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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할머니 몸에 빼곡한 문신… 잔인함의 한계는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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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히,스토리] 은미희 작가가 만난 위안부의 참상

▲ 28일 일제청산연구소 제8차 월례포럼에서 발표하는 소설가 은미희 작가. ⓒ 김종성

위안부에 관한 자신의 연구를 소개하는 학자와 위안부에 관한 자신의 소설을 소개하는 작가에게서 나타나는 차이점이 있다. 학자의 소개에서는 그가 연구한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이 주로 전달된다. 한편, 작가의 소개에서는 그가 취재한 피해자뿐 아니라 취재한 그 자신의 아픔도 강하게 전달되는 예가 많다.

지난 28일 일제청산연구소(소장 양진우)가 기독교 매체인 <C헤럴드>와 함께 경기도 하남시 초이화평교회에서 개최한 제8차 월례포럼의 강사인 은미희 작가에게서도 두 가지 아픔이 함께 전해졌다. 그가 조사한 위안부들의 아픔뿐 아니라 조사를 수행한 그 자신의 아픔도 함께 전달됐다.

은미희 작가는 2016년 미국에서 영문판 위안부 소설 <날다 날다, 나비(Flutter, Flutter, Butterfly)>를 펴냈고, 2021년 광복절에는 한국에서 <나비, 날다>를 펴냈다. 광주문화방송 성우, <전남매일> 기자를 거친 그가 소설가로 등단한 것은 1996년이다. 그해에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3년 뒤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2001년에는 <비둘기집 사람들>이 삼성문화재단과 문학사상사가 주관하는 삼성문학상의 수상작이 됐다.

‘은미희 작가가 만난 위안부의 참상’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28일 포럼에서 그는 <나비, 날다>의 집필에 착수한 동기를 밝혔다. 세계 위안부 문제의 일대 전환점이 되고 수요시위(수요집회)의 계기를 제공한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1991.8.14.)에 빠져든 것이 2010년부터 이 문제에 천착하고 이듬해부터 집필하게 된 동기라고 그는 말했다.

김학순의 증언에 더해, 어느 날 우연히 접한 한 장의 사진도 그가 집필을 추동했다. 포럼 초반에 보여준 동영상에서 그는 “어느날 인터넷을 하다가 충격적인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라며 “한 할머니가 자기의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하고 있는데요. 그 할머니의 몸에는 문신이 정말 빼곡히 그림처럼 들어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본 것은 정옥순 할머니의 문신이다. 정옥순이 13세 때 겪은 참상이 2005년 8월 11일 자 <조선중앙통신>에 보도됐다. 다음날 <한겨레>는 이 보도를 이렇게 전했다.

“정옥순 할머니는 ‘하루는 일본군 장교 8명이 벌거벗고 나타나서 나에게 동시에 달려들었다’며 ‘놈들은 나에게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갖은 짓을 다 했다. 나는 더는 참을 수 없어 이빨로 놈들을 물어뜯었다’고 치를 떨었다. 정옥순 할머니는 일본군 장교들에 의해 물고문을 당한 뒤 나체로 철봉에 거꾸로 매달리는 가혹한 응징을 당해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군인들이 입 안에 쇠몽둥이를 넣고 휘둘러 이빨이 모두 부러졌고 입술을 뒤집어 바늘 도장으로 입묵(入墨)을 하기 시작해 온몸에 흉한 그림을 그렸다.”

소설의 바탕이 된 분노의 힘

이런 참상들을 접하면서 은 작가는 자신의 몸도 아프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나비, 날다> ‘작가의 말’에서 그는 “참 아팠다”라며 “이 글을 쓰는 내내, 인간이 이토록 잔인할 수 있다니, 인간이 지닌 그 잔인함의 한계는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나는 쓰는 동안 진저리를 치며 올라오는 욕지기를 참아야 했다”고 스스로를 돌아봤다.

그 같은 분노의 힘이 소설의 바탕이 됐다는 것이 은 작가의 말이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 참상을 직접 겪은 피해자들의 아픔이 2010년대의 작가에게까지 전해질 정도로 위안부 강제동원은 잔혹한 전쟁범죄였다고 말할 수 있다.

포럼에서 은 작가는 자신의 위안부 글쓰기뿐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글쓰기에도 관심을 표했다. 그는 1982년에 나온 한국 최초의 위안부 소설인 윤정모의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의 시대적 의의를 설명한 뒤, 이 분야에서 훨씬 앞서가는 일본 문단이 끼치는 부작용을 지적했다. 일본 작가들이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순기능을 하는 측면도 있지만, 일본 극우의 논리에 휘말려들 단서를 남기는 역기능도 한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은 작가는 1947년에 나온 다무라 다이지로의 <춘부전>을 염두에 두고 “위안부 관련 소설은 일본이 제일 먼저 썼습니다”라며 일본인 작가들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일본 작가들이 쓴 소설들은 위안부에 초점이 맞춰지는 게 아니라 부차적인 내용으로 위안부가 나오거나 자기들의 목적에 따라 위안부가 등장하는 식”이라고 그는 비판했다. 한국인 위안부의 자발성과 헌신성을 강조한 <춘부전>의 문제점이 여타의 일본 작품들에도 반영돼 있다는 것이다.

문옥주 할머니가 강제 연행되는 장면을 담은 모리카와 마치코의 <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에도 비슷한 함정이 있다고 은 작가는 말했다. 1996년에 <문옥주, 버마전선 방패사단의 위안부였던 나(文玉珠―ビルマ戦線楯師団の慰安婦だった私)라는 제목으로 일본에서 먼저 출판된 이 작품은 문옥주가 헌병과 형사에게 끌려가는 장면을 묘사함으로써 위안부의 자발성을 강변하는 일본 극우의 논리에 제동을 건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극우 학자들은 이 책에 담긴 또 다른 장면을 아전인수 한다. 야마다 이치로 상등병과의 교제를 묘사하는 대목이 그것이다. “그래도 나는 젊은 여자애였다. 사랑도 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부분은 “일주일에 한 번 야마다 이치로가 찾아오는 것을 삶의 낙으로 여기면서 나는 위안부 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다”는 문옥주의 회고를 소개한다.

이를 근거로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는 <반일종족주의>에서 “위안부에게는 대개 일본군 애인이 있었습니다”라며 “문옥주에게도 야마다 이치로라는 애인이 생겼습니다”라고 한 뒤 “위안부라 하지만 생활 실태에서나 정치의식에서나 심리 감정에서 무권리의 노예 상태는 결코 아니었습니다”라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신분상의 수직적 상하관계에서도 사랑의 감정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그런 감정이 싹튼다고 해서 수직관계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 무시한 채 문옥주의 사랑을 근거로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극우 학자들의 태도도 문제이지만, 문옥주와 야마다 이치로의 관계를 지나치게 상세히 묘사한 모리카와 마치코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비판할 여지가 있다.

동료 작가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고언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 문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실명 소설을 쓴다면, 진상이 왜곡되게 전달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당연히 필요하다. 모리카와 마치코의 의도와 관계없이 그의 소설이 극우세력에게 이용당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은연중에 가해자의 관점이 나타나는 일이 많다는 게 은미희 작가의 지적이다. 일본 작가들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을 무시할 수 없다는 느낌을 주는 지적이다.

이와 같은 지적을 하면서 은 작가는 일본 작가들의 강점을 한국 문단이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당부한다.

“어떤 한 할머니를 모델로 삼아서 그분의 삶을 다각도로 규명하는 자료 조사를 해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써야 되지 않을까요. 그래야 나중에 이것이 역사적으로 하나의 자료가, 대응할 수 있는 자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위안부 할머니가 열 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고 피해자들의 넋을 위로하려면 위안부 운동단체나 학계의 노력은 물론이고 문단의 노력도 당연히 요구된다. 모리카와 마치코처럼 실존 모델을 집중 조명해 대중이 위안부 문제의 실상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하되, 모리카와 마치코 같은 일본인 작가들이 범하는 우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 은미희 작가가 동료 작가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고언이다.

지금 진행되는 역사전쟁에서는 일본 정부, 한일 극우, 전범기업뿐 아니라 일본 작가들도 엄밀히 말하면 같은 편이다. 극우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작가들보다 더 위험한 것이 일본민족의 관점을 완전히 떨치지 못하는 양심적인 일본 작가들이다. 모리카와 마치코의 예에서 나타나듯이 객관성을 지향하는 일본 작가들도 은연중에 자국 극우의 논리를 대변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런 양심적인 일본 작가들이 자신이 취재한 위안부의 아픔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아픔도 함께 표출한다면, 이들의 작품이 대중의 의식을 은연중에 왜곡시킬 가능성이 농후하게 된다. 한국 작가들이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된다.

▲ 일제청산연구소 제8차 월례포럼 포스터에 소개된 은미희 작가. ⓒ 일제청산연구소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입니다.

김종성 기자

<2024-01-29>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할머니 몸에 빼곡한 문신… 잔인함의 한계는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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