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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 [기고]육사와 국방부 앞세운 친일극우세력의 역사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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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  2023.8.31) 기사원문보기 [기고]육사와 국방부 앞세운 친일극우세력의 역사 쿠데타

육군, 해군·공군과 달리 한동안 독립운동을 뿌리로 인정않아
‘흉상’으로 ‘반성’했던 육군, 尹정부 들어 독립운동사 지우기
궁극적으로 대통령이 동의…’뉴라이트’ 친일극우세력 인식 반영
홍범도는 시작…김구 등 독립운동가 차례차례 ‘적’ 규정될 것
육사·국방부 앞세운 ‘역사 쿠데타’, 국민이 막아내야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한국광복군 총사령 지청천 장군 후손)

지난주 목요일 저녁 육군사관학교(육사)가 교내에 세운 독립운동가 다섯 분의 흉상을 철거하려고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이가 없어서 그날 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리고 날이 밝자마자 국회 소통관에 가서 흉상 철거 시도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독립전쟁 영웅 흉상을 철거하고 대신에 친일군인 흉상을 세우려는 게 맞는다면 그건 대한민국 정부가 아니라 일본 정부의 총독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로부터 며칠 지난 뒤 상황을 보면 내 말이 틀린 게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

여론이 나빠지자 대통령실과 국방부는 소련공산당 입당 경력이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만 철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발 물러서는 시늉을 했지만 문제의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니다. 육사 교내에 흉상이 세워질 만한 독립운동가조차도 마음만 먹으면 모욕하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확인해주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군은 한동안 독립운동을 자신의 뿌리로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육군이 그랬다. 친일군인들이 정부 수립 이후 육군의 주도권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제1대부터 제10대에 이르기까지 역대 육군 참모총장이 모두 일본군 아니면 만주군 장교 출신이었다.

그런 가운데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해군과 공군이 자신의 뿌리가 독립운동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해군에서는 2008년부터 안중근함, 김좌진함, 윤봉길함, 유관순함, 홍범도함, 이범석함, 신돌석함, 도산안창호함 등 국산 잠수함에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붙이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잠수함에 독립운동가 이름을 붙이는 것은 조국의 독립을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해군의 의지를 반영한다.

공군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20년 미국에 세운 윌로우스 비행학교를 공군의 역사로 인정한 것이다. 지금도 공군본부 누리집에는 “대한민국 공군의 태동(胎動)은 1910~20년대 일제로부터 잃어버린 주권을 찾기 위해 국내·외에서 진행된 ‘독립운동’에서 그 맥(脈)을 찾을 수 있다”라고 적혀 있다.

공군사관학교 누리집에서도 “공군사관학교 반세기의 역사는 3·1운동에 힘입어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무장 독립투쟁의 기본정신을 계승”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공군사관학교 안에는 독립운동가의 이름이나 호를 딴 안중근홀, 단재(신채호)관, 계원(노백린)관, 백범(김구)관, 도산(안창호)관과 같은 건물도 여럿 있다. 공군은 공식적으로 독립운동의 역사를 공군의 역사로 포함시킨 것이다.

2018년 3월 1일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 제막식. 연합뉴스

독립운동사를 애써 외면하던 육군이 뒤늦게나마 반성하면서 한 첫 번째 일이 2018년 육사 안에 독립전쟁 영웅 흉상을 세우는 것이었다. 이어 같은 해 9월에는 육군이 뮤지컬 ‘신흥무관학교’를 제작해 무대에 올렸다. 2011년 6월 만주에서 문을 연 독립군 간부 양성기관 신흥무관학교가 육사 더 나아가서는 대한민국 육군의 뿌리라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2020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펴낸 『국방 100년의 역사(1919~2018)』에서 “대한민국 국군은 의병, 독립군, 광복군의 정신과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규정함으로써 이제 독립운동사가 국군의 역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확고하게 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상황이 다시 바뀌었다. 윤석열정부가 들어서자 육사와 국방부가 독립운동사 지우기에 나선 것이다. 독립전쟁 영웅의 흉상을 철거하고 친일군인 백선엽 흉상 설치를 검토하겠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 사태의 발단은 육군이 독립운동의 맥을 이었다는 사실을 끝내 부정하려던 육사 출신 몇몇 예비역 장성들의 문제제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독립운동사를 지우려는 황당한 생각에 육사 교장, 국방부장관, 대통령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대통령이 동의함으로써 이 사단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게 본받아야 할 대상은 독립전쟁 지도자가 아니라 친일군인인 모양이다. 육사 생도들이 유사시에 민족과 나라를 위해 싸우지 말고 힘이 센 편에 서서 필요하다면 민족과 나라를 배반해도 된다고 가르치겠다는 꼴이다.

독립운동가는 모독하고 친일군인을 떠받들려는 작태는 단지 일부 인사의 무지와 몰상식 탓만이 아니다. 여기에는 근본적으로 독립운동과 친일, 더 나아가서는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 자체를 극우적 사시로 바라보는, 그래서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온, ‘뉴라이트’라고도 불리는 친일극우세력의 인식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헌법 전문에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이 적혀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 문구가 “대한민국이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들의 공헌과 희생을 바탕으로 이룩된 것임을 선언한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제헌헌법 전문에도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했다고 분명히 적혀 있다.

결국 윤석열정부의 이번 계획은 흉상 철거를 통해 독립운동사를 대한민국에서 분리시키려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홍범도 장군은 명분일 뿐이다. 박정희정부 시절이던 1960년대 후반에 이미 확립된 ‘의병-임시정부-독립군-한국광복군-국군’으로 이어지는 독립전쟁의 역사성을 아예 지워버리려는 것이다.

대통령실과 국방부는 홍범도 장군 흉상이 육사에 있어서는 안 될 이유로 ‘주적’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그런데 육사의 교육목표는 “국가방위에 헌신할 수 있는 육군의 정예장교 육성”이다. 공산주의는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더욱이 홍범도 장군이 입당했다고 하는 소련공산당은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펴낸 국방부의 『국방백서』가 보수정권의 입맛에 맞추어 북한을 ‘우리의 적’으로 규정했지만 홍범도 장군은 북한 정권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런데도 홍범도 장군이 국군의 ‘주적’인 것처럼 몰다 보니 심지어는 묘소를 파헤쳐 북한으로 보내버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황당하다.

더 큰 문제는 홍범도 장군이 시작일 뿐이라는 데 있다. 홍범도 찍어내기에 성공하면 김구 선생을 비롯해 친일극우세력이 꺼리는 독립운동가들이 차례차례 ‘적’으로 소환될 것이 뻔하다. 이미 대한민국에서 역사적 평가가 끝난 인물에게 철지난 색깔론을 앞세워 ‘빨갱이’ 낙인을 찍음으로써 항일의 의미를 희석시키려는 것은 육사와 국방부를 앞세운 역사 쿠데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니 막아야 한다. 모든 국민이 두 눈을 부릅뜨고 21세기 독립군이 되어 역사 쿠데타를 막아내야 한다.

기고: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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