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책임』 제13호 보도자료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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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이 관람객 천만 명을 돌파하면서 올해 연말의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흥행 성공도 그렇지만 영화에 대한 대중의 반응 또한 놀랍다. 전체 관람객 중 이른바 MZ세대를 포함하여 20-30대의 비중이 매우 높다고 한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영화를 보면서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심지어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SNS를 통해 ‘N차 관람 인증샷’이니 ‘심박수 챌린지’니 하는 놀이를 공유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서울의 봄’ 상영 덕분에 한국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관련 서적의 판매량이 급증했다는 소식까지.
정말 예상치 못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왜일까? 우선 영화 자체의 요인으로는 스릴러로서 매 장면 긴장감과 몰입감을 주는 짜임 있는 구성과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 등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에 더해서 이 영화의 스토리 또한 12‧12 쿠데타라는 역사적 사실을 비교적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아마도 일차적 분노 유발 요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2‧12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 내의 사조직, 하나회의 행동에는 권력에 대한 욕망 외에 그 어떤 명분도 찾아 볼 수 없다. 1979년 10월 16일~19일 부산과 마산에서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민항쟁(부마민주항쟁)이 있었고, 그 여파로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를 저격한 10.26 사건으로 인해 7년간 유신정권의 철권통치가 막을 내렸다. 유신정권의 붕괴와 함께 우리 사회는 바야흐로 민주화 시대로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고 있는 터였다. 흔히 제3세계 군부세력이 반란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부패한 정권이 존재했던 것도 아니고, 치안 부재로 사회질서가 문란한 상황도 아니었다. 오히려 계엄령 하 엄중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군권 장악을 위해서 전방의 군사력을 동원해 군부 내 하극상을 일으켰으니, 그 불의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러한 사실을 역사 지식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관객들이 분노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지사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런데 관객의 분노는 단순히 영화 그 자체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영화 ‘서울의 봄’이 상영되는 동안 역진적 민주화 과정을 겪고 있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실을 영화 ‘서울의 봄’에 빗대어 비판한 대자보가 부산의 대학가에 나붙었다고 한다. ‘검찰 독재’로 비난받고 있는 오늘의 정치 현실과 영화 속의 ‘12‧12’ 사이에서 일종의 데자뷰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교수신문이 연례행사로 발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로 교수들이 ‘견리망의’(見利忘義)를 선정했다고 하니 이 또한 우연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만큼 ‘서울의 봄’은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있다.
각설하고, 윤석렬 정부가 들어선 이후 ‘과거사 정리’ 문제가 총체적 난국에 처해 있다. 강제동원 가해 기업의 사법적 책임을 면책시켜주면서 이를 ‘과거사에 매달리면 미래가 없다’는 식의 궤변 같은 언어유희로 포장하는 등 동아시아 과거사 문제에 대한 현 정부의 태도가 날로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현 정부의 이러한 과거사 인식은 급기야 육군사관학교 교정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로까지 옮겨붙어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물론 논란의 배경에는 윤석렬 정부 출범 이후 뉴라이트 정치세력이 정부 내 곳곳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 존재한다. 그만큼 현 상황은 위중하고 따라서 과거사에 대한 현 정부의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번 호에는 총 7편의 논문과 현장소식을 포함한 6편의 코너 글이 실렸다. 이번 호에 실린 여러 편의 글은 이러저러한 작금의 사정을 반영하여 대체로 최근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역진적 민주화 과정 속의 과거사 문제 관련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일반논문 3편 가운데 김명환의 논문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에 관한 가장 기초적인 자료라고 할 수 있는 강제동원 명부의 국내 소장 현황을 조사하고, 연구활용 실태를 분석하였다. 그동안 해외에서 수집한 강제동원 명부는 여러 기관이 분산 소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호 중복되는 자료도 많아 연구자들이 이를 이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번 조사 연구는 국내 각 기관이 소장한 국내외 생산 자료의 성격과 관리 실태를 일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정리해 놓아 장차 연구 활동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노영구의 논문은 연구자들이 일종의 ‘관변사학’으로 치부하여 사실상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국난극복사관’을 다루었다. 군사독재시대의 유물 내지는 영웅주의사관의 아류 정도로 생각해 왔던 국난극복사관의 잔재가 일반대중의 역사인식은 물론 역사학계 내에도 강고히 남아 있다는 점을 밝혀 우리 사회 일각에 일종의 경종을 울리고 있다.
방학진의 연구는 국내 각 광역기초자치단체와 교육청의 조례 분석을 통해 현재 각 지자체에서 추진하고 있는 일제잔재 청산 작업의 현황과 한계를 짚어보았다. 분석 결과 많은 지자체에서 일제잔재 청산의 목적으로 제시한 ‘역사인식’의 확립이 지향하는 바가 모호하고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단체장의 책무가 포괄적이고 지원체계 또한 보강해야 하는 등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점도 지적하였다.
특별기고로는 두편의 글이 실렸다. 그중 하나는 일본의 원로 사학자인 미즈노 나오키 교수의 글로 2021년 민족문제연구소가 간행한 『재일조선인단체사전』을 토대로 1945년 해방 이전 재일조선인사회의 형성 과정을 분석하였다. 『사전』을 분석하여 일본 내 조선인 사회의 변화 과정을 포착한 것도 참신한 시도이지만, 이러한 변화에 대한 지배 당국의 반응을 고찰한 것 또한 큰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이준식은 최근 불거진 이른바 ‘홍범도 장군 사태’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그는 이번 사건을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과거 보수 정권 때부터 이어져 온 친일극우세력과 민주세력 간의 역사전쟁의 연장선이라고 파악하였다. 이 논문은 그러한 역사전쟁을 도발한 세력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보내는 의미도 있다.
기획연재로 실린 두 편의 논문은 지난번 『역사와 책임』 12호의 기획연재로 처음 실었던‘세계의 과거사 청산, 어디까지 왔나?’의 연속 기획물이다. 지난번의 칠레 사례에 이어 이번에는 아르헨티나와 영국의 사례를 실었다. 이 가운데 최용주의 논문은 아르헨티나의 과거사 청산 과정을 구체적으로 다루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군부독재 시절의 국가수반을 비롯하여 인권탄압에 책임이 있는 인물들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사법처리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과거사 청산 방식과 비교했을 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과거사 청산도 그동안의 성과가 적잖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책임자와 가해자에 대한 조사와 처벌에 있어서는 여전히 미흡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염운옥의 연구는 식민지에서의 불법 행위에 대한 제국 영국의 책임을 인정한 마우마우 재판과 합의 과정을 다루었다. 마우마우 재판은 식민지 피해에 대한 제국의 책임을 인정한 판결로 영국 정부가 선제적으로 합의에 나섬으로써 식민통치 시기에 발생한 고문 피해에 대한 개인배상에 합의한 첫 사례로 지적된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 문제와 비교해 매우 대조적인 사례로서 장차 문제 해결에 적잖은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현장소식 코너에는 두 편의 글이 실렸다. 그중 조경희 글은 최근 윤석렬 정부가 민간의 남북 해외 교류를 차단하려는 정책의 시행과 맞물려 ‘조선적’의 재일동포에 대한 남북교류협력법의 악용과 차별 정책의 문제점을 다뤘다. 김승은의 글은 강제동원 피해자의 목소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놓고 2021년 7월 식민지박물관의 개막 전시, 2022년 11월 부산 국립강제동원역사관 전시에 이어 지난 6월부터 3개월 동안 세 번째로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에서 전시된 ‘사라지는 목소리들 –전쟁과 산업유산, 잊힌 희생자이야기’에 대한 성과와 과제를 정리하였다.
기억과 예술의 코너에서 대안언론으로서 집회와 시위를 모티브로 한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의 탄생과 발전 과정을 살펴본 이승민의 글과 함께, 원로 소설가 현기영의 최근 작 『제주도우다』(창비, 2023)의 출간에 즈음하여 마련된 저자와 이재승 교수의 대담을 실었다. 이밖에도 이번 호에는 스가모 프리즌(감옥)에서 발행된 한국‧조선인BC급 전범의 문집 『향수』에 대한 허미선의 자료 소개와 최근의 화제작 소설『범도』에 대한 도면회 교수의 ‘역사학적’ 서평까지 실려 읽을거리가 풍부해졌다.
이번 호의 편집을 위해서 원고를 모으는 와중에 오랜 가뭄 속의 단비와 같은 낭보가 날아들었다. 지난 11월 23일 서울고등법원 민사 33부는 이용수 할머니를 비롯한 15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의 청구 금액 전부를 인정했다. 지난 1심에서는 국가의 주권행위를 다른 나라에서는 재판할 수 없다는 국가면제론을 이유로 소를 각하하였으나, 이번 2심 판결에서는 1심을 취소하고 과거 일본이 우리나라의 국민에게 명백한 불법행위를 하였으며 이로 인해 피해를 줬다고 판단하였다. 물론 이번 판결로 일본 측으로부터의 손해배상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식민지 피해에 대한 일본의 불법행위와 그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생각된다.
<차례>
여는글
○ 여는글 / 홍순권
일반논문
○ 조선인 강제동원 명부의 소장현황과 연구활용 사례 / 김명환
○ 현대 국난극복사관(國難克服史觀)의 형성과 전개 – 임진왜란 인식의 변화를 중심으로 / 노영구
○ 일제잔재 청산 조례 분석: 35개 광역·기초자치단체 및 교육청 사례를 중심으로 / 방학진
특별기고 :
○ 식민지기 조선인의 도일과 커뮤니티 형성 / 미즈노 나오키
○ 윤석열 정권이 도발한 역사전쟁, ‘홍범도 장군 사태’ / 이준식
기획연재 : 세계의 과거사 청산, 어디까지 왔나?
○ 아르헨티나의 과거사 정리 : 사법정의 실현을 중심으로 / 최용주
○ 영국의 식민지배 책임과 배상 – 마우마우 재판과 합의를 중심으로 / 염운옥
현장소식
○ 재일동포 관점에서 본 남북교류협력법 악용의 문제 : 민간 남·북·해외 교류협력을 차단하는 윤석열 정부의 반역사성 / 조경희
○ 강제동원 피해자의 목소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사라지는 목소리들-전쟁과 산업유산, 잊힌 희생자이야기」 전시가 남긴 것들 / 김승은
기억과 예술
○ 기록의 기록 : “집회” 그 너머 / 이승민
○ 대담 : 현기영 소설가 –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제주도우다
자료소개
○ 스가모 프리즌 내의 한국·조선인 BC급 전범 문집 『향수』에 대해서 / 허미선
서평
○ 민중적 민족주의와 페미니즘이 형상화한 홍범도 이야기 – 방현석의 소설 『범도』 1·2 /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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