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시에 사는 윤기석씨(30)는 3일 아내와 함께 서울 용산구 청파동에 있는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찾았다. 지난 1일부터 이곳에서 진행돼온 홍범도 장군 특별기획전 ‘홍범도와 ХОН БОМДО(홍범도)-북간도 연해주 중앙아시아 그리고 한국에서’를 보기 위해서였다. 박물관 한편의 기록들을 살피던 윤씨는 2019년 개봉작 <봉오동 전투>를 떠올리며 “영화에서 본 사실이 기록에도 있다. 전투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홍 장군 흉상 철거 논란 등을 언급하며 “(독립의 역사가) 정치 문제가 되는 게 안타깝다”라고 했다. 그는 “뉴라이트 등 일부 세력이 역사를 반대로 말하면서 너무나 쉽게 관심을 얻고, 그 과정에서 독립 영웅들이 정치적 도구로 소모된다”라고 말했다.
이날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찾은 시민들의 발걸음은 신중하고 더뎠다. 40평 남짓한 공간에 빽빽이 전시된 홍범도 일지 필사본과 홍 장군의 초상화, 의병대 활동에 관한 일본 경찰 보고서와 대한독립군 부대원 이종학의 봉오동·청산리 전투 회상기 앞에서 시민들은 한참 동안 서성였다.
백영권씨(67)는 박물관에서 나눠준 ‘3·1 독립선언서’를 옆구리에 낀 채 전시를 관람했다. 그는 홍 장군 등 독립군의 무장투쟁사를 다룬 소설 <아리랑>을 지난해 두 차례 읽었다 했다. 백씨는 “지난해 8월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 장군 흉상 철거 뉴스를 보면서 속에서 불이 차올랐다”라며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생각해 오게 됐다”라고 했다. 백씨는 전시물 중 ‘인물관계도’와 ‘홍범도 생애’를 설명한 곳에서 오래 머물렀다. 홍 장군과 북간도·연해주에서 의병·독립운동가로 함께 활동한 ‘허근’ ‘김약연’을 낮게 읊조린 백씨는 “내가 몰랐던 많은 이들도 장군과 함께했던 것 같다. 이들에 대해 더 알아봐야겠다”라고 했다.
대학 신입생 유다예씨(19)는 첫 학기에 신청한 교양수업을 듣기 전 예습차 고등학교 친구 2명과 함께 박물관을 찾았다. ‘만주 및 연해주 지역 독립군 활동’을 표시한 지도를 보던 유씨는 “역사 수업에서 독립군 활동을 배웠지만 지도 위 어느 지역에서 일어난 활동인지는 처음 알았다”라고 말했다. 유씨의 친구 전가현씨(19)는 “홍 장군의 생애가 가장 인상 깊었다”라며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홀로 독립해서 생활하는 등 홍 장군이 태어났을 때부터 고난을 겪은 것은 처음 안 사실”이라고 했다.
2층 상설전시장에도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가족과 함께 박물관을 찾은 오승환씨(45)는 “작년부터 홍 장군 흉상 철거 등 역사 왜곡이 심각하다고 생각해 아들을 데리고 역사교육도 할 겸 왔다”라고 했다. 오씨의 아들 준영군(11)은 앞에 놓인 <친일인명사전>의 두께가 인상 깊었는지 손바닥을 갖다 대면서 두께를 쟀다.
이번 3·1운동 105주년 특별기획전은 민족문제연구소와 월곡고려인문화관 결,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가 주최했다. 지난해 8월 윤석열 정부가 홍 장군을 비롯해 육사 내에 건립돼 있는 독립전쟁 영웅 흉상 철거·이전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특히 정부가 홍 장군 흉상 이전 추진의 이유로 그의 소련 공산당 가입 전력 등을 들면서 이념 논쟁으로도 번졌다. 전시는 서울 용산구 청파동에 있는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오는 5월5일까지 진행된다.
오동욱 기자
<2024-03-03> 경향신문
☞기사원문: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겠다” 3·1절 낀 연휴에 홍범도 전시회 찾은 시민들
※관련영상 – 카자흐스탄 국영 tv 하발 보도