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23.09.21) 기사원문 보기 ☞ “일본 산업화 유산, ‘강제동원 삭제’ 안 돼”
일본 근대산업유산 특별전 ‘세계유산에서 기억해야 할 강제동원의 역사’
2015년에 ‘8개 현 23개 시설’ 등재
유네스코, 전체 역사 알도록 권고
일 정부, 약속하고도 지키지 않아
등재 신청 중인 사도광산에 촉각
“일본의 산업유산 현장은 왜곡되고 역사는 사라졌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은평구 녹번동 너나들이센터 기획전시실에서 강제동원 및 일본 근대산업유산 특별전 ‘세계유산에서 기억해야 할 강제동원의 역사’ 전시회(9월 5~24일)를 열고 있다. 14일 전시 현장에서 만난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식민지역사박물관 학예실장은 “일본이 산업화 유산 속에서 산업 발전의 밝은 면만 알리고 전쟁을 위해 강제동원한 사실을 외면하거나 삭제하면 안 된다”며 “그래서 우리는 강제동원 역사를 증언하는 피해자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이번 전시는 201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현장을 소개하며, 일본 정부가 의도적으로 배제한 침략 전쟁, 식민 지배, 강제동원의 역사를 알리고 있다.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은 1850년대부터 1910년까지 철강·조선·석탄산업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모두 8개 현 11개 도시에 흩어져 있는 23개 시설이다. 일본정부는 유산의 가치를 ‘서구와 기술 교류를 통해 비서구 국가에서 달성한 최초의 산업화 유산’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정작 강제노동의 역사는 쏙 빠져있다. 한국인과 중국인, 연합군 포로들을 강제노동시켰던 현장은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에 있는 야하타제철소, 오무타시의 미쓰이 미이케탄광,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의 미쓰비시 나가사키조선소, 다카시마탄광, 하시마탄광(군함도) 등 5곳이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노력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등재 당시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해설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사토 구니 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한국인과 다른 국민들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노역한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조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학예실장은 “일본 공식 외교 대표가 국제무대에서 강제 노동을 인정한 최초이자 유일한 발언”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2021년 6월 일반에 공개된 도쿄 산업유산정보센터는 오히려 한국인의 강제노동 사실을 부정하는 내용의 증언과 자료만 전시돼 큰 비판을 받았습니다.” 세계유산 전문가로 꾸려진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공동조사단은 각 시설의 전체 역사 기술이 불충분하다고 결론 내렸다. 202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이 후속 조처를 이행하지 않은 데 강한 유감을 표명하고 충실한 이행을 촉구하는 결정문을 채택했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을 통해 식산흥업과 부국강병을 내세우며 근대화를 추진했다. 밖으로는 류큐, 대만, 조선을 침략했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등 제국주의 전쟁을 도발했다. 야하타제철소는 한반도를 전쟁터로 삼은 청일전쟁 배상금으로 지었다. 당시 청이 지급한 배상금 2억량은 일본의 4년치 국가 예산과 맞먹는 큰 금액이었다. 김 학예실장은 “야하타제철소는 일본의 ‘산업혁명’이 주변국 침략에 성공한 결과로 얻은 것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며 “아시아를 향한 침략의 어두운 역사가 시작됐음을 보여주는 유산”이라고 했다.
“일본 정부는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을 1910년까지로 한정해 강제동원이라는 어두운 역사를 의도적으로 배제했습니다.” 일제는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인을 강제동원해 노동을 시켰고, 중국인과 연합군 포로도 강제동원했다. 조선인은 야하타제철소 약 4천 명, 미쓰비시 나가사키조선소 약 6천 명, 다카시마탄광과 하시마탄광 약 4천 명, 미이케탄광 약 9264명 등이 동원됐다.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에 등재된 5곳에서만 약 2만3264명이나 된다. 중국인과 연합군 포로들도 강제노동을 시켰다. 김 학예실장은 “일본 정부가 산업유산을 아시아 침략 전쟁, 식민지 지배 역사와 연관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그런 내용을 강조해 사실을 얘기하지 않아 발생하는 역사 왜곡을 비판하는 것”이라고 했다.
“군함도로 알려진 하시마탄광은 1910년 이전에 만든 것은 해안 방파제 일부뿐이죠. 엘리베이터가 있는 고층 아파트는 1916년 이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누리집에 들어가면 하시마 전체가 세계유산인 양 나와 있죠.” 김 학예실장은 “해안 방파제 일부만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있는데, 마치 하시마 시설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 돼버린 셈”이라고 비판했다.
“나가사키에는 일본 시민단체가 만든 강제동원 노동자들을 위한 추모 역사관이 있습니다.” 김 학예실장은 “희생자를 기리는 시설은 한 곳도 세계유산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대신 아시아 침략의 ‘산실’인 요시다 쇼인의 사설 학당은 23곳 중 한 곳으로 포함돼 있다”고 비판했다.
“그런 식의 여러 가지 왜곡, 은폐, 의도적 삭제가 곳곳에 있어요.” 김 학예실장은 “일본이 자신이 부각하고 싶은 것만 설명하는 것은 좋은데, 분명히 전쟁에 기여한 부정적 역사 배경과 희생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 역사를 함께 설명해야 한다”고 했다.
“사도광산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2023년 1월 한국인의 강제노동을 부정한 채 니가타현 사도섬에 있는 사도광산(금광)에 대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서를 제출했다. 세계유산 대상 시기를 에도시대로 한정했다. 2022년 발간된 한일시민공동조사보고서 ‘사도광산과 조선인 강제노동’에는 한국인들이 강제동원돼 엄격한 감시와 민족 차별 속에서 중노동을 한 사실이 잘 드러나 있다. 김 학예실장은 “사도광산은 식민지 한국인들을 강제노동시킨 아픈 역사를 지닌 곳”이라며 “1942년 2월부터 충청남도 부여 등에서 1500명이 넘는 한국인이 강제동원됐다”고 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세계유산 등재 취소가 아니라, 이 시설들이 전쟁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알리고 세계인과 공유하면 좋겠다는 것이죠.” 김 학예실장은 “궁극적으로 식민지를 겪은 나라가 어떻게 인권과 과거역사를 회복할지에 대한 관점으로 세계유산을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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