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유적 답사기]
김원봉 루트를 가다
이영철 연구소 후원회원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현재 중국 영토내 독립군의 투쟁사가 이루어진 곳으로 역사탐방기행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내심 두근거리고 혹시 지원이 늦지 않았을까 하는 조바심이 있었지만 다행히 마감 전이어서 아주 기뻤다. 약산 김원봉과 조선의용대에 대해 깊이 있게 알고 있지는 않았고 인터넷 등의 정보만 간간히 듣고 있는 정도였다. 약산 김원봉에 관한 연구를 하신 분도 참여한다고 하여 아주 큰 기대에 들떠 있었다. 역사란 문자로 남겨진 사실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자리, 비록 그때와 같을 수만 없지만 지형과 환경을 몸소 겪어보는 것도 당시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다.
첫날 남경대학살기념관과 남경대학교 민혁당 창립장소에 가기로 했지만 인천공항 보안 검색부터 끊임없는 기다림과 항공기의 이륙 지연 등의 사유로 말미암아 남경 도착시간이 예정보다 많이 늦어져 남경대학살기념관은 입장 제한시간에 5분 지각했고 남경대학교는 사전 출입허가를 받지 않아 입장불가 등으로 첫날부터 모든 일이 엉망진창이 되어갔다. 저녁은 공자와 관련된 부자묘 옛 거리(중국 AAAAA 관광지)에서 잠시 쉬어가며 김원봉과 의열단이 관련된 장소인 교부영 거리를 스치듯 별다른 감흥 없이 걸었다.
두 번째 날은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훈련소였던 천녕사(옛 도교 사원)를 찾았다. 이튿날도 순탄하지 않았다. 진입로 초입에는 쇠창살문에 가로막혀 옆 건물 배수로를 따라 돌아서 2, 300여 미터를 올라가자 폐허가 된 사원터와 건물잔해가 나타났다. 독립투사들이 머물던 역사적인 장소가 점차 흔적조차 보기 힘들 정도로 사라진 현장을 보고 지금 이곳을 찾는 내 발걸음이 무겁고 더뎠다. 90여 년 전 당시 이곳에 학교를 세우고 또 중국땅에서 훈련 받고 독립에 헌신했던 선인들의 마음을 잠시 헤아려본다.
이어서 김원봉과 민족혁명당이 거주했다는 호가화원 내 묘오율원(妙悟律院)과 이연선림(怡然禪林)이라는 사원을 찾았다. 지금은 호가화원 부지 끝자락에 고와관사(古瓦官寺)라는 천태종 절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의 발자취는 세월 속에 바람처럼 사라진 것 같다.
남경에서 기차를 타고 3시간을 달려가자 무한 한구역(漢口站)의 어둠이 우리를 반겼다. 무한 시내 Dorsett Hotel에 여장을 풀고 잠시 야경을 보며 남경에서의 고난이 무한에서도 이어질지 몹시 걱정되었다.
셋째 날, 조선민족전선연맹본부가 있었다는 승리가 15호 장소를 찾아갔다. 독립기념관 자료에 따르면 15호 주소는 남아 있지 않고 21호 25호로 통합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였는데, 바이두 지도로 승리가 15호를 찾자 독립기념관의 자료 옆 건물(그리스 도리스식 기둥) 뒤쪽으로 나타났다. 승리가를 거닐며 조선의용대 창설 축하 기념행사가 있었다는 옛 YMCA건물을 찾았다. 현재 이곳은 ‘적승명패세계’라 는 상호가 붙어있고 려황파로가두박물관 서문 앞에 있다. 려황파로 거리 자체는 19세기 제국주의 침략의 현장으로 중국에서 옛 건물을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조선의용대 창립지(1938년 10월 10일 기념사진)라고 추정되는 곳은 현재 무한 신해혁명 발상지 기념비가 세워진 무한시 무창구 자양로 234호로 옆에는 호북성 공회간부학교 건물이 있는데 예전 대공중학교 강당이라고 한다. 조선의용대 창립기념행사가 있었던 한구기독청년회 건물과는 장강을 건너 약 10km 거리로 상당히 먼 거리이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볼 때 조선의용대 창설 장소가 현재 호북성 공회간부학교가 맞는지 단정 짓기는 어려운 것 같다. 무한에서도 김원봉과 조선의용대의 흔적을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어 보였다.
무한을 뒤로 하고 무려 920km 떨어진 사천성 중경으로 향했다. 중국 고속열차로 장장 6시간 40분이 소요되었는데, 멀고도 먼 길이다. 그 옛날 조선의 독립을 갈망하며 길을 떠난 김 원봉과 조선의용대의 고행이 눈에 스쳐 보이는 듯 했다.
넷째 날 중경에서의 첫 일정은 조선의용대대장, 광복군 제1지대장 김원봉의 거주지를 찾아갔는데, 대불단정가 172호에는 사진으로만 보던 예전 낡은 건물조차도 허물어져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광복군 제1지대 본부가 있던 장소도 현재 고속도로가 나서 흔적도 없다고 한다. 그나마 중경시 유중구 연화지 38호에는 한국정부와 중국정부의 노력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를 복원하였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의 흔적과 체취를 느낄 수 있었다. 임시정부 요인들의 기념사진 촬영장소를 보자 내심 감격스럽기까지 하였다. 2호건물 2층 외무부가 있던 곳에서 영상시청을 할 때 눈가의 촉촉해짐과 착잡한 마음이 더해져 먹먹하기만 하였다. 발길을 돌려 시내 중심부 해방비에서 불과 200여 미터 떨어진 곳에는 광복군본부가 있다. 광복군본부 전시물은 임시정부청사에서 전시하는 자료와 중복되어 있고 대다수는 기념사진으로 소총과 군복 등의 전시물도 있다. 이들을 보자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열악하기가 그지없었는지 피부에 와 닿는다.
‘김원봉 루트를 가다’라는 중국 현지 답사는 주최측의 준비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기억에 남는 것은 천녕사와 조선의용대 기념행사장 그리고 연화지 임시정부청사만 제대로 체감한 것 같다. 이번 답사는 급박하게 떠나는 일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전에 주중 한국대사관의 도움을 받아서 착실히 준비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여행이었다. 다음에 2차, 3차 계획이 있다면 한국정부와 중국정부의 협조를 받아서 제대로 된 답사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의 연대와 참여는 조국의 독립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신을 계승하여 발전시키는 것에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