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에서 열린 3.1운동 기념식… 민건(民建)의 탄생과 재독 한인사회
3.1운동 55주년 행사가 열리던 1974년 3월1일, 서독 수도 본(Bonn)의 뮌스터 광장에 울려 퍼진 함성, “박정희 독재 타도하고 민주사회 건설하자!” 비록 몸은 독일에 있으나 박정희 유신독재로 고통받는 조국을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한다는 각오로 민주화의 깃발을 든 재독 교포 55명. 해외 동포 민주화 운동의 선구가 된 ‘민주사회건설협의회'(Forum für die Demokratie Koreas, 약칭 ‘민건’)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파독 광부, 간호사, 유학생 등 1만여 명으로 이루어진 1970년대 재독 한인사회는 조국의 민주화를 염원하는 마음은 한결같았으나 사회운동단체를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유럽을 뒤덮은 민주화와 파시즘 청산 운동에도 불구하고 유학생과 교포, 국내 인사 등 194명이 간첩 협의로 체포되어 가혹한 고초를 당한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사건’으로 재독 한인 사회는 꽁꽁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음악인 윤이상, 화가 이응로도 이 조작 사건에 연루되었습니다.
파독 광부 청년 임희길과 민건의 청년들
민건을 만든 55명 중 절반에 가까운 21명은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 임희길 민건동지회 대표도 그 중 한 명이었습니다. 1966년 25세의 나이에 독일 아헨으로 건너왔으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건 지하 1km 수직 갱도에 세워질 40~50kg의 동발들. 막장 인생의 끝에서 인간답게 사는 세상의 의미를 깨닫고 그토록 떠나오고 싶어 했던 조국의 민주화도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파독 광부 청년 임희길과 민건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민건 창립 회원 중 과반수는 30대 청년들. 그들은 젊음의 열정으로 조국의 민주화를 도왔습니다. 유신정권이 1975년 동아일보를 탄압하자, 자금과 인맥을 총동원해 광고와 구독 운동을 전개했고 김대중 납치사건과 같은 무도한 공작에 맞서 규탄대회를 열었으며 ‘광장’ ‘민주한국’ 등 신문을 한글과 독일어로 제작해 배포했습니다. 부당해고와 강제추방에 맞서 재독 교포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도 독일 시민들과 연대해 민주주의 지킴이로 성장해 나갔습니다.
전두환 군사쿠데타와 광주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와 쾰른
박정희 정권 몰락의 기쁨도 잠시, 조국에선 다시 군사 쿠데타와 참혹한 학살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힌츠페터 등 독일 기자들이 낱낱이 기록한 5.18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리고 전두환 정권을 규탄하는 데 민건이 중심에 있었습니다. 민건 회원들은 자기 지역의 교포와 유학생들은 물론 현지 시민들과 함께 ‘투쟁하는 광주시민과 연대하는 집회’를 열고 단식투쟁, 규탄시위, 영상 시청 및 배포에도 앞장 섰습니다.
프랑크푸르트 지역 민건 회원들은 시청 앞 뢰머광장(Römer Platz)의 알테 니콜라이 교회(Alte Nikolaikirche)에서 독일 시민들과 함께 5.18영상을 시청하고 단식투쟁을 벌였습니다. 쾰른지역 회원들도 1980년 8월 ‘광복절 기념 및 광주시민과 연대하는 궐기대회’를 열었습니다. 11월 프랑크푸르트에 모인 이들은 ‘전두환군사독재타도’를 위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며 조국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독재 정권의 집요한 탄압, 민건과 한국의 민주화
민건 출범 전부터 서독의 한국 공관과 정보기관은 민건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사찰했고 구직과 직장 생활을 방해했으며 고국의 가족들까지도 감시하고 위협했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민건을 ‘민족민주통일해외한국인연합'(한민련)의 전위조직인 ‘재독불순조직’으로 규정하고 탄압했는데 한민련은 1977년 8월 일본에서 결성된 것으로 완전한 날조였습니다.
민건은 창립회원 55명과 전체 회원 100여 명의 작은 단체였지만 1974년 서독 수도 본의 창립 퍼레이드에서 시작된 그들의 날갯짓은 프랑크푸르트 뢰머 광장의 유신독재, 민주노조 탄압 규탄시위로, 베를린 쿠담 거리와 쾰른 광장에서의 전두환 반대 시위로, 그리고 귀국한 회원들이 1987년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출범에 일조하며 우리나라 민주화의 큰 바람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독일 시민과 한인 2세들에게 우리 역사와 문화를 알리며 이들을 한국 민주주의의 든든한 지원자로 만드는 데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민건 창립 반세기를 기억하며
민주화를 이룩한지 35년여, 민건 회원들은 하나 둘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져가고 이제 민건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도 찾기 힘듭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해외 동포들의 민주화 운동을 돌아보고 그 가치와 역할을 살펴 그들의 헌신과 열정, 희생에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요.
민주주의 퇴행의 위기 속에 있는 지금, 민건 회원들을 모시고 한국에서 민건 창립 50주년 행사를 갖고자 합니다. 뜻 있는 시민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