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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일본의 ‘믿는 구석’ 됐나… 윤 정부의 ‘반국민적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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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히,스토리] 대법원이 피해자 손 들어줬는데… 반성 않는 일본, 동조하는 한국 정부

▲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고 오길애씨의 동생 오철석씨와 소송대리인, 지원단체 회원들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 승소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유성호

대법원이 강제징용(노동자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을 또다시 들어줬다. 21일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된 2건의 상고심에서 1억~1억 5천만 원 배상을 명령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일본제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곽아무개씨 등 7명은 1942년부터 1945년 사이에 이 기업의 가마이시제철소 및 야하타제철소 등에서 강제노역에 종사했다. 이들은 2013년 3월 소송을 제기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소한 오아무개씨 등 4명은 1944년부터 1945년에 이 회사의 나고야항공기제작소 공장에서 노예노동을 했다. 이들은 2014년 2월에 소를 제기했다.

두 사건 피해자들은 소송 제기 뒤에 모두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유족들이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근 10년 동안 한국 국가권력이 제대로 협조하지 않아, 일이 끝나기도 전에 피해자들이 숨을 거두고 말았다.

피해자들이 끌려간 노역장은 악명 높은 전쟁범죄 현장들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한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은 가마이시제철소 강제노동과 관련해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주야 2교대, 12시간 노동이 1주일 주기로 전환”됐으며 “휴일도 없는 힘겨운 노동의 연속”이 강요됐다. 그에 더해, 임금마저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기에 80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법정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일본열도 북동부의 해안도시인 가마이시는 ‘철의 도시’로 유명했다. 가마이시로 끌려간 사람들은 이곳이 철의 도시라는 이유 때문에 또 다른 희생을 경험했다. 이 도시가 연합군의 표적이 된 일로 인해 그들 중 일부는 생명까지 잃었다.

위 책은 일제 패망 직전인 1945년 7월 14일과 8월 9일에 연합군이 가마이시제철소 등을 폭격한 일을 설명하면서 “1차 함포사격 때는 2565발, 2차 함포사격 때에는 2781발 등 모두 5346발의 포탄이 가마이시에 집중적으로 쏟아졌다”라며 “시민, 제철소 직원, 조선인 노동자, 연합군 포로 등 약 1000명이 희생되었다”라고 기술한다.

기만과 강압 등에 의해 자기 회사 노역장에 끌려온 외국인들이 자국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공습 피해까지 받았다면, 어떻게든지 희생자와 유족을 달래주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도 배상은커녕 사과 한마디도 없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의 조선인 착취

▲ 도쿄에 있는 미쓰비시중공업. 2019.7.23 ⓒ 연합뉴스

세계 철강시장을 주도하며 미국 산업화의 상징으로 꼽혀온 기업이 US스틸이다. 1901년 설립된 이 회사를 인수했다고 이달 19일에 발표한 기업이 니폰스틸이라는 영문명을 갖고 있는 일본제철이다. 일본제철은 자사가 141억 달러(약 18조 3천억 원)에 US스틸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니폰스틸이 US스틸을 흡수할 정도로 성장한 원동력은 공짜 노동력을 대규모로 활용한 기간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인 등의 강제노역에 힘입어 탄탄한 재정적 기반을 확보하고 지금도 계속 승승장구하는 이 기업이 여태까지 체불임금조차 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위 판결에 언급된 또 다른 강제노역장인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는 양금덕 할머니가 강제연행된 곳이다. 이곳의 노역 환경이 어땠는지를 2013년 11월 1일 선고된 광주지방법원 판결문(사건번호: 2012가합10852)에서 확인할 수 있다.

원고가 5명인 이 소송의 판결문은 “원고 등은 작업을 하는 도중에 곁을 보거나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고, 화장실에 갈 때도 허가를 받아야 했고, 일본인 반장으로부터 폭행을 당하기도 하였다”라며 “원고 등은 원고 김○○가 작업 도중 절단기에 왼쪽 집게손가락이 잘리는 상해를 입는 등 작업 도중 다치기도 하였는데,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였다”고 적시한다.

작업 도중 고개도 돌리지 못하게 했다는 것은 미쓰비시가 한국인들을 기계처럼 다루었음을 의미한다. 기계처럼 다뤘으니 치료도 제대로 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제철과 미쓰비시는 살인적인 노동 착취와 비인간적인 대우에 더해 임금 체불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피해자들을 모른 척하며 사과·배상을 거부해 왔다. 이들에 대한 손해배상명령이 2018년에 이어 이달 21일에 또다시 대법원에서 나왔다. 일본의 사과·배상을 촉구하는 피해자들의 외침이 이처럼 오랫동안 강력한 울림을 내고 있는 것은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일이다.

일본 극우세력은 지나간 일을 왜 자꾸 들추냐며 한국을 나무라지만, 이 일이 지나간 일이 되지 못하게 막는 쪽은 전범기업과 일본 정부다. 사과만 제대로 했다면, 이런 상황까지는 초래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법원판결의 의의

이번 대법원판결은 피해자들의 의지와 일본의 전쟁범죄 책임을 다시금 상기시켜 줬다는 점 외에, 그간 논란이 됐던 소멸시효 문제의 돌파구를 뚫어줬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대법원은 2012년 5월 24일 ‘피해자의 청구권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소멸되지 않았다’라면서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그런 뒤, 하급심에서 대법원으로 재상고된 다음인 2018년 10월 30일의 대법원판결을 통해 한국 법원의 입장이 최종 확정됐다.

민법 제766조는 불법행위가 발생한 날로부터 10년 혹은 피해자 측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알게 된 날로부터 3년이 지나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피해자들이 일제 전범기업의 착취를 받은 일은 10년을 훨씬 넘었으므로, 피해자들은 10년 조항이 아닌 3년 조항에 따라 피해구제를 신청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피해자 측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알게 되어 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된 시점이 언제인지를 두고 논란이 일어났다. 2012년 대법원판결을 그 시점으로 봐야 할지, 2018년 대법원판결을 그 시점으로 봐야 할지를 두고 혼선이 빚어졌다.

2018년 대법원판결 직후인 그해 12월의 광주고등법원 민사2부 판결은 2018년이 기산점이라는 전제에 입각했다. 판결이 최종 확정된 2018년 10월부터 피해자들이 배상을 청구할 수 있었으므로 이때부터 3년 기간을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 이 재판부의 입장이다.

금년 2월 14일에 나온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은 2012년 대법원판결 때부터 3년을 계산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전범기업인 니시마츠건설에 강제징용된 피해자가 2019년 4월 30일에 제기한 청구는 이 때문에 이 법원에서 기각됐다. 2012년 대법원판결로부터 3년 기한이 지났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대법원판결은 직접적으로 소멸시효를 언급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실상의 교통정리는 했다고 볼 수 있다.

보도에 따르면 대법원은 “피해자 또는 상속인들에게는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는 피고를 상대로 객관적으로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는 장애 사유가 있었다”, “2012년 판결은 파기환송 취지의 판결로서 당사자들의 권리가 확정적으로 인정된 것이 아니었다”고 판시했다. 2018년 대법원판결로부터 3년 이내에 제기된 소송은 법적 구제를 받을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 책임 떠넘긴 일본

▲ 하야시 요시마사 내각관방장관. ⓒ 연합뉴스=교도통신

이 판결에 대해 일본 정부는 “극히 유감”이라고 대응했다. 21일 자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지난 9월에 외무대신 직을 떠난 하야시 요시마사 내각관방장관은 “판결은 일한청구권협정 제2조에 명백히 반하는 것으로 극히 유감”이라며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피해자 측은 한국 대법원을 통해 거듭거듭 손해배상 판결을 받아내고, 일본 정부는 공식 입장 천명을 통해 거듭거듭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완전 해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난관을 거칠 수밖에 없다.

양측이 이처럼 평행선을 달리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스스럼없이 일본 편에 서는듯 하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관방장관은 “한국 정부가 대응해갈 것으로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책임을 떠넘기는 이 발언에 대해 한국 외교부는 불편한 기색조차 내비치지 않고 있다.

21일 외교부 정례브리핑 때 임수석 대변인은 전범기업이나 일본 정부가 아닌 한국 정부가 피해자들을 상대한다는 종전의 입장을 재천명했다. “지난 3월 발표한 강제징용 확정판결 관련 정부 입장에 따라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원고분들께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전범기업의 책임을 한국 정부가 떠안는 제3자 변제 방침을 이 사안에도 적용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피해자와 유족들이 80년 가까이 투쟁하는 것은 꼭 돈 때문은 아니다. 이들이 금전보다 더 원하는 것은 사과와 배상이다. 사과와 배상은 가해자가 하는 것이지 한국 정부가 대신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피해자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한국 정부가 대신 떠맡겠다고 나서는 모습은 피해자들을 향해 훼방을 놓는 것이자 문제 해결을 지연시키는 것이다.

두 평행선의 한쪽 라인에 가담한 윤석열 정부는 반대편 라인인 피해자 쪽을 향해 ‘일본이 아닌 우리가 책임지겠다’며 문제 해결에 혼선을 주고 있다. 이는 피해자 측과 한국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다. 이번 대법원판결은 강제징용 문제의 해법을 다시금 드러내고 소멸시효 문제에 시사점을 제공하는 한편, 윤석열 정부의 반국민적 태도를 재차 노출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김종성 기자

<2023-12-22>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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