들머리에 있는 허형식 희생비에 들꽃을 바치다. ⓒ 박도

허형식은 1909년 경북 구미시 임은동에서 태어나 1915년 가족들과 함께 북만주로 망명 이주했다. 그는 구한말 13도 창의군 군사장 왕산 허위 장군의 당질로 22세 때 항일운동에 뛰어들어 1939년 4월에는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장 겸 총참모장에 오른 전설적인 항일명장이다.

1942년 8월 3일 새벽 소부대 활동 중, 위만국(괴뢰만주국) 토벌대에게 발각 교전 중 두 경호원을 살리고 그들을 엄호하다가 위만군의 총알을 벌집처럼 맞고 흑룡강성 경안현 청송령 계곡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 실록소설 <허형식 장군> 표지 ⓒ 눈빛출판사

시 <광야>를 쓴 이육사의 어머니 허길 여사는 허형식 장군의 사촌 누이다. 이육사는 1940년대 초 삼촌 허규와 같이 북만주를 둘러봤다. 그는 그때 백마를 탄 허형식 장군을 분명 만나 그를 ‘광야’의 주인공으로 삼아 한 편의 불멸의 명작 시를 남겼다.

나는 북만주 현지에서, 허형식 유족 그리고 경북 안동의 이육사 유족들을 통해 그런 사실을 확인했다. 다만 ‘백마 타고 온 초인’이 허형식 장군으로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동안 우리는 냉전 체제에 살았기 때문이다.

허형식은 항일을 하기 위해 중국 공산당에 분명 가입한 바, 해방 후 우리 사회에서는 ‘공’자만 들어가도 무조건 처형했던 무서운 시대였다. 그래서 허형식 유족들은 그 시대에 살아남고자 허형식 존재조차도 숨기면서 살았단다.

언젠가 우리 역사가 바로 서는 날 아마도 경북 구미 금오산 기슭 어디엔가 허형식 장군의 기마동상이 세워지리라 확신을 하면서 오늘 추모제에 이육사의 <광야> 전문을 조곡으로 삼는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이육사 ‘광야’

박도 기자

<2023-08-03>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81년 전 오늘,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세상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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