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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나는 프락치가 됐고, 그들은 부역자가 됐다 [본헌터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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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논픽션 : 본헌터⑰] 잊혀진 아산의 거물
고향의 대학살 비극을 닮은, 끝내 재기하지 못한 어느 정치인의 이야기

*편집자 주: ‘본헌터’는 70여년 전 국가와 개인 사이에 벌어진 집단살해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이야기다. 아무데나 버려져 묻힌 이들과, 이들의 행방을 추적하며 사라진 기억을 찾아나선 이들이 주인공이다. 매주 2회, 월요일과 수요일 인터넷 한겨레에 올린다. 극단 신세계가 글을 읽어준다.

내 이름은 서용길 ······················· (중간생략) 나는 보선을 꺾고 서른 여섯에 제헌의회 국회의원이라는 영광을 얻었으나, 이후 필설로 다할 수 없는 형극의 길을 걷고 무너졌다. 비운의 정치인이자 잊힌 거물이 되었다. ························(중간생략)

나는 무소속 소장파 의원으로서 치열하게 정치 활동을 했다. 그 중 하나는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특별검찰관으로 ························(중간생략)반민특위는 1차로 적극적 친일 기업인 흥식을 검거했다.

이때 알았어야 했다. 승만과 친일세력은 이를 방해할 뿐 아니라 때려잡을 것임을. ························(중간생략) 1949년 6월6일 나는 을지로의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한 서울시경찰국 산하 중부경찰서 경찰관들에 의해 무장해제됐다. 6월26일엔 ‘외군(외국군) 철퇴 요청에 관한 긴급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이 문제가 되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됐다. 그리고 이른바 ‘국회 프락치 사건’에 엮인다. 연희전문 때부터 교회 유년부 주일학교 부장을 하며 기독교 신앙을 키워온 내가 남로당 프락치라니. 외국 군대 철수 주장은 북한의 지령이 아니라 민족독립의 원칙으로서 주장한 거였다. 프락치 사건으로 소장파 의원들이 궤멸되고 반민특위는 와해된다. ··············(중간생략)

(한겨레,  2023.8.21) 원문링크 나는 프락치가 됐고, 그들은 부역자가 됐다 [본헌터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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