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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국 정부 ‘간토 조선인 학살 진상규명’ 일본에 요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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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전 도쿄 고려박물관장 아라이 가쓰히로

 

“100년이 지났으니 간토(관동) 대학살로 죽은 분들의 억울함이 지워졌을까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아요. 오히려 억울함은 커졌어요. 당시 조선인 학살 문제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해결된 게 하나도 없어요. 저는 한국 정부가 지금이라도 일본 정부에 당시 조선인 피학살자들이 어떻게 죽었고 또 어디에 매장되었는지를 포함해 학살의 진상을 밝히는 조사를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아라이 가쓰히로 전 도쿄 고려박물관장)

1923년 9월1일 일본 간토 지역에 진도 7.9 대지진이 일어나고 그 다음 날부터 닷새 동안 조선인 6천여명이 일본 군경과 자경단 손에 학살당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탄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에 흥분한 일본 민중이 학살을 주도했지만 일본 정부가 유언비어를 사실 확인 없이 조직적으로 유포하면서 학살을 키웠고 일본 군경도 직접 학살에 가담했다. 하지만 지금껏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단 한 차례도 진상 조사나 사과를 요구한 바 없다.

 
아라이 전 관장은 8년 전 센슈대 역사학과 교수직에서 은퇴하고 2017년부터 5년간 고려박물관장을 지냈다. 일본 식민지배 반성을 토대로 한·일 화해를 추구하고자 일본 시민들이 2001년에 세운 이 박물관은 올해 간토대지진 100년을 맞아 지난 7월5일부터 ‘간토대지진 100년 은폐된 조선인 학살’ 전시회를 열고 있다. 아라이 전 관장 등 11명이 실행위원으로 참여해 2년을 준비한 이 기획전은 올해 일본 내 여러 박물관의 ‘간토 100년 전시’ 중 유일하게 조선인 학살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그는 관장 재임 시절인 2018년에 ‘그림으로 본 조선인학살과 사회적 약자’라는 이름의 간토대지진 95년 전시도 열었다. 1880년대 일본의 자유민권운동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30여년 전 도쿄 국립역사민속박물관 조교수 시절부터 간토대학살의 진실을 알리는 데 힘을 쏟아왔다.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청파동 민족문제연구소(민문연)에서 김영환 민문연 대외협력실장 통역으로 아라이 전 관장을 줌으로 만났다.

민문연(이사장 함세웅, 소장 임헌영)은 고려박물관 전시와 연계해 지난 1일부터 10월29일까지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간토대학살 100년 은폐된 학살, 기억하는 시민들’ 전시를 열고 있다. 이 기획전도 올해 간토 조선인 학살 100년을 주제로 하는 국내 유일의 전시다.

고려박물관 전시가 조선인 학살의 진상 은폐와 일본 내 혐한 문제까지 다룬다면 식민지역사박물관은 당시 사진첩과 생존자 증언 및 일본 초등생들의 글을 통해 조선인 학살의 진상을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학살 현장을 목격한 일본 아이들 글을 보면 조선인 학살은 ‘조선인에 대한 징벌’ 또는 ‘자경단 놀이’로 학습된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의 전시에서 눈길을 끄는 두 권의 두루마리 그림(에마키)이 있다. 재작년 아라이 전 관장이 인터넷 경매로 산 그림으로 일본엔 원본, 한국엔 사본이 걸려 있다. 100년 전 간토대지진 현장을 생생하게 그렸는데, 합치면 가로 30m가 넘는 대작이다. 후쿠시마현 출신 화가이자 초등 교사 출신인 기코쿠가 1926년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 1권 후반부에는 일본의 군인과 경찰 그리고 자경단이 조선인을 학살하는 모습이 나온다. “무서운 유언비어는 극도로 흥분하고 있던 시민들의 신경을 건드렸고 무기를 들고 각자 방위하게 했다. …전대미문의 공황이었다. … 이 참화를 겪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건의 실상을) 잘 알리고 싶었다.” 화가가 그림에 남긴 글이다.

아라이 전 관장은 이 그림의 사료적 가치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림 속 조선인 학살 장면은 충격적입니다. 간토대지진을 그린 당시 그림이 몇 가지 있지만 이런 조선인 학살도는 매우 드물어요.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사료적 가치가 있어요.” 그는 “일본의 간토 대지진 연구자나 피학살자 위령제를 지내는 일본 시민들이 ‘조선인 학살도’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도 했다. “이번 전시에 하루 20~30여명이 고려박물관을 찾고 있어요. 크기가 편의점 수준에 불과한 고려박물관이 지금껏 한 전시 중 가장 많은 관람객이죠.”

‘간토 100년 기획전’ 7월5일부터
식민지역사박물관서도 연계 전시
조선인학살 주제 한·일 유일 전시
학살 묘사한 30m 두루마기 그림도
“조선인 학살 보여주는 드문 그림”

도쿄 국립역사민속박물관 재직 때
간토대지진 담당하며 그림 수집
“그림이 진상 알리는 데 효과적”

그의 간토대지진 그림 수집은 국립역사민속박물관 재직 시절로 올라간단다. “제가 그때 박물관에서 간토대지진 담당이었어요. 대지진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전달하고 싶었지만 자료가 없어 고생이 많았어요. 그때부터 그림을 모았죠.” 그가 수집한 그림에는 체포되어 죽창으로 위협받는 조선인을 그린 일본 초등생 그림도 있다. “대지진 6개월 뒤 교사가 수업 시간에 체험한 것을 그려보라고 한 것이죠. 글보다는 그림이 당시 학살의 진상을 알리는 데 훨씬 효과적이죠.”

‘간토 대학살 생존자’이기도 한 동요 ‘반달’ 작곡가 윤극영은 당시 유학생보다는 노동자 등 하층 조선인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희생되었다고 증언했다. 왜 일본 대지진에서 조선인들은 학살되었을까? “한 마디로 답을 하긴 어렵지만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 등 대지진까지 한국과 일본이 걸어온 길을 빼곤 설명하기 어려울 겁니다. 조선인이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유언비어 확산도 컸죠. 사실이 아닌 소문이 당시 신문에 실렸어요. 일본 민중들이 그런 유언비어에 속아 학살에 나선 거죠. 일본 군경도 가담했고요.”

앞으로 이런 비극적 사건이 더는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일본 정부가 간토 대학살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그 문제를 극복할 답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얼마 전 (일본) 국회에서 의원 두 명이 간토대학살 문제를 거론했지만 정부는 역시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않더군요. 얼마 전 현직 교사인 대학 제자들 몇을 만나 물었더니 학교에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고 해요. 당시 사회주의자들이 학살 당한 내용은 교과서에 나옵니다. 이런 상태에서 뭘 해야하나 생각할 때 답은 민간교류인 것 같습니다. 일·한 시민들의 활발한 교류로 두 나라 사이의 신뢰가 쌓이도록 해야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2023-08-10> 한겨레

☞기사원문: “한국 정부 ‘간토 조선인 학살 진상규명’ 일본에 요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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