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활동 보고]
유엔 인권이사회에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다
― 2023년 10월 20일 유엔인권이사회 참가기
김영환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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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차 유엔인권이사회(2023년 9월 11일~10월 13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본부)에서 파비안 살비올리(Fabian Salvioli) 유엔 진실, 정의, 배상 및 재발방지 증진에 관한 특별보고관(Special Rapporteur on the promotion of truth, justice, reparation and guarantees of non-recurrence, 아래‘진실정의 특보’)은 한국의 과거청산에 대한 공식 보고서를 발표했다.
유엔 진실정의 특보는 2022년 6월 8일부터 14일까지 대한민국을 공식 방문하여 외교부, 법무부, 행정안전부, 여성가족부, 국방부, 교육부, 경찰청, 국가기록원, 국가인권위원회, 진실화해위원회,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위원회,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위원회, 국회의원 및 사법부 관계자들과 면담했다. 또한, 국가폭력 피해자와 그 가족, 시민사회단체 대표, 인권활동가, 연구자, 전문가 등을 만나 국가폭력에 의한 한국 사회 인권침해 실태를 확인하고, 국제인권법에 비추어 피해자들의 진실, 정의, 배상 및 재발방지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한국 정부의 이행조치를 조사했다. 이번에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발표된 진실정의 특보의 보고서는 한국의 과거청산에 관한 유엔의 첫 번째 공식 보고서라는 점에서 대단히 큰 의미가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22년 진실정의 특보의 한국 공식방문 당시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과 함께 진실정의 특보를 면담하여 2018년 강제동원 대법원판결의 이행, 야스쿠니무단합사문제 등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을 위한 활동을 소개하고 이 문제의 해결을 호소했으며, 관련 시민단체와 함께 발간한 ‘한국의 과거사 청산 시민사회 보고서’에서 강제동원 부분을 작성하여 진실정의 특보에게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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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는 진실정의 특보의 공식보고서 발표에 맞추어 한국 시민사회 대표단의 일원으로 제54차 유엔인권이사회에 참가했다. 한국 시민사회 대표단은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하여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천주교인권위원회, 4.9통일평화재단 등 9명으로 구성되었다. 대표단은 9월 14일 스위스 제네바의 바렘베 컨퍼런스 센터(Varembé Conference Centre)에서 부대행사로 <한국의 전환기적 정의 : 진실과 정의를 위한 여정> 국제회의를 개최하고, 유엔인권이사회에서 NGO 대표단의 발언을 통해 아직도 끝나지 않은 한국의 과거청산 과제들을 소개하고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협조를 호소했다.
파비앙 살비올리 진실정의 특보는 9월 13일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대한민국 방문조사 결과보고서를 통해 피해자들이 고령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한국의 과거청산이 국가의 시급한 과제이자 의무임을 강조했다. 또한, 과거청산을 위한 통합적인 법률 체계가 존재하지 않고, 배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한국 상황에 대해 우려를 밝혔다. 아울러 진실정의 특보는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와 과거사 문제에 관련된 제3국에 일본군 성노예제에 관한 ‘2015 한일합의’를 개정할 것, 모든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할 것,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것, 관련 가해자들의 책임을 규명할 것 등 30여 건의 권고사항을 발표하고 이행을 촉구했다.
진실정의 특보의 발표에 이어 한국 정부를 대표하여 윤성덕 주제네바 대한민국대표부 대사가 특별보고관의 발표에 대해 답변했다. 한국 정부는 ‘2015 한일합의’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진실정의 특보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2015 한일합의’를 “양국 간 공식 합의로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심리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과 공식 사죄, 배상을 줄기차게 요구해온 피해자들의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국제 인권기준에도 부합하지 않아 이미 사망 선고를 받은 ‘2015 한일합의’를 또다시 되살리려는 한국 정부의 반역사적이며, 반인권적인 태도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또한, 한국 정부는 진실정의 특보 보고서에 대한 공식 답변 보고서에서 지난 5월 7일 기시다 총리가 서울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개인적인 입장이라며 발표한 ‘마음이 아프다.’는 발언을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 항목에 언급하여 유엔에 보고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기시다 총리의 발언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가 아니며 기시다 총리의 개인적인 입장이 라는 점을 명확히 밝힌 바가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유엔에 제출한 공식 보고서를 통해 이를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로 인정한 것이다. 가해자는 사과하지 않았다는데, 피해자는 사과를 받았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다시 재연된 것이다. 이는 ‘2015 한일합의’를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에 대한 ‘최종적 불가역적인 해결’이라고 강변해온 일본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이며, ‘제3자 변제’로 강제동원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처럼 착각하는 윤석열 정부의 대일 굴욕외교를 그대로 반영한 또 하나의 ‘외교적 참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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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의 발표 다음 날인 9월 14일 민족문제연구소와 정의기억연대는 보편적 인권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유엔인권이사회 현장에서 강제동원 피해자와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의 인권과 존엄을 다시 한번 짓밟고,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는 윤석열 정부를 강력히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제네바 현지에서 발표했다.
같은 날 시민사회 대표단은 바렘베 컨퍼런스센터에서 진실정의 특보를 초청하여 부대행사 〈한국의 전환기적 정의: 진실과 정의를 위한 여정〉 국제회의를 개최했다. 국제회의에서 진실정의특보는 진실, 정의, 배상 및 재발방지의 증진이 국제인권법에 따른 국가의 의무임을 확인했다. 또한, 진실정의 특보는 “단 한 건의 비극도,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인정되지 않고,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하며, 앞으로도 한국의 과거사 청산을 위해 기꺼이 협력하겠다고 적극적인 관심을 밝혔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음을 강조하며, 최근 수요시위 현장에서 발생하는 2차 가해, 혐오 표현 등의 문제를 지적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평화의 소녀상 설치 운동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집요한 방해와 철거요구를 비판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한국 정부가 2018년 강제동원 대법원판결을 무력화하기 위해 지난 3월에 발표한 제3자 변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한국 정부가 피해자들의 인권을 다시 한번 짓밟으며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는 공탁 시도의 문제점을 강력하게 비판하였으며, 한국시민사회가 제3자 변제안을 거부하고 있는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뜻에서 진행되고 있는 ‘역사정의시민모금’의 성과를 소개했다.
권태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 위원장은 한국전쟁과 군부독재 시기의과거사 인권침해 피해자의 사례를 소개하고 국가가 이제라도 진상규명과 피해자의 권리회복을 위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서채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부소장은 피해자 중심 접근의 부재, 불처벌의 문제 등 과거사 관련 현행법 제도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10.29 이태원 참사 등 중대한 인권침해 사안에서도 불처벌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는 윤석열 정부가 마치 과거청산의 과제를 잘 해결하고 있는 것처럼 밝힌 전날 한국 정부의 발표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며, 한국전쟁 민간인학살피해자들의 등급을 나누고, 국정원 출신 인사를 고위 간부를 채용한 진실화해위원회의 실태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또한, 의문사 사건의 진실규명과 삼청교육대, 강제징집 녹화사업, 집단수용시설 등에 벌어진 인권침해에 대한 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해외입양 과정에서 인권침해나 불법행위가 있었는지 철저하게 조사하고 진실규명 이전이라도 정부가 해외입양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같은 날 열린 제54차 유엔인권이사회 넷째 날 회의에서는 한국 시민사회를 대표하여 류다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팀장과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발언했다. 류다솔 팀장은 진실정의 특보의 이번 보고서가 대한민국의 전환기 정의 실현의무 이행 여부에 대해 국제인권규범의 기준에서 검토한 최초의 포괄적 문서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며 한국전쟁 피해자를 등급화하고 차별하는 등 피해자를 부정하는 진실화해위원회를 비판하고 한국 정부가 진실정의 특보의 권고를 모두 수용할 것과 피해자들의 조속한 권리구제를 요청했다. 이나영 이사장은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와 강제동원 가해 기업의 사죄와 정당한 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또한, 특별보고관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2015년 한일합의’를 공식 합의라며 피해자를 무시하고 일본 정부를 대변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를 강력히 비판했다. 나아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제3자 변제가 가해자인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의 책임을 면제하는 부당한 조치임을 지적했다.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한 한국 시민사회 대표단은 앞으로도 진실정의 특별보고관이 권고한 과거청산 과제의 이행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함께 벌여나갈 것을 결의했으며, 제네바 유엔본부 앞에서 강제동원,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고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를 규탄하는 1인 시위를 전개했다. 또한, 제네바 유엔본부에서 근무하는 한국 전문가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과거청산 과제를 국제사회에 효과적으로 제기하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번 제54회 인권이사회 대응 활동을 통해 유엔 인권기구에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의미 있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앞으로도 민족문제연구소는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고자 시도하는 윤석열 정부,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범죄를 부정하는 일본 정부에 맞서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이 문제의 해결을 호소하기 위한 국제연대 활동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