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듣도 보도 못한 진주역사 김경현의 진주이야기 100선
박광종 특임연구원
제1회 임종국상 학술부문 수상자(2005년)인 김경현 회원이 25년 만에 『진주이야기 100선』을 새단장하여 올 1월에 『듣도 보도 못한 진주역사, 김경현의 진주이야기 100선』을 출간했다. 이 책의 초간본 발행은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대 옛 <진주신문> 기자를 지냈던 저자는 진주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 진주 지방 구석구석을 찾아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 각종 근현대 신문잡지와 역사책을 샅샅이 훑어 마을의 설화와 건축물・기념물의 유래 등을 수집하였다. 그중에서 저널리스트의 안목으로 진주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100가지 주제를 가려뽑아 1998년 『진주이야기 100선』를 펴냈었다.
당시 진주토박이들이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를 어떻게 취재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질 정도로 생소하고 내밀한 주제를 다루어 진주 사회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다만 진주문화원에서 비매품으로 펴낸 탓으로 전국적으로 소개되지 못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절판되어 잊혀지면서 이 책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했는데, 이번에 기적적으로 부활한 것이다. 이번에 출간한 책은 초간본보다 더 풍부하고 재밌는 내용으로 재구성한 개정・증보판인데, 내용이 훨씬 보완된 알찬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다루는 대상은 시대적으로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관통하고 정치・사회・교육・문화・예술・역사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관련한 기록들이 많이 실려 있다. 저자의 이력을 보면, 그가 이 책에서 일제강점기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천착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저자는 2000년대 중반 역사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진주를 떠나 서울에 왔는데,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친일청산에 매진하였다. 지금도 세종시에서 친일문제와 일제의 강제동원,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민주화운동 등 과거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 점을 볼 때 저자가 책의 대부분을 채운 근현대사, 특히 일제강점기 이야기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저자가 쓴 100가지 이야기에 등장하는 많은 일제강점기의 이야기는 더욱더 흥미롭다. 진주조면공장에서 나이 어린 조선인 여공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린 이유라든지, 일제에 전투기를 헌납한 요시노국민학교로 불렸던 ‘길야초등학교’를 비롯해 진주의 대표적인 황국신민화 교육장이었던 ‘진주신사’, 일제시대 최고급 문방구점으로 1941년 길야국민학교에 총독상을 안겨줬던 ‘청수문방구점’의 뛰어난 상술, 식민지경영자금의 출처 역할을 한 진주의 관치금융기관이었던 진주식산은행과 LG그룹 창업주 구인회의 일화, 악명높은 일제의 식량수탈기관인 진주식량검사출장소, 일제 말 황국신민을 집단 양성하던 세뇌교육장인 명석특별연성소 등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해방 후 좌우익대립과 갈등이 격화되면서 좌익수용소로 변한 진주형무소, 한국전쟁 때 북한군에 의해 점령된 진주시내에서 벌어진 인민재판의 모습 1950년대 중학교 입시 열풍을 다룬 정촌교 특활대(井村校 特活隊), 해마다 전국 문인들의 시화전이 열린 문학사랑방 은전다방(銀殿茶房), 1960년대 진주시영 영화관으로 학생들의 단체관람이 빈번했던 시공관(市公館), 1970년에 설치되어 정권유지를 위한 공작기관으로 진주의 민주인사를 사찰한 진주보안대, 1971년 옥봉동에 건립된 진주 최초의 아파트인 남강아파트, 1973년 내동면 대동마을에 전깃불이 들어와 이를 기념해 주민들이 세운 전기가설기념비 등을 수록하여 당시 시대상을 반추할 수 있게 한다.
이 밖에도 ‘킹메이커’라고 불린 조선개국공신 하륜의 이야기, 임진왜란과 관련된 진주성 싸움의 흔적, 이순신 장군이 통제사로 재임명된 곳인 손경래 고택, 조선시대 최초의 민란이던 진주농민항쟁, 이어진 동학농민운동과 의병운동, 3・1운동, 형평운동 사적지 등도 다루고 있어 이를 통해 폭정과 외적, 일제에 항거한 진주 민초들의 의기(義氣)를 오롯이 성찰할 수 있다.
진주는 흔히 예향(禮鄕)의 도시, 공자와 맹자의 고향을 뜻하는 추로지향(鄒魯之鄕)의 고장일 정도로 교육도시라 한다.
비록 ‘천릿길의 진주’로 알려진 머나먼 고장이지만 남부 지방의 중심지로서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도시이기도 하다. 저자는 초간본 서문에서 “진주의 역사와 문화를 찾는 과정은 사라져간 진주민중의 힘을 재확인하는 과정일 것이고, 중앙사에 매몰된 지방사를 복원하는 작업”이라고 강조하였다. 자칫 사라져갈 뻔한 진주의 역사, 진주 민초들의 애환을 속속들이 복원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가 더욱 크다 할 수 있다.
저자의 기자정신과 수집벽, 집요한 근성, 깊이 있는 통찰이 집약되어 저술된 초간본이 25년만에 새롭게 개정・증보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면서도 일견 당연해 보인다. 초간본 출간 이후에도 끈을 놓지 않고 진주이야기를 오랫동안 추적한 저자의 집념이 돋보일 수밖에 없다. 특히 이 책에 소개된 100가지 이야기는 누구든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발굴・정리하고 기록하는 데 이 책은 좋은 선행자료와 참고자료가 된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잊히지 않고 이렇게 새롭게 탄생한 『듣도 보도 못한 진주역사, 김경현의 진주이야기 100선』은 독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신선한 지역사 읽기의 체험을 가져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