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의 히,스토리] 유엔에 ‘일본이 위안부 피해 공식사과’ 의견서 제출… 문제 왜곡해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된 우리 정부의 ‘위안부’ 문제 의견서는 읽는 사람에게 의아함을 안겨준다. 이 문제의 실태를 왜곡되게 서술했을 뿐 아니라 한일 두 정부의 관계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의 대리인이나 지방정부인가 하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
9월 11일부터 10월 6일까지 열리는 유엔 인권이사회 제54차 세션에, ‘진실·정의·배상 및 재발 방지 증진 특별보고관’인 파비안 살비올리의 한국 방문 조사보고서가 제출됐다. 보고서 서문에 의하면, 이 조사의 목적은 “20세기 대부분에 걸쳐 이 나라를 휩쓴 점령, 전쟁, 독재정권 기간의 심각한 인권침해 및 인도주의 법률 위반과 관련해 대한민국 정부가 진실·정의·배상·추모 및 재발 방지 보장 분야에서 채택한 조치들을 평가하는 것”이다.
이 보고서와 더불어, ‘진실, 정의, 배상 및 재발방지에 관한 특별보고관의 보고서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 의견서’라는 우리 정부의 의견서도 함께 제출됐다. 영문으로 작성된 이 의견서는 ’54차 유엔 인권이사회 한국 NGO대표단’의 13일 자 보도자료와 함께 공개됐다. 이 NGO 대표단에는 4·9통일평화재단,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정의기억연대, 천주교 인권위원회가 참여하고 있다.
NGO 대표단이 배포한 ‘진실, 정의, 배상 및 재발방지에 관한 특별보고관의 보고서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 의견서’ 번역본에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이 명료하게 서술돼 있다. 한국 정부는 “2015년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를 양국의 공식 합의로 인정”한다(The Korean government is working to “restore honor and dignity of the victims and heal their psychological wounds,” recognizing the 2015 Agreement between Korea and Japan on the issue of “comfort women” as the official agreement between the two countries.)는 입장이 명확히 천명돼 있다.
그런 뒤 “공식 사과(Official Apology)”라는 항목이 나온다.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사과 문제가 어떻게 처리됐는지를 설명하는 항목이다. 이 항목의 소제목으로 “공식 사과”라는 표현이 사용됐다. 그런데 이 항목의 본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1993년에 고노 요헤이 일본 내각관방부장관은 일본군이 위안소 설립 및 운영과 위안부 이송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사실을 공개 사과했습니다.(Japanese Cabinet Secretary Yohei Kono publicly apologized in 1993 for the Japanese military’s direct and indirect involvement in the establishment and management of the comfort stations and the transfer of comfort women.)”
소제목에는 “공식 사과”로 표기돼 있지만, 그 아래 본문에는 “공개 사과”로 적혀 있다. 1993년 8월 4일 수요일에 일본 정부 대변인이 위안부 문제에 관한 담화를 발표한 사실이 ‘공개 사과’라는 표현으로 설명된 것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이 은밀한 데서 아무도 모르게 사과 담화를 발표할 리는 없으므로, 이런 사과는 당연히 ‘공개 사과’다. 하지만 공개 사과가 반드시 공식 사과는 아니다. 공개 사과와 공식 사과의 경계선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 정부가 두 가지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정부가 공개 사과와 공식 사과를 별개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은 위 항목의 끝 문장에 나타난다.
“한편,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가 공식 사과를 하고 법적 책임을 받아들일 것을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습니다.(Meanwhile, the victims continue to demand that the Japanese government issue an official apology and accept legal responsibility.)”
소제목으로 사용된 “공식 사과”는 가해자가 피해자들에게 그런 사과를 한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소제목 밑의 본문에는 일본 정부가 “공개 사과”를 했다고 표기됐다. 그런 뒤 “공식 사과”는 피해자들의 요구 사항이라고 기술돼 있다. 소제목과 내용을 달리해 읽는 이들에게 착오를 줄 여지가 크다.
위 의견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대한민국의 입장을 밝히는 문서다.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관해 어떤 일을 해왔는지, 일본 정부에 대해서는 무엇을 촉구했는지, 일본 정부와 무엇을 협의했는지 등등이 설명돼야 할 문서다.
그런데 그런 내용은 나오지 않고, 일본 정부가 공식 사과를 한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표현이 나왔다. 피해국인 한국 정부가 작성했다고 믿기지 않는 문서다.
의견서에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인정했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의 담화가 소개된 뒤 “그는 많은 경우에 위안부들이 그 의사에 반해 회유, 강압 및 기타 수단을 통해 모집됐으며, 행정이나 군의 관계자들이 때때로 모집에 직접 관여했음을 인정했다”는 문장이 나온다.
고노 담화 당시의 일본 정부가 위안부 강제 동원을 시인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입장은 스가 요시히데 내각 때인 2021년 4월 27일 일본 ‘각의’ 결정에 의해 상당 부분 훼손됐다.
이날 일본 정부는 고노 담화를 정면으로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이를 손상시키는 각료회의 결정을 채택했다. 이 내각 결정의 핵심은 ‘강제징용이나 종군위안부 같은 용어는 강제성이 함축돼 있어서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노동자나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인하는 공식 입장을 채택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 정부의 조치를 설명할 때는 고노 담화뿐 아니라 2021년 4월 ‘각의’ 결정도 함께 소개할 필요가 있다. 일본 정부의 입장에 변화가 있었음을 그런 방식으로 명확히 표시해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 의견서에는 그것이 반영돼 있지 않다.
특별보고관이 우려 드러낸 2015년 위안부합의… 정작 우리 정부는 ‘존중’
위 의견서에는 작성 주체가 한국 정부인지 일본 정부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부분도 있다. ‘공식 사과’ 항목에서는 일본 정부의 고노 담화가 소개됐다. 그런데 바로 밑의 ‘보상’ 항목에서는 한국 여성가족부의 피해자 지원 활동이 설명돼 있다.
사과 항목에서는 일본 정부가 주체가 되고, 보상 항목에서는 한국 정부가 주체가 돼 있다. 훗날 이 문서를 검토하게 될 미래세대가 2023년 당시에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궁금해하도록 만드는 대목이다.
또 ‘보상’ 항목에 적힌 내용은 보상에 관한 것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피해자에게 지급되는 생활안정지원금과 돌봄 비용에 관한 것일 뿐, 피해 자체와 관련된 배상이나 보상에 관한 사항은 아니다. 불법성을 전제로 하는 배상이 이뤄진 적이 없는데도, 우리 정부 의견서에서는 그런 게 이뤄진 것처럼 서술돼 있다. 우리 정부가 앞장서서 위안부 문제의 실상을 왜곡하는 셈이다.
우리 정부는 2015년 위안부합의를 존중한다고 밝혔지만, 특별보고관인 파비안 살비올리는 위 보고서에서 위안부 합의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살비올리 특별보고관은 “유엔 인권 메커니즘은 이 합의가 국제적인 인권 기준을 준수하지 않은 것에 대해 우려를 제기했으며, 피해자의 관점이 고려돼야 한다고 촉구했다(United Nations human rights mechanisms raised concerns about the agreement’s lack of compliance with international human rights standards and called for victims’ views to be considered)”는 점을 밝혔다. 피해배상을 빠트렸을 뿐 아니라 공식 사과가 수반되지 않은 위안부 합의로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유엔 특별보고관이 ‘위안부 합의로는 안 된다’는 판단을 내린 상태에서, 우리 정부는 ‘위안부 합의를 존중한다’며 공식 사과와 보상이 이뤄진 것처럼 의견서를 썼다. 이는 우리 정부가 살비올리 특별보고관의 조사보고서에 대해 사실상 ‘반박문’을 제출했음을 의미한다.
김종성 기자
<2023-09-15>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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