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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78년 전 원폭 피해자 “하늘에 번쩍하더니 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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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세 김판근씨, 5일 ‘합천 비핵-평화대회’ 현장 증언

▲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피해 1세대 김판근(93)씨가 5일 오후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강당에서 열린 “합천 비핵-평화대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 윤성효

78년 전인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나가사키에 미국이 투하했던 원자폭탄에 의해 지금도 고통 속에 살고 있는 김판근(93)씨는 힘들게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김씨는 5일 오후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강당에서 열린 “2023 합천 비핵-평화대회”의 하나로 열린 ‘이야기 마당’에서 증언했다.

이번 행사를 연 합천평화의집은 “피폭당한 1세와 피폭당한 부모를 두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생 대를 이은 질환으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피폭 2세 환우의 애절한 삶의 이야기를 듣고 그 아픔을 공유하고자 한다”며 “법적, 제도적 지원책 마련과 지구촌에 더 이상 핵으로 인한 피해자가 없어야 함을 공유하고 핵없는 사회, 비핵평화를 위한 실천적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증언을 들었다”고 밝혔다.

원폭 투하 피해자 1세대인 김판근씨는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히로시마에 있는 회사에 열차를 타고 출근했던 그는 조회 시간에 맞추려고 열차에서 내려 뛰어 갔지만 지각해서 조회 확인자가 “쉬어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 사람이 B-29가 날아가는 장면을 보고 말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실제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었다”며 “하늘을 쳐다보고 조금 있으니 번개 치듯이 번쩍거렸다. 곧이어 새까맣게 어두워지면서 폭풍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고 했다.

지붕에서 떨어진 양철에 몸이 눌렸던 그는 “뒤에 있는 아이들한테 살려달라고 고함을 질러도 보이지 않았다”며 “조금 있으니 훤하게 보였다. 옆에 있는 사람들을 보니까 팔꿈치가 기둥에 눌려 빠지지 않았고, 팔이 부러지고 옷이 찢어지기도 했다”고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자신도 이마와 입술이 찢어져 피가 흘렀다고 한 김씨는 “한참 지나 히로시마 정거장 옆에 연병장이 있는데 나가 보니 트럭 2대가 있었고, 한 대는 건빵을 나눠주었고 다른 한 대는 치료를 해주는 차량이었는데 치료야 해봤자 ‘아까징끼'(소독약의 일본식 표현)를 바르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또 김씨는 “걸어서 집으로 가는데 짚신을 신었고, 여름이라 아스팔트가 뜨거워서 걸을 수 없었으며, 그래서 철길 옆을 걸었다”며 “집으로 가는 길에 보니 학교도 파손이 되어 있었고, 집은 유리창이 모두 파손되어 있었다. 친척들도 많이 다쳤다”고 술회했다.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도 길었다. 김판근씨는 “한 달 정도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에 시모노세끼로 가서 배를 타고 왔다. 처음에는 1주일 동안 배가 뜨지 않았다. 처음에는 작은 배를 타고 큰 배로 옮겨 탔다”라고 말했다.

한국원폭2세환우 문종주(68)씨도 증언을 통해 피폭 당한 부모로 인해 대를 이어 고통받고 있는 이야기를 했다.

▲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피해 1세대 김판근(93)씨가 5일 오후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강당에서 열린 “합천 비핵-평화대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 윤성효
▲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피해 1세대 김판근(93)씨가 5일 오후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강당에서 열린 “합천 비핵-평화대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 윤성효

일본 학자도 ‘1965년 한일협정 체제’ 비판

비핵-평화대회 참가자들은 한결같이 인류에게 핵이 없어져야 한다고 소원했다. 행사를 주최한 이남재 합천평화의집 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지난 날 한반도의 주권을 빼앗겨 나라 잃은 고통과 슬픔이 온 산하를 덮고 그 고통과 설움이 대를 이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 원장은 “강제징용과 원폭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의 아픔이 계속되고 있는 역사의 삶 속에서 위로와 격려의 손을 맞잡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 비핵·평화를 소망하는 울림을 열고자 한다”며 “이번 행사를 통해 원폭피해자 2세 등 후손 지원을 위한 ‘한국인원폭피해자 지원법’의 조속한 개정을 촉구하고, 기억과 교육의 장이 될 비핵평화공원 추진을 예산 핑계로 축소·유예하려는 현 정부의 처사를 규탄한다”고 말했다.

행사에는 일본인도 다수 참석했다. 기무라 코이치 한일반핵평화연대 일본측 대표는 “반핵과 탈원전 철학”을 강조했다. 그는 책 <이제 원전을 내려놓읍시다> 등을 펴내기도 했다.

정원술 한국원폭피해자협회장, 이윤희 고양YMCA 사무국장도 인사말을 통해 ‘비핵’을 다짐했다. “강제동원과 원폭”을 주제로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 지배와 식민지, 거기다가 아시아태평양전쟁이 없었다면 강제동원과 원폭은 없었을 것”이라며 “원폭 피해와 강제동원 문제는 안타깝게도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현재까지 계속되는 오늘의 문제이자 미래의 문제이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아야 하고 상처가 치유돼야 한다. 피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는 전쟁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인류 공통의 과제다”라고 말했다.

그는 “윤석열정부 이후 이 문제가 왜곡되고 뒤틀어지고 있다.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피해자들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전쟁에 가담한 피고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처음으로 승소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며 “이 판결을 계기로 피해자의 정의가 회복되고, 아직 소송을 내지 못한 피해자들에게 희망의 불빛이 되기를 기대했지만, 5년이 지난 현재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라고 했다.

이어 “일본정부와 기업이 사죄와 배상을 하기는커녕 피해자들이 더할 수 없는 모멸감, 굴욕감으로 더는 고개를 들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며 “대법원 판결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피해자들은 수 없는 도전과 좌절을 맛보았다. 대밥원 판결을 받기까지 국적은 대한민국이나 국가의 외교권 보호 밖에 있었고, 버려진 자식과 마찬가지 취급을 받았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윤석열정부 들어서 어렵게 성취한 대법원의 역사적 판결이 뒤집어지거나 무력화되고 있다. 윤석열정권은 한일관계 악화 원인을 일본이 아니라 문재인정권에 돌리는 한편, 한일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일본에 대한 외교정책 방향을 수정하게 된다”며 “그 방향이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를 한국, 미국, 일본의 동아시아 신냉전 체제의 제물로 삼는 노골적인 대일 저자세가 문제다”라고 했다.

▲ 5일 오후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강당에서 열린 “합천 비핵-평화대회”.이남재 합천평화의집 원장. ⓒ 윤성효
▲ 5일 오후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강당에서 열린 “합천 비핵-평화대회”. 기무라 코이치 목사(일한반핵평화연대 일본측 대표). ⓒ 윤성효

이국언 이사장은 “한국정부의 제3자 변제안은 일본이 져야 할 부담은 아무 것도 없고, 한마디로 일본을 위한 해법이다. 일본의 완벽한 승리다. 한국정부의 해법은 대법원 판결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고 사법주권을 포기한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해법이다”라고 말했다.

요시자와 후미토시 니가타국제정보대 교수는 “피폭자 피해의 특징으로 피폭에 의한 건강 피해가 세대를 이어 존재한다”며 “식민지 시기를 살아온 피해자 뿐만 아니라 그 친족 또는 후손 또한 피해자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1965년 체제’처럼 그 나라를 포위하고 계속 압박하는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한, 그 나라의 핵개발을 멈출 수 없다. 오히려 한국전쟁을 종식시키고 남북이 평화 공조하는 체제야말로 구축돼야 할 체제다”라고 했다.

이어 “‘1965년 체제’는 한일청구협정에 기초를 두고 일제의 식민지배 책임을 회피하고 일본 정부에 의한 ‘인도적 대응’만이 이뤄져 오면서 많은 피해자가 분단되어 왔다”며 “그 ‘인도적 대응’에서 배제된 자는 물론이지만, 그 대응을 받은 자조차도 인권 회복이 이루어졌을까”라고 덧붙였다.

그는 “식민지 지배 책임을 회피하는 ‘1965년 체제’에서는 모든 피해자의 인권회복도 이뤄지지 않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보유도 계속 될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생각한다면 식민지 지배 책임 추궁은 피해자 인권 회복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평화제체 구축으로도 이어지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요시자와 후미토시 교수는 “식민지 지배 책임 추궁이야말로 희생을 강요받는 자로 핵무기도 없는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에 조선인 피폭자를 비롯한 피해자들과 한일 양국 시민들이 기여할 최선의 수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토론이 이어졌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총리의 정상회담, 윤 대통령의 G7회의 참석 등에 대해 설명하면서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한국 원폭 피해자 위령비를 방문하면서 헌화만 하고 메시지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고통이나 책임,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 없었다”며 “또 G7회의를 히로시마에서 했는데, 그들이 진정 바라는 평화의 목적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세계에서 핵무기를 가장 많이 가진 나라들이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했다.

허광무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연구위원은 “한국인 원폭 피해에 대해 미국과 일본의 책임 인정과 이에 따른 적절한 조치가 당연히 필요하다”며 “그런데 당장 한국정부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일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손상용 뉴욕대학교 박사과정(정치학) 재학생은 “현재도 미국은 중국의 안보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 과거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1년) 체제에서 한국과 일본의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며 “이처럼 미국이 건축한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구조적으로 지속된다면 미래에도 한국인 원폭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보상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말했다.

미국의 ‘저위력 핵무기’ 개발을 설명한 그는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미국이 재래식 W88 핵탄두를 북한에 사용하면 민간인 200만~300만 명이 사망하고 방사능 낙진이 한국과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그러나 저위력 핵무기로 분류되는 B-61-12 핵탄두를 북한에 사용할 경우, 민간인 피해를 100명 미만으로 축소하고 방사능 낙진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 저위력 핵무기 개발을 기점으로 미국 정치학계에서는 핵무기 사용에 대한 여론의 수용성을 매우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이야기 마당은 이승무 박사의 사회로 진행되었고 한국어·일본어 통역으로 진행되었다.

이어 박신규 박사가 “합천원폭자료관과 구술증언집 발간”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마지막으로 같은 장소에서 “비핵-평화 문화 한마당”이 열렸다.

▲ 5일 오후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강당에서 열린 “합천 비핵-평화대회”. 정원술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장. ⓒ 윤성효
▲ 5일 오후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강당에서 열린 “합천 비핵-평화대회”.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 윤성효
▲ 5일 오후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강당에서 열린 “합천 비핵-평화대회”. 요시자와 후미토시 니가타국제정보대 교수. ⓒ 윤성효
▲ 5일 오후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강당에서 열린 “합천 비핵-평화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묵념하고 있다. ⓒ 윤성효
▲ 5일 오후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강당에서 열린 “합천 비핵-평화대회”. ⓒ 윤성효

윤성효 기자

<2023-08-05>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78년 전 원폭 피해자 “하늘에 번쩍하더니 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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