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일제강점기 ‘학병’ 강제동원 80주년 기억 행사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일제는 1938년 이후 ‘지원병’이라는 명목으로 조선 청년들을 군에 입대시켜 1941년까지 1만여 명을 전선으로 내몰았다. 이어서 1943년 10월 ‘육군특별지원병임시채용규칙’을 공포하여 전문학교와 대학교에 재학 중인 조선인 학생들을 ‘학도지원병’으로 강제동원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총독부와 유력 친일인사들의 갖은 회유와 종용이 있었지만 학생들은 지원 거부, 적성검사 기피, 도피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저항하였다. 대표적으로 평양에서는 1944년 8월 “일본군에게 끌려가 죽기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싸워서 죽음을 이기자”는 결의로 집단적으로 학병 거부 투쟁을 감행했다. 그러나 결국 1945년 1월 20일, 4,385명의 학생들이 일제의 침략전쟁에 내몰렸다. 이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일본군을 탈출하거나 머나먼 길을 걸어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대일항전을 펼치다 해방을 맞았다. 이들은 해방 후 ‘1·20 동지회’를 조직하고 학도병 입대 전 잠시 훈련을 받았던 동성중·고등학교 정문 옆에 ‘대한조국 주권수호 일념비(一念碑)’(1998년 8월)를 세우기도 했지만 현재는 자연 해산된 상태이다. 이러한 가운데 황명하(전 광복회 호주지회장), 최희용(광복회 용인지회장) 등 일부 유족들이 중심이 되어 1월 20일 ‘대한조국 주권수호 일념비’ 앞에서 <일제강점기 ‘학병’ 강제동원 80주년 기억행사>를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우리 연구소를 비롯해 한국광복군유족회, 시민모임 독립, 지도에 역사를 새기는 사람들이 후원했으며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이 추모사를 했고 학병 출신 독립운동가인 황갑수 선생의 글인 ‘일본인들에게 고함’을 외손녀인 김소영 님이 낭독했으며 원로 음악인 류장렬 선생이 ‘1·20 동지(학병)의 노래’에 곡을 붙여 현장에서 직접 부르기도 했다. 한편 대표적인 학병 출신 인사로는 장준하, 김준엽, 김수환 추기경 등이 있다.
• 방학진 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