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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한국과 일본의 이런 국회의원들…아직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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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올해의 ○○] 간토 조선인 대학살 100주년… 한일 시민사회와 국회의 노력

‘올해의 ○○’은 2023년을 마무리 하는 기획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도전, 실패,인물 등 한 해 동안 일어났던 일들 가운데, 꼭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 이야기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 간토대지진 간토대지진(관동대지진) 때 자경단이 조선인을 학살하고 있는 모습

올해는 1923년 9월 1일 일어난 간토 조선인 대학살 100주년을 맞는 해, 백년을 넘기기 전에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받아내기 위해 한일 양국의 시민운동은 여느 해보다 더 분주히 노력했다.

한국에서는 2022년 민족문제연구소 등 60여 개 단체가 모여 ‘간토학살 100주년 추도사업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를 결성했다. 추진위는 올해 3월 유기홍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등 100명의 의원과 함께 발의한 ‘간토대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이하 특별법) 통과를 위해 기자 회견, 일본대사관 앞 항의집회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일본에서도 9월 1일을 전후해 치바, 도쿄, 가나가와, 사이타마 등 학살이 일어난 지역마다 피해 실태가 담긴 보고서가 발간되었고 추모 집회가 열렸다. 하지만 한일 양국 시민운동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 정부는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 정부는 일본에서 열린 ‘간토학살 100주기 추모식’에 참가한 윤미향 의원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혹은 남북교류협력법위반 등으로 조사하겠다고 소동을 벌였다. 일본 정부는 시민단체와 일부 국회의원들이 줄기차게 조선인 학살의 책임 인정과 사죄를 요구했지만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문서가 정부 내에 없다”는 황당한 답변만 되풀이했다.

일본 국회의원 “학살 명백한데도 일본 정부 부인”

이렇듯 양국 정부의 반역사적 태도로 ‘간토학살 진상규명’ 작업이 아무런 소득 없이 100주기를 넘어가는가 하던 때 의미있는 모임이 12월 22일 오후 3시에 개최되었다. 바로 ‘간토 학살의 국가 책임을 묻는 한일 의원들의 간담회’. 이날 참석한 의원은 한국 측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유기홍, 문진석, 이수진과 무소속의 윤미향, 일본 측에서 스기오 히데야 의원(杉尾秀哉·입헌민주당 참의원)과 후쿠시마 미즈호 의원(福島みずほ·사회민주당 참의원)등 모두 6명이었다.

이날 회의는 추진위 집행위원장인 김종수 목사의 노력으로 성사되어 ‘아시아역사교육연대’의 이신철 교수가 제공하는 화상회의 시스템 줌(zoom)을 통해 열렸다. 사회는 광운대학 국제학부 김광열 명예교수가 맡았고, 한일 화해와 평화 플랫폼의 유시경 신부와 민족문제연구소의 김영환 대외협력실장이 동시 통역을 한 가운데 일본 측의 스기오 의원과 후쿠시마 의원이 발언하고 이어서 한국 측 유기홍 의원, 문진석 의원의 순으로 발언했다.

▲ 한일 의원 6명이 줌으로 진행한 간담회 민족문제연구소, 1923간토제노사이드연구소, 기억과 평화 1923역사관의 많은 관계자가 참가했다. ⓒ 김종수제공

먼저 스기오 의원은 “일본 정부는 학살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고 하지만 (고토 후미오 내무성 경보국장이 보낸) 전문이 있다. 그리고 당시 중국인도 학살되어 일본 정부가 이를 인정하고 20만 엔의 배상금을 지불하겠다고 약속한 바가 있다. 전문은 일본 정부가 학살을 부추킨 증거이고 중국 정부와 맺은 약속은 학살의 인정과 다름 없다”라며 일본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를 꼬집었다.

스기오 의원이 언급한 전문은 내무성 경보국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이틀 후인 9월 3일 전국의 지방현으로 보낸 것으로 “도쿄 부근의 지진을 이용하여 조선인들이 각지에 방화하고 불령(不逞) 의 목적을 수행하려고 하며… 조선인의 행동에 대해서는 한층 더 엄밀히 단속할 것”이란 내용이 담긴 전신문을 말한다.

이어 발언에 나선 이는 후쿠시마 의원, 그는 올해 5월 일본 국회에서 국가공안위원장 다니 고이치(谷公一)를 상대로” 간토 학살100주년을 넘기지 말고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후쿠시마 의원은 발언에서 “일본 내각성 산하의 중앙방재회의에서 간토대진재에 관한 보고서를 냈다. 여기에 전체 사망자 10만 5천 명 가운데 조선인 희생자를 수%로 추정한 바 있다. 그러니까 최소 천 명에서 수천 명에 이른다는 보고서를 정부 기관에서 발행한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교과서에도 실려 있고 일본변호사협회에서도 관련 보고서가 나와있다. 또 신원을 알 수 없도록 불에 태우라는 지시를 담은 정부 문서도 있다”라며 이런 사실에 입각해 국회에서 질문했음에도 학살 책임을 부정한 일본 정부를 비판했다.

“국민의힘 설득해 간토 특별법 통과되도록 할 것”

두 명의 일본 국회의원에 이어 더불어민주당 유기홍 의원이 발언에 나섰다. 그는 올해 ‘간토 학살 특별법’ 발의를 주도했고 2014년 제19대 국회에서도 마찬가지 노력을 한 바 있다.

유기홍 의원은 “이번 특별법 발의에 많은 의원이 공감했지만 100주년 의미를 살리기 위해 백 명의 의원이 서명을 했다. 1923년 독립신문에서 6661명이 희생을 당했다고 최초 발표를 했지만 2만 명이 넘는다는 주일본독일대사관의 보고서도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희생자의 숫자와 신원을 파악하는 진상조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방화범 등 흉악범으로 몰린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라며 특별법의 취지를 설명하고 이 법이 통과되면 한일 미래세대에게도 제대로 역사 교육을 하게 되어 참된 우호와 협력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 더불어 민주당의 유기홍 의원 그는 올해 3월 ‘간토대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 민병래

이어 더불어민주당의 문진석 의원이 발언했는데 그는 특별법을 다루고 있는 행정안전위원회에 소속되어 있다. 문진석 의원은 “현재 특별법은 12월 7일 행안위에서 입법공청회까지 마친 상태다. 이제 행안위 통과여부만 남겨놓고 있는데 한국 국회의 관행은 법안심사시 여야 합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행안위를 통과시킬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국민의힘이 위원장으로 있는 법사위에서 막힐 수 있다. 패스트트랙에 올려도 11개월이 걸리기에 제21대 국회가 끝나므로 특별법안이 자동 폐기된다”라며 시민사회와 협력해 마지막까지 국민의힘을 설득해 제20대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되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어진 토론에서 윤미향 의원은 “최근 한국 법원에서 의미있는 판결이 잇달아 나왔다. 이용수 할머니 등 16명이 일본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승리했다. 일제 강제동원피해자들이 미쓰비시와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도 승소를 했다. 그렇지만 윤석열 정부는 한일우호관계를 내세워 여전히 제3자 변제방식 같은 방법으로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와 국회가 연대하는 길밖에 없다. 간토 학살 진상규명과 피해회복도 마찬가지다. 비록 21대 국회가 총선을 앞두고 있고 임기 막바지이지만 형제복지원관련법도 20대 국회 회기를 한달 남겨둔 2020년 5월에 통과되었다”라며 “총선을 앞둔 지금이 위기이면서 기회일 수도 있으니 희망을 잃지 말자”고 제안했다.

윤 의원의 발언 이후 양국 국회의원의 자유토론이 이어졌다.

발굴된 유해를 한국으로 모셔올 방안을 찾아보자.”
“한일 국회의원이 자료 조사를 공동으로 하자.”
“간토 학살 외에도 강제동원으로 발생한 피해, 예를 들면 야마구치현의 해저 탄광에서 수몰되어 숨진 조선인 희생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자.”
“오늘 자리를 계기로 간토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가칭 한일의원 연대회의도 고민해보자.”

진실을 가리키는 문서는 역사의 장막을 걷고 나온다

1975년 5월 23일 한일 의원들의 교류와 협력 증진을 내걸고 한일의원연맹이 결성된 바 있다. 의회 차원에서 정부 외교를 지원하고 외교 현안 해결을 모색한다고 했지만 일본 역사교과서의 한국 왜곡 문제, 재일 코리안의 법적 지위와 권익 향상 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2022년 7월에 한국 측 회장으로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이 추대되었는데 역시 ‘간토학살 100주년’에 대해서는 아예 논의조차 없었다.

그런 면에서 12월 22일 열린 한일 국회의원 6명의 간담회는 비록 작은 숫자이나 일본의 역사적 범죄에 대해 진보적인 목소리를 모아 간토 학살 진상규명의 의지를 다짐했다는 데서 의미가 크다.

▲ 2023년 8월 28일 간토학살 추모 문화제 <100년의 통곡,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에서 목회자 13명이 합창하고 있다. 이들은 ‘마른 잎 다시 살아나’를 불렀다. ⓒ 민병래

12월 25일 일본 <마이니치 신문>에 따르면 언론인 와타나베 노부유키씨는 방위성 방위연구소 사료실에서 간토 대지진 직후 조선인 40여 명이 살해됐다고 기록된 ‘간토지방 지진관계 업무 상보’를 찾아냈다. 이 문서는 도쿄 인근 사이타마 현 서부지역을 관할한 일본 육군 구마가야연대구사령부가 작성했으며, 1923년 12월 15일에 육군성에 제출된 것이다.

이 보고서에는 “간토대지진(23년 9월 1일) 사흘 후인 9월 4일 밤 경찰이 조선인 200여 명을 이송하던 중 낮에 이동하지 못한 조선인 40여 명이 “살기를 품은 군중에 의해 모두 살해되었다”라고 쓰여 있다. 보고서에는 또 “조선인 습격이나 방화는 없었다. 독을 넣었다는 말도 듣지 못했다”라고 적혀있어 당시 광범위하게 퍼졌던 유언비어가 사실이 아니라는 점도 밝히고 있다. 이처럼 학살의 증거는 끊임없이 솟아나오고 진실을 가리키는 문서는 역사의 장막을 걷고 나온다.

지난 9월 3일 도쿄 아라카와 강변에서 ‘간토학살 100주년 추모식’을 마친 일본의 시민운동가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100주년이 끝이 아닙니다. 일본의 국가 책임을 묻은 일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민병래 기자

<2023-12-28>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한국과 일본의 이런 국회의원들…아직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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